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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이 다른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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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천추寶藏千秋 - 종현 2014년 08월 390호
홍류동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봄과 가을에는 춘풍추우春風秋雨에 춘초화春草花 추풍옆秋風葉이 계곡을 붉게 물들여 홍류동이라 했다. 또한 유가儒家, 도가道家에서는 자연을 벗 삼는 도인들이 사는 곳을 홍류동천, 옥류동천이라 이름했다.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지명이 계곡 곳곳에 새겨져 있다.
정식이 쓴 “가야산록1725”에는 홍류동을 보고 “최치원이 말한 ‘봄꽃과 가을 낙엽을 물 가운데에서 취한다(춘화여추엽春花與秋葉 취향수중구取向水中求)’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홍류동紅流洞
홍류동 바위 복판 환선대에는 큰 글씨의 한자로 홍류동이 새겨져 있다. 워낙 큰 글씨라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크고 획이 힘차다. 유가야기의 기록에는‘홍류동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또한 이순상의 글씨’라고 돼있지만 이 글이 그 글씨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홍류동紅流洞
홍류동에는 최치원이 새겼다고 하는 홍류동 글씨가 내려온다.
2002년 이전사진에는 전서체의 글씨로 계곡 한 복판에는 홍류동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2년 태풍으로 인해 바위가 깨져나가 지금은 동洞자 끝부분만이 남아있다. 잘려나간 홍류가 새겨져 있는 바위의 파편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홍류동紅流洞
바로 옆에는 계곡물로 인해 마모가 심한 홍류동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초서로 써내려간 글씨는 작고 아담하게 여기가 홍류동을 나타내고 있다.

홍류동문紅流洞門
지금의 홍류문(매표소)아래방향 계곡에는 홍류동문이란 각이 돼있다. 넓은 바위에 수만은 이름과 함께 새겨진 이름은 그 옛날 이곡이 홍류동임을 말해주고 있다.
1712년 유척기가 쓴 《가야기》에는 “물줄기가 여기에 이르면 더욱 커져서 매우 시끄럽고 물이 튀어 부서진다. 군수郡守 김순金洵(1648-1721)이 ‘홍류동문紅流洞門’이란 넉 자를 바위에 새겼다. 곁에는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홍류동’ 석자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김순의 글로 보이나 명문은 보이질 않는다.

옥류동천玉流洞天
지금의 주유소자리에 옥류동천이라고 하는 환경 스님의 글씨가 새겨있다.
홍류계곡에 흐르는 물방울이 옥구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면서 선인들이 사는 선계仙界를 표시하기도 한다.

자하동紫霞洞
치인리로 넘어가는 다리가 영산교이다. 영산교 다리 하방 계곡 암반에 자하동이란 글이 새겨있다. 전서체의 바위평면에 선각으로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