인연의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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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오세현
2014년 09월 391호
“그래, 해인사, 해인사로 모시고 가자!”도교육청 국제교육담당 장학관 시절인 2010년 여름,
외국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문득 뭔가에 이끌리듯 해인사를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확실치는 않지만 해인사에는 쌓아두면 3,200m, 길이로 이으면 150리, 무게
280톤에 새겨진 글자 수가 무려 5천2백만 자에 달한다는 경이로운 민족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과 그 판전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 무엇보다 그 다음 해에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시작된 방문을 통해 지금은 고인이 된 해인
사 보존국장 성안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히, 스님과 해인사 종묵 스님의 권유와 지도
로 충북 청주의 직지直指처럼 고려대장경을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교재를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경남교원대장경연구회’가 결성되었고, 올해에는
도교육청으로부터 교원자생연구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해 연말 어느 날, 스님이‘내전수함음소內典隨函音疏’라는 경판과 이를 둘러싼 시비가 좀 있
다는 내용과 함께 이를 확인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일제강점기에 인쇄해서 일본으로 가져간 해
인사 고려대장경의 인경본을 꼭 확인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마침 그때 나는 곧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고려대장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주말 자유 시간에 일본 국회도서관을 방문
해서 혹시 스님께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일본에서 학위를 했었지만 도쿄 나카타쵸(永田町)의 국회도서관은 초행길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학술자료가 보관된 곳,‘수년 전 내가 쓴 학위논문도 여기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겠
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인 신분으로 제국의 심장인 이곳에서 고려대장경과 관련된 퍼즐
조각을 찾아 뭔가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설렘과 기대, 그리고 비장한 긴장감 속에서 입관 수속
을 하고‘(고려)대장경’,‘내전수함음소’등을 키워드로 검색을 서둘렀다. 한참을 헤매다가 흥
미로운 책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과‘오다 미키지
로 유고(小田幹治郞遺稿)’였다. 지체 없이 열람 신청을 했다.
고풍스런 모양새의‘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은 페이지도 차례도 없이 종이끈으로 제본된 책
이었다. 그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8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책 내용을 대략 살펴보니 내전수함음소에 대한 내용은 없었으나 한일병탄의 주범인 초대 조
선총독 테라우치(寺內正毅)가 메이지(明治) 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일본 왕실과 연고가 깊은 센
뉴지(泉涌寺, 京都府東山)에 갖다 바칠 목적으로 고려대장경을 인쇄한 그 전말이 75페이지에 걸쳐
서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 이 작업은 당시 총독부에 근무하던 오다 미키지로(小田幹治郞) 사무관이 담당했다는 사실
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915년 9월, 오다(小田)가 테라우치에게 보고한‘대장경 인쇄 종료 보
고서’가 전체 의 약 2/3를 차지한다. 그래서 인지 오다 미키지로 유고(小田幹治郞遺稿)에서도 같
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방대한 인경 작업을 위해‘계획 요항-판목의 정리-판목의 고증-인쇄용지 및 비단
류 제작-경본經本 인쇄-결판缺板 및 결자缺字보충-경본의 장정-경본의 책 수’순으로 매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먼저,‘계획 요항’에서는 인경은 3부로 하고, 그
중 1부는 비단표지에 절본折本으로, 나머지 2부는 종이 표지에 철본綴本으로 할 것, 모든 재료는
조선에서 생산된 것으로 할 것, 인쇄 및 제본에는 조선인을 고용하고, 조선의 전통 방식에 따를
것 등 작업 목표와 원칙을 명확히 해 놓았다.‘결판 및 결자 보충’에서는 판목을 정리해 본 결
과 18판의 결판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보충하기 위해 기존의 고려대장경 인경본 중에서 아주 오
래전의 것을 참고하여 원고를 작성하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참조하여 소금물에 삶는 과정
등을 거쳐 판목을 만들고 여기에 구리로 마구리까지 만들어 붙였다. 또, 조선인 중에서 조각 실
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경판 새김을 하였고, 그 경판 측면에‘대정4년(1915년)조각’이라
고 새겼다고 한다.
또, 인쇄 종료 후 제본하기 직전에 무려 1,017자에 달하는 결자가 발견되어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이들 결자 하나하나를 조각하여 보충했다고 하니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결자가 각각 무슨 글자였는지는 소개하지 않았다.
테라우치가 조선총독 시절에 막강한 권력을 배경으로 수집한 조선관계 자료는 그의 사후에
설립된 사설 도서관 桜圃寺内文庫(이하 테라우치 문고)에 보관했으나 지금은 야마구치현립대학
이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1915년에 인경해간 철본 2부 중 적어도 1부 정도는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테라우치문고는 소중한 우리 서지문화의 블랙홀이다.
테라우치문고는‘식민지 지배의 부끄러운 약탈 문화재’라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그래서인지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연구·활용하지 못
하고 있다. 이처럼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그들의 양식인지 묻고 싶다.
일본이‘조선왕조의궤’를 비롯한 극히 일부의 서적들을 반환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분명 면
피용에 불과하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기록 문화유산들이 이런 식으로 일본 각지의 또 다른 블
랙홀 속에 숨겨지고 방치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설령 공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로
부터 허락을 받아야 겨우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무거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