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볕이 따사로운 오후 죽림정사 마당에 들어서니 함초롬한 여염집만 같다. 위엄을 자랑하지도 마음을 휘어잡지도 않는 이 절집이 마냥 좋아 마당에 한참을 서 있는다. 그러자 여낙낙한 일광 스님이 나와 반가이 낯선 손님을 맞아주신다.
\"금년 첫 우전이에요. 먼 길 오셨으니 차부터 드세요.\"
손수 만드신 생강유과와 곶감 그리고 거창의 봄을 마무리 하는 딸기도 앞에 놓였다. 정갈하고 매끈한 손길에 스님의 마음결이 느껴진다.
\"이곳은 제 고향이에요.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빚을 갚는다고 흔연하게 생각하며 삽니다.\"
죽림정사의 모태는 가천의 심원사다. 합천댐이 개발되면서 수몰지가 되어 은사스님께서 다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 거창 죽림정사다. 그때에 심원사 탑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문짝도 가지고 와서 앉혀 놓았다. 그러니 그 시간이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제가 다섯 살 때부터 저 탑전에서 놀았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처님 품을 떠나서 산 적이 없어요.\"
친할머니께서 다섯 살 먹은 큰 손녀인 스님을 데리고 심원사에 다니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탑전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한 보살님이 보더니 이 아이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절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그 말이 석연치 않아 손녀를 유발상좌로 심원사에 보내셨다. 그날부터 절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되레 식구들이 출가 안하냐고 물을 정도로 출가의 길은 너무도 당연했다. 허나 막상 출가를 하려니 이런 당연한 마음으로 출가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때 마침 <선가귀감>을 읽게 되었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벗어나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다.\'
\"이 구절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여서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섰지요. 그 길을 아버지께서 동행하며 응원해주셨어요.\"
그렇게 출가해 동학사 강원에서 공부하고 다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러고 캐나다 불광사에 서 2년을 보내고 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은사 스님께서 거창에 돌아와 소임을 봐주길 청하셨다.
\"그땐 공부할 때라서 고향에 오기가 좀 꺼려졌어요. 마을 사람들이 저를 보고 누구네 딸이라며 이름을 부르는 게 마음에서 좀 성가신 거예요.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이름 부르는 분들도 없거니와 이름을 부른들 마음에 걸림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고향에서 이렇게 스님으로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초파일이면 학교 때 친구들이 와서 등도 달아주고 설거지도 해준단다.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49재도 올리고 마을 어르신들 재도 많이 지내드렸다. 아흔이 넘은 동네 할머니는 스님 친할머니의 친구 분이신데 옛날을 회상하신단다. 다섯 살 때부터 천수경 외고 다니더니 이렇게 스님이 되어 돌아왔다고, 이제 우릴 이렇게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서도 차 마시러 자주 찾아오신단다.
\"저는 이 지역에서 일광스님이 아리나 그냥 \'우리 스님\'이에요. 다들 \'우리 스님\'이라고 손녀처럼 딸처럼 친근하게 불러주세요.\"
마을 신도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스님을 찾아온다. 누구네 집 수저 개수까지 알 정도로 그 집의 역사를 다 아니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니 소통이 원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광 스님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의사다.
\"출가해서 고향을 등지고 살 게 아니라 고향에서 지역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재미지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고향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같이 공부하고 회향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죠.\"
스님이 공부를 마치고 죽림정사에 내려왔을 때 은사스님은 연세가 많아 치매를 앓으셨다. 은사스님을 시봉하는 데에 있어서나 신도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고 돌아가는 사회현상을 알아야겠다 싶어서 스님은 다시 동국대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졸업을 하고나자 마침 \'거창군 삶의 쉼터\'라는 복지관이 개관을 하게 되어 사무국장 소임을 2년 넘게 봤다. 일광 스님은 고향이기에 지역 주민의 정서를 아는 것이 많은 부분에 도움이 되었단다. 자리매김하기까지 스님은 큰 공부를 했다며 웃으신다.
