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류동 도로가 석주石柱 옆에는 초서로 수려하게 써내려간 최치원 차운시次韻詩 두편이 새겨져 있다. 사각형의 테두리를 두르고 칠언절구의 4행시로 이루어진 시는 최치원선생을 흠모하며 그의 둔세시遯世詩를 차운次韻한 시이다. 차운시次韻詩란 TV 예능프로에서 가끔 나오는 삼행시를 생각하면 쉬운데 다만 요즘의 삼행시는 시의 앞구절의 음을 맞추어 시를 짓는 반면 옛 선비들의 차운시는 7언절구에 맨 끝자의 음을 맞추어야 한다. 최치원의 둔세시는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이므로
1행, 2행, 4행 끝자의 음을 차운하면 만巒, 간間, 산山이 된다.
위편에 앉혀진 시는 드러나거나 알려진바가 전혀 없는 시이다. 여러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어 그 글의 원문을 파악하게 하고 염치없게 번역까지 부탁하였다. 해인지에 심사굴 코너를 연재하시고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 서예부문 교수로 계시는 권상호 선생께 글자부터 파악케 부탁했다.그 초본을 바탕으로 대만 국립대학 유학을 다녀오신 원광 스님과 해인지 화엄변상도 연재를 하시는 서울의 자훈 스님께 부탁했다. 두 분은 비구니 스님으로 학력과 경력으로만 보더라도 한글 읽듯이 충분히 쉽게 번역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탁을 드렸다.
그러나 두 스님도 초서의 원문을 우선 정확히 파악하기위해 또 여러 지인들에게 부탁했고 나름 전문가분들에게 보여서 어렵게 알아낸 두 분의 번역문이 도착했다. 다 그럴싸해 보이는 명 번역문이다. 원문을 보는 차이로 인해 번역에 다소 차이가 있어 두 번역문을 필자 주관으로 합쳐서 1차 해석문을 해인지를 통해 내보낸다. 사진과 번역을 보시고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언제든 편집실로 의견을 주시기를 희망하면서…
권연염삭협경만圈然炎削夾璚巒 깎아지른 산등성을 끼고
백도유천사양간百道流泉瀉兩間 여기저기 흐른 물이 한 골짜기로 쏟아진다.
욕축고운반불득欲逐孤雲攀不得 고운(최치원)을 따라잡고 싶어도 여의치 않으니
유공도처창공산遊筇到處悵空山 지팡이 닿는 곳마다 텅 빈 산이 서글프다.
불초자不肖子 공생工生 희羲
두 번째 시는 해인지 2013년 7월호에 이미 발표한바 있는 회암晦庵정혜定慧 스님(조선 1685 ~ 1741)의 시이다. 회암정혜 스님은 해인사와 청암사, 증산면에 있는 쌍계사(폐사)에 주석하시며 많은 저서를 남기신 대 강백이시다.
1712년 선비 유척기가 해인사와 가야산을 다녀간 후 쓴 〈유가야기遊伽倻記〉에는 “한 늙은 승려가 ‘묘향산妙香山에서 와서 산 지 올해 75년째’라고 하는데, 신이한 풍모는 쇠하지 않았고 말도 막힘이 없다. 도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그 승려는 이름이 정혜定慧라고 했다” 라는 대목이 있다. 1712년을 전후로 해인사에 주석하시며 후학들을 가르치던 시기에 최치원 차운시를 남기신 것 같다. 바위에 새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해인사에 주석하던 시기에 세긴 것으로 추정되며 위의 시와 아래의 정혜 스님 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고 사각형 테두리를 함께 두른 것으로 보아 같은 이가 암반에 세긴 것으로 추정해볼 뿐이다.
문도고운입차만 聞道孤雲入此巒 고운(최치원)이 이 산에 들어왔다는 말 들었지만
불지영적의하간 不知靈跡依何間 신령스런 발자취 어디에서 머물었는지 알 수 없구나.
만장개안간심처 謾將開眼看尋處 느긋이 눈을 뜨고 그의 거처를 찾고자 하는데
동자유천정자산 動者流川靜者山 움직이는 건 물이요, 고요한 것은 산일 뿐.
회암晦庵 정혜定慧 근기謹記 회암 정혜가 삼가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