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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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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4년 08월 390호
\"자동차 뒤에 실린 보조바퀴 같은 사람입니다.\"
어찌 지내시는가 여쭈니 고민의 여지도 없이 내어놓으신 대답이다. 자동차가 잘 굴러갈 때에는 소리 없이 후원에 있다가 고장이 나면 앞으로 나와 온몸으로 제 책임을 다하는 바퀴, 그것이 현재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의 모습이다.
80년대엔 민주화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종단 개혁에 앞장섰던 지선 스님은 1999년부터 종단 내외의 모든 활동을 접고 백양사 운문선원 안거 이후 상원사, 수도암, 정혜선원, 몽성선원 등의 제방을 거치며 지금까지 한철도 쉬지 않고 정진 중이다. 올해는 담양 용흥사 선원에서 지내신단다.
\"현장에서 최루탄 마시며 뛸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요. 수행자가 어떻게 하면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동시에 할 수 있는가를 늘 염두에 두고 삽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안일하게 안빈낙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대승불교의 보살도 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확신으로 스님은 중생들 가운데에 서 있었다. 군사 정권 속에서 청년들의 머리가 터지고 이유 없이 잡혀가고 죽고 의인들이 갇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비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맞서 싸우는 보살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광주의 \'문빈정사\'를 거점으로 불교 대학생들을 모아 \'대학생불교연합회\'를 만들고 \'무등\'이란 월간지를 만들고 함께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민주화 인권 운동과 통일을 위한 사회활동을 했다.
\"요즈음은 자책이 들어요. 혼자 은둔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사회에나 종단에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심정이 편치 않네요. 운동 하던 시절엔 대학생들한테 민주와 인권과 통일을 위해서 일어서야 한다고, 실천도 못 할 소리를 내가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래서 늘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면서 삽니다.\"
스님은 사회운동을 하다가 많은 회의가 들었단다. 여러 단체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모였는데 모두 각자의 노선에서 논리를 펴니 뜻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고 분열될 뿐이었다. 서로를 비난할 뿐이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엽합\'의 의장, \'민족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전국불교운동연합\' 의장,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의장 등 많은 부분에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힘을 한 데로 몰아갈 수 없었다. 조직의 분열과 세력 다툼을 보면서 회의가 들고 무력감이 들었다. 지도력과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고진부투 하다 보니 그게 나중에는 병환으로 왔다. 특히 종단 개혁 때는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반 승가적이고 반 민주적인 요소를 척결하기 위해 앞장섰으나 오히려 승가의 개혁이 더 쉽지 않았다. 사회 못지않은 세력 간의 갈등과 주도권 싸움 속에서 마음고생을 하며 수많은 갈등에 휩싸였다.
\"이러다가 승려 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한쪽에 있었어요. 그러니 선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한이 맺힐 정도였지요.\"
스님은 칭찬과 비난이 동시에 날아오는 삶을 살았다. 투쟁적인 수행자의 모습에 돌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고 스님의 손을 잡기 위해 피 흘리는 손들도 있었다. 스님이 선방에 앉자 변심했다는 시선들도 있다. 하지만 스님은 어느 곳에 있든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스님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서 더 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종교인으로서 중생의 현실 고를 극복해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불교가 상당한 저력을 갖고 있고 그동안 역량을 쌓았으니 힘 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님들이 정부와 권력에 눈치 보지 말고 앞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타종교처럼 신도 수를 늘이거나 교세 확장을 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선 스님은 신도 숫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다. 절 운영을 위해서 신도 숫자나 늘이다보면 절 지킴이가 될 뿐이란다.
\"본질적인 문제에 충실해서 신도들이 불교의 정법으로 살아가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은 잘 하는데 사색은 안 해요. 번뇌망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명상은 안 해요. 자기 심성 개발은 안 하면서 출세 명예 권력 지향적이에요. 그럴수록 스님들이 온몸으로 실천해서 참된 세상을 보여줘야 합니다.\"
정토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스님들이 실천해야 한단다. 깨달음이 곧 실천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아야 할 것이란다. 지선 스님이 조계사 앞에서 운동을 하다가 얼굴을 다쳤을 때였다. 한 기자가 스님을 앞에 보이는 가게로 모시고 들어가 물을 떠다 씻겨주었다. 기자는 스님께 심정이 어떤지 여쭈었다. 지선 스님은 딱 한 마디 하셨단다.
