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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에서 만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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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4년 06월 388호
브라질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쌈바와 축구, 그리고 열대우림 아마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쌈바 축제의 뜨거운 열기와 전통적인 축구 강국으로서의 면모, 세계에서 가장 울창한 정글인 아마존까지 합쳐진 브라질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정열情熱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리카 종주를 마친 뒤에 제가 남미에서 처음으로 입성한 리우 데 자네이루(약칭 리우)는 한여름의 쌈바 축제의 열기가 한껏 가시고, 곧 있어서 다가올 6월의 월드컵 사이에서 차분히 숨을 고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실상 세계만행을 하면서 갖가지 축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다분히 많았는데, 시끌벅적하고 흥분된 공기는 여간 제 성정하고 맞지 않는 듯 하여 일부러 축제를 피해 한결 차분해진 리우로 들어간 것입니다. 여름이 끝나고 이제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이어선지 제가 리우에 머무는 나흘 동안 대부분 하늘은 흐렸고 가끔씩 비가 내렸습니다. 한국과 같은 청명한 가을 하늘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리우에 오면 꼭 가고픈 곳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파네마 해변이고 다른 하나는 꼬루꼬바두 언덕 정상에 있는 예수상이었습니다. 사실상 리우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이파네마가 아니라, 리우에 3대 미항의 영예를 선사한 코파까바나 해변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아파네마에 유난히 관심이 가게 된 것은 바로 보사노바의 대표적인 명곡인 <The Girl from Ipanema>가 탄생한 곳이어서 그렇습니다. 1962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이 처음으로 발표하고, 64년에 스탄 게츠와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녹음한 것이, 6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의 레코드로 수상을 하게 된 곡입니다. 물위를 사뿐히 걷는 듯한 아스트루드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입니다.
이 이파네마 해변을 따라서 죽 서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원뿔형의 산에 점점으로 빼곡이 모여있는 집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예전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이 주거 지구는 파벨라(Favela)라고 부릅니다. 파벨라는 리우를 비롯한 브라질 대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는 빈민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파네마 해변의 끝에서 길을 따라 이어지는 이 파벨라의 이름은 바로 비디갈(Vidigal)이었습니다. 워낙에나 인상적인 형세가 매력적이었고 빈민촌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일어나서 이곳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파벨라가 단지 빈민촌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는 위험 지구라서 그랬습니다. 지금엔 경찰이 거리 곳곳에 대기하고 있어 안전하다고 하지만 범죄 집단 간의 총기 사건이 난무했던 과거를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 했습니다. 그렇게 파벨라의 입구에서 잠시 서성이다 결국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안전이 최우선인 여행자 신분이었습니다. 파벨라 입구 맞은 편엔 자본의 상징인 쉐라톤 호텔이 바다를 마주보고 화려하게 서 있어서 아이러니한 대조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이런 파벨라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한 웰메이드 작품으로 생각하는 2002년 작 <City of God>입니다. 이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하여 빈민가의 참혹한 상황을 외려 담담한 내러티브로 이끌어가서 리얼리티를 잘 살려낸 것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는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신에게도 버림 받은 듯한 빈민가 <신의 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난이란 굴레를 타고 태어난 소년들에게 폭력과 범죄는 그들이 무디게 접하는 일상이었고 또한 성장하면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빈민가 안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사건을 생동감있게 찍으면서도, 또 결정적인 죽음의 순간에는 카메라으 감정선을 최대한 배제해 다큐와 같은 효과를 잘 살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선지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파벨라에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이제 저는 리우의 대표적 상징인 예수상을 찾아 나섭니다. 예수상은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세운 조성물입니다. 이 예수상은 리우의 유명한 랜드마크이면서 또한 리우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기에 매년 150만명이 이 예수상을 찾습니다. 2007년에서 스위스의 한 민간단체에 의해서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정이 되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명성을 알리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어렸을 적에 교회를 몇 년간 열심히 다니면서 활동했었고, 개신교와 가톨릭 재단의 학교에서 수학한 터라, 기독교는 저에게 상당히 친숙한 종교입니다. 유럽을 만행하면서 불교인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나 오랜 대화를 나눠보았고,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런던의 한 교회에 들러서 예배에 참여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상 앞에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펴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떨까를 스스로 생각하면서 예를 갖춰 합장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브라질의 대표 도시인 리우를 단 하나의 단어, 정열이라 표현해도 크게 잘못될 건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도시 또한 사람처럼 다면적多面的입니다. 오직 하나의 특징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도시 또한 다양한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겁니다. 꼬루꼬바두 언덕의 정상에서 예수님이 굽어보는 리우엔 축구장도 있고 해변도 있고 파벨라도 있습니다. 리우는 그렇게 쌈바와 축구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한 해변이기도 하지만 수줍은 소녀의 혼잣말과 같은 보사노바의 고향이기도 하고, 동시에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대도시입니다. 이 언덕 정상의 예수상을 찾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고백을 하고 염원을 읊조립니다. 이에 예수님은 한결같은 평온한 미소로 리우라는 대도시를 두 팔 벌려 감싸 안는 듯 보입니다.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위안처럼 보이는 그 옅은 미소가 어쩐지 저에겐 진리의 모습이 또한 저러하다는 예수님의 속삭임처럼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