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합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해인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해인사가 있는 산은 잘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로 가야산국립공원입니다. 편집장 : “처사, 이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해인지에 글 한번 써 주실 수 있는지요?”
박재현 : “어떤 내용으로 말입니까?”
편집장 :“ 뭐, 옛 소풍의 추억이나 용문폭포에 대해서도 좋고, 그 어떤 것도 괜찮아요.”
박재현 : “예. 알겠습니다.”
당시 편집장 스님의 제의를 얼떨결에 승낙하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글을 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점점 원고를 제출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업무와 집안 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업무상 해인사에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편집장 스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뿔싸! 갑자기 등에서 땀이 나고 심장박동수가 치솟았습니다.
편집장 : “오~ 재현씨, 일전에 부탁한 건 잘 되고 있어요?”
박재현 : “아~그게 언제 까지였지요? (아~ 예. 스님 이제 진짜 큰일났네) ”
편집장 : “다음 주까지 부탁하였는데, 아직 덜 되었나봐요?”
박재현 : “네. 지금 글을 처음 쓰는거라 정리 중이네요. 다음 주까지 제출하겠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 날 당장 집에 가서 옛 앨범 속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며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저와 해인사의 인연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대구분이시지만 저는 해인사 옆 마을에 태어나서 절과 관련된 행사에 항상 참여하고, 해인사 스님들과 어려움 없이 살갑게 지내면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또 해인청년회 회원으로서 해인사 불사에 많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인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였습니다.
어릴 때, 해인사 마을은 지금의 쇼핑상가 주변에 형성되었고, 저희 집은 관광업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아버지가 가야면 예비군중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어 해인사의 젊은 스님들이 예비군훈련을 받으면 저희 집에 왕래가 잦았고, 그로인해 많은 스님들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홍제암의 종성 스님, 지금 종무소 밑에 거주하시는 정원 스님 등 많은 노승들이 저희 집에 자주 방문하신 관계로 현재까지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설 명절을 맞아 저희 식구들과 절에 인사를 가면 항상 세뱃돈을 주십니다.
앨범을 넘기는 중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사진을 발견하였습니다. 해인사 옆 용문폭포에서 동네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어릴 적 용문폭포는 지금으로 말하면 동네 아이들의 워터파크였습니다. 여름이면 매일같이 용문폭포에 가서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영을 못하여 항상 물가에서만 놀았습니다. 친구들이 용문폭포 꼭대기에서 다이빙하며 많이 놀던 모습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나도 수영을 배워서 언젠가는 폭포 맨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 사정을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께서는 어느 날 방으로 저를 부르시더니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단다. 남자로 태어나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니?’ 라며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밤새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내일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저는 일어나자마자 제일 친한 친구인 동석이 집으로 갔습니다.
“동석아 나 지금 폭포에 다이빙하러 갈 건데 같이 좀 가줘.”
속이 깊은 친구는 저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서주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가 춥게 느껴졌고, 매미 울음소리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시끄럽게 들렸습니다.
용문폭포 꼭대기에 올라서니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어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계속 떠올리며, ‘그래 난 할 수 있어! 남자로 태어나 못 할게 뭐 있냐!’고 마음속으로 백번정도 외친 뒤 눈을 질근 감고 뛰어내렸습니다. 몸에 마비가 오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 2초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을 위해 2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지금 용문폭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예전처럼 자유로이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용문폭포에서 물놀이를 하는 탐방객들을 단속하는 국립공원 직원의 신분이지만 당시의 옛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