\"공空의 실현이다!\"
이것이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자리가 아닐까. 그것은 결코 지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차원적인 지식이라 할지라도 활용하지 못하면 관념일 뿐이다. 먼지와도 같다.
\"부처님도 천백억 화신으로 공덕과 복덕을 쌓았잖아요. 그래서 성불이 된 것이지요. 실천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해행합일觧行合一이 조사고 선지식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이 못하는 일을 종교가 능히 해야 한단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억압하기에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된단다. 이데올로기는 한낱 망상일 뿐이란다. 수행자들은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해서 일생동안 수행했으니 그 힘과 지혜로 중생들이 살아나갈 길을 제시하는 선도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이 왜 자기 노선만 강요하는지 알아요? 수행을 안 해서 개조가 안 됐기 때문이에요. 수행을 통해서 욕망과 야망이 무상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쳐야 해요. 사회과학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무소유가 되어야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중생계가 다 할 때까지 보살행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단다. 자기 것을 챙기려 하면 안 된단다. 취하지 않겠단 생각이면 무슨 일이든 못 하겠나 하신다.
\"수행자가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게 가장 슬픈 일이에요. 세속을 멀리하고 절에 와서 자기 본질적인 문제를 추구하며 살다가 지적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되니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몇 십 년 절에서 살다보니 세속으로 돌아가지도 못 하지요. 이건 치매보다 무서운 병이에요.\"
그러니 고래등같은 기와집도 다 없애야 하지 않겠나, 시골에 있는 절 주지는 안 하겠다며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다닐 것이 아니라 탁발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좋은 옷 입으면 스님도 좋지 않으신가 여쭈니 지선 스님은 옷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뭐 좋으냐며 손사래 치신다. 사람들이 찾아와 스님은 토굴 하나 없으니 나이 들면 어쩌려느냐고 묻는단다.
\"지금 절집이 텅텅 비었는데 왜 다른 집이 필요합니까. 방 없으면 논두렁에서 좌선하다 죽을 일이지요.\"
스님이 사회운동을 하던 시절 고문을 받을 때였다. 모두가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데 스님은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단다. 앞길이 만 리 같은 청년들을 때려죽이고 인권을 유린하는데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무력에 맞서는 불교계의 수행자가 하나도 없었다. 생사를 초월했다는 수행자들이 숨어 있는 모습을 보며 당신이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오히려 너무 늦게 죽는구나 싶었단다. 그러니 아무리 고문하고 욕을 해도 화가 나지도 괴롭지도 않았단다. 금강경에 나오는 인욕바라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질투에 눈이 먼 가리왕에게 몸이 갈기갈기 베이고 끊기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던 인욕선인의 모습이 아닐까. \'나\'라는 상이 없어 화를 낼 일도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반야가 출현했기 때문이 아닐 것인가.
\"민중과 함께 하지 못하는 불교는 반성해야 돼요. 그렇다고 그것이 선불교 때문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수행이 안 된 사람은 제대로 실천할 수가 없어요. 선방에서 자기 공부가 어느 정도 차야 밖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지선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도덕책에 나온 설산동자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두고 오래도록 보았다. 설산동자가 도를 깨우치기 위해 고행하던 중 나찰귀가 읊는 시를 듣게 된다. \'꽃은 피어도 곧 지고 사람은 나도 이윽고 죽는다. 이 허무한 법칙은 생명 있는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설산동자는 나찰귀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기로 하고 나머지 구절을 듣는다. \'사는 것 죽는 것을 다 넘어 버리면 생각의 얕은 꿈이나 망설임이 없어진다.\' 설산동자는 약속대로 나무 위에 올라가 몸을 던진다. 나찰귀는 제석천왕의 화신으로 설산동자의 도를 점검한 것이었다. 지선 스님은 나중에서야 이 이야기가 법화경에 나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는 게송임을 알았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 구절을 잊지 않으며, 몸을 던진 설산동자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일인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단다. 해가 기울어 가는 저녁 후원에 냉면 공양을 하러 가는 길, 지선 스님은 말씀하신다.
\"출가는 함부로 할 일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