\"복지관 어르신들이 저를 보면 누구네 딸인지 다 아세요. 학교 선생님들도 무료급식을 하러 오시는데 다 알지요. 오늘도 중학교 2학 때 저한테 빵 사주셨던 사회선생님이 오셨는데 오늘은 제가 빵이랑 자장면을 대접해 드렸어요. 어릴 땐 제가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제가 도움을 드리니 인드라망처럼 연결이 되는 거예요. 인연법이 손에 잡히지요.\"
그러니 \'우리 스님\'에게 있어 마을 분들은 모두 \'우리 어르신\'이고 \'우리 선생님\'이고 \'우리 할머니\'시다. 그러니 스님은 한 순간도 나태하게 허투루 살 수가 없단다. 마을 어르신들이 다 일광 스님의 신장님들이시기에.
스님은 포교를 하며 살아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신도들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가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냥 목탁만 치면서 기도하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뭐꼬 화두를 주고 본래면목을 보라는 것은 신도들에게 너무도 접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뭘까, 내가 해서 행복한 게 뭘까, 신도들도 행복하게 하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명상이더라고요.\"
신도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마음 공부를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명상으로 접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국대에 다시 들어가 명상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가 마음이 아프다고 했을 때 손잡아주고 기도는 해줄 수 있지만 심리적인 치료는 정작 해주지 못했던 것을 명상이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림정사에선 명상 프로그램을 특화시켰다. 목요명상을 비롯해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명상캠프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일광 스님은 복지관에서 명상 강의를 한다. 명상을 시작하고나서 불면증 약이나 위장약을 끊었다는 어르신들이 제법 많아졌단다. 그렇게 모두가 만족해하니 스님도 행복하단다.
\"마음을 잘 쓰라고 하는데 어떻게 써야하는지,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내려놓는지 잘 모르잖아요.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현상, 마음의 작용, 마음의 용처를 가르쳐주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훨씬 쉽지요.\"
순간순간 들숨 날숨을 지켜보면서 내가 어떠한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먹기 명상, 차 명상 등을 통해 매 순간 자신을 알아차리게 한다. 마음자리를 살피는 공부이니 하면 할수록 신도들이 좋아한단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멈추는 자리에서 내면을 통찰하고 자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마음자리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소통이 좋아진단다. 화가 났어도 화가 난 것을 우선 스스로 알아차리니 분노의 색이 옅어지고 그러니 말의 사나움이 덜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광 스님은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게 명상이라고 생각하신다.
\"온전하게 나 자신에게 몰입해 순간순간 현재에 사는 것, 그것이 명상이죠. 그러면 내면에 평화가 생기고 몸과 마음이 이완돼서 어떤 것이든 담을 수가 있어요.\"
분노가 많으셨던 한 처사님은 명상을 통해서 삶에 안정을 찾으셨단다. 그리고 한 할머니는 먹기 명상을 통해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단다. 각자의 근기에 맞는 명상법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그 하루하루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죽는 순간에 내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으면 얼마나 허망하겠어요. 죽는 순간까지 내가 죽는다는 걸 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스님은 어느 날 소임을 다 내려놓고 남인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위파사나 수행과 명상을 하면서 자비의 마음이 확 열리는 순간을 맞았다. 그러면서 가야 할 방향과 역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졌단다.
\"포교에 대해 늘 부담감을 안고 있었는데, 명상을 통해서 같이 수행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의지가 구축이 되었지요.\"
그 신념으로 스님은 오늘도 다섯 살 때 바라보던 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신다. 은사스님이 꾸려놓은 이 도량에서 은사스님이 못다 하신 일들을 하며 포교하며 수행하는 것이 일광스님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신단다. 그러면서 문득 돌아가신 은사스님 생각에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다.
\"은사스님께선 팔순이 넘도록 함께 기도하셨어요. 치매가 오고 눈이 잘 안 보이셨는데 누가 오든 부처님 오셨다고 절하시고 우뚝한 사물이 있어도 부처님이라며 절하셨어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신 모습으로 알려주셨지요.\"
일광 스님은 고향에서 그리고 은사스님이 가꿔놓은 도량에서 스님이 제일 잘 하는 명상을 통해 신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회향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아니겠나 하신다.
스님이 정갈히 차려주신 공양을 하고 작별을 하고 멀어져온다. 뒤돌아보니 스님이 멀찌감치 논둑에 있는 어느 아낙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손짓을 보아 밥은 먹었느냐, 와서 밥 먹고 가란 말씀인 듯하다. 부처님이 내어주시는 밥 한 공기에 몸과 마음이 다 가든하다. 들숨과 날숨이 순하디 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