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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대수산을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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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232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4년 09월 391호
만만천천묘운간萬萬千千杳雲間에
부지하시대수산不知何是大隨山고
만만천천의 아득한 구름 사이에서
어느 것이 대수산인지 알 수가 없네.

법진신조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수천수만의 산 가운데 어떤 것이 대수산 입니까?”
“천산만산이니라.”

법진신조法眞神照 선사는 위산영우潙山靈祐 선사의 회상에서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복주대안福州大安 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뒷날 사천성四川省 팽주彭州 대수산大隨山에서 산문을 개창하고 덕실심후德實深厚한 선풍으로 납자들을 제접하며 대수산 가풍을 드날렸습니다.

신조 선사는 사천성 출신입니다. 그 인연으로 대수산에서 법석을 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대수산을 매개로 많은 선문답을 남겼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대수산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천산만산 있는 그대로가 대수산’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대수산의 한켠 일’을 물으니 ‘동서남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대수산을 동서남북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벗어난 또다른 어떤 일면사一面事가 있겠느냐?’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도리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대수산에서 사해四海를 품었고, 사해 속에서 대수산을 안았으니 선사에게는 대수산이 곧 천하요, 천하가 곧 대수산인 것입니다.

어떤 납자가 법진신조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대수산 안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대수산 안의 불법입니까?”
“석두대저石頭大底는 대大하고 소저小底는 소小하느니라.
큰 돌은 크고 작은 돌은 작다.”

큰 돌은 크다고 알되 그것에 주착住着하지말고 작은 돌은 작다고 알되 그것에 주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자莊子는“부경수단鳧脛雖短이니 속지즉우續之則憂요, 학경수장鶴脛雖長이니 단지즉비斷之則非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늘이려면 근심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줄이려면 근심이 되는 법입니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그대로가 불신佛身의 현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형남복창荊南福昌선사에게 ‘복창산 안에도 불법이 있느냐’고 묻자 ‘큰 나무는 큰 껍질에 싸여있고 작은 나무는 작은 껍질에 싸여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헤아릴 때는 헤아리는 대로 불법이 있지만, 헤아리지 않을 때는 헤아리지 않는 대로 또 불법이 있는 법입니다.

해제를 앞두고 경산지우徑山智愚 선사는 “하안거 수행을 시작한 이래로 제대로 공부한 시간이 전혀 없었구나. 매일 승당에서 정해진 시간대로 내 자리만 지켰고, 방선시간에는 누각에 올라가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제 해제를 앞두니 발은 절뚝거리고 손은 떨리는데 입에서는‘벌써 90일이 다 지나가버렸다’라는 한탄만 나오는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대다수의 해제대중의 심경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둘 일이지만, 그래도 오는 것은 오는 대로 제대로 맞이할 일입니다. 결제 때 화두를 제대로 챙긴 납자는 챙긴대로,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납자는 챙기지 못한대로 해제공부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결제 때 가야산에는 결제대로 불법이 있고, 해제이후의 산하대지에는 해제대로 불법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때 해제대중은 신조선사의 ‘대수산’ 화두를 진정으로 나의 화두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통도불범무인식通途不犯無人識하니
거목하증식대수擧目何曾識大隨리오
길 전체를 밟지않고서 알 수 없는 것이니
눈뜨고 있다한들 어찌 대수산을 알겠는가?

2558(2014) 갑오년 하안거 해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