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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에 들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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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양종인┃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2014년 08월 390호
산이 마련해 놓은 공간은 깊고도 높다. 산새 우는 소리, 쏴아~ 바람이 전나무숲 쓸어가는 소리. 아마 시간의 갈피를 타고 오르는 소리이리라. 그리고 빛살, 나리던 빛살은 꽃잎의 물방울에 부딪쳐 스러지고, 스러진 햇발은 내 눈으로 들어와 일순 사위가 환해진다. 이윽고 나는 다른 세계로 가는 틈새를 엿본다. 박물관 입구는 적멸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구나. 내 휘청거리지 않으리. 다만 사무사思無邪의 마음으로 천천히, 발자국을 꾹꾹 눌러 걸어들어가리.
해인사 성보박물관. 2002년 완공된 건축물. 건축물이 통과해온 세월의 켜는 가벼우나, 불화와 조각과 공예가 통과해온 세월의 켜는 전혀 가볍지 않다. 천년의 세월을 통과한 목조상, 오백년의 세월을 버틴 범종, 이백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낸 불화에 비하면, 백년이 채 못되는 인간의 생몰년生沒年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필멸하는 육신은 불멸하는 정신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래서 예술작품과 과학 이론, 건축물처럼 내구성이 뛰어난 유산을 남기려 애쓰는 것일까.
홍치4년 범종(보물 제1253호) 의 운룡은 막 구름을 뚫고 비상하려는 참이다. 당좌는 생략되었으나 연화문· 입상의 보살상이 종신의 상부에 새겨진 것이 마치 망망한 허공 위로 연꽃이 드문드문 날고 있는 듯하다. 종신 하부에 당초문과 보상화문, 우주와 인간이 하나였음을 증명하는 팔괘가 그려져 있다. 어두운 심연에서 울려퍼지는 타종소리는 어디로 가는가. 아득히 소멸하고 마는가. 알 수 없다.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알 수 있는 것은 소리는 깊고 아득하고 유장할수록 더욱 외로우리라는 것. 아아, 지나가버린 시간 위에 소리를 연주할 수는 없으니 수행자는 맑고 엄숙하게 타종하소서.
옛 불화가, 영산회상도(보물 제1273호)가 말을 걸어온다. 전생의 인연因緣인지, 현세의 인연인지, 내세의 인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시간의 화살’, 과거는 기억하고 미래는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 감각이 달라지니 지금 현재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 부유한다. 그림이 보는 이의 정신에 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붓다께서는 영축산에서 법회를 열고 법화경을 설하고 있다. 붓다의 전언傳言은 아주 강력한 광휘 속에서 전개된다. 그 말씀은 천천히 빛을 발하다가 강렬한 금빛의 홍수로 터져 나오고, 불화 하단부의 모서리 부분에 석가불을 호위하고 있는 사천왕이, 중단부의 좌우에는 팔대보살이 녹색 두광頭光에 휩싸여 그 분을 찬양한다. 붓다의 생애는 빛의 화신이자, 오탁악세에 영원히 빛나는 생애이다.
희랑대사(889-956).
나말여초 시대에 활동한 해인사의 고승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북악파의 종주이자 화엄학의 대가로 불린다. 고운과 희랑조사는 시문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졌다. 고운의 시 “희랑화상에서 증정하다(贈希朗和尙)”는 불교 교학, 특히 화엄경에 정통하어 그 지고한 뜻을 밝혔던 고승의 업적을 읊고 있다.

보득이 금강지에서 설한 가르침을 / 步得金剛地上說
부살들이 철위산에서 결집하였네 / 扶薩鐵圍山間結
필추가 해인사에서 강경하였으니 / 苾蒭海印寺講經
잡화가 이로부터 삼절을 이루리라 / 雜花從此成三絶

용당의 묘설을 용궁에서 들여온 뒤 / 龍堂妙說入龍宮
용맹이 용종의 공을 제대로 전했네 / 龍猛能傳龍種功
용궁의 용왕이 정녕 환희함은 물론이요 / 龍國龍神定歡喜
용산은 의룡의 걸출함을 더욱 표하리라 / 龍山益表義龍雄

마갈제성의 광명이 두루 비치고 / 磨羯提城光遍照
차구반국의 불법이 더욱 빛나네 / 遮拘盤國法增耀
오늘 아침 부상에서 떠오른 지혜의 해 / 今朝慧日出扶桑
문수가 동묘에 강림한 것을 알겠도다 / 認得文殊降東廟

천언의 비교를 하늘에서 전수받고 / 天言祕敎從天授
해인의 진전을 바다에서 꺼내 왔네 / 海印眞詮出海來
멋지도다 해인의 뜻 해우에서 밝힘이여 / 好是海隅興海義
천의는 단지 천재에게 맡기려 할 뿐이라오 / 只應天意委天才

도수의 고담은 용수가 해석했고 / 道樹高談龍樹釋
동림의 아지는 남림이 번역했네 / 東林雅志南林譯
빈공이 피안에서 금성을 떨쳤다지만 / 斌公彼岸震金聲
가야에서 불적을 이은 것과 같으리오 / 何似伽倻繼佛跡

삼삼의 광회의 숫자는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 三三廣會數堪疑
십십의 원종의 뜻이야 잘못될 리가 있겠는가 / 十十圓宗義不虧
유통을 말한다면 현험을 밀고 나가야 하리니 / 若說流通推現驗
경의 미진한 해석은 문자가 이상한 탓이로다 / 經來未盡語偏奇
(※ 시 전문과 번역, 주석들은 모두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에서 가져왔다.)

용왕龍王의 용궁에 불경들이 소장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불법을 믿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면, 용왕이 용궁에 세상의 모든 불경을 거두어 모아놓고 지킨다는 것이다. 고운집 번역본 주석에 따르면, 용당의 묘설은 《화엄경》을, 용맹은 “용궁에 들어가서 《화엄경》을 가지고 왔다는 용수龍樹의 또 다른 이름”을 가리키며, 용산龍山은 가야산 해인사를 뜻한다. 의룡, 필추는 희랑조사를 가리킨다.
건칠목조희랑조사상(보물999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상. 희랑조사의 위대한 업적에 걸맞지 않게 소박하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학문으로 커다란 성취를 이루었으니 어찌 부럽지 않으리. 한국 불교의 역사에 이러한 승려가 계셨다는 사실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범점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안고 성보박물관을 나선다.
참담하게도, 나는 유물들이 통과해온 살육과 파괴와 약탈의 시대를 생각한다. 누가 이것들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곁에서 유물을 볼 수 있는 자들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너와 내가, 만물의 흐름에 드는 자들이, 추상화된 우리, 모두가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보는 자들만이 볼 수 있을 뿐이요, 모르는 자는 모를 뿐이다.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