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문화유산 답사코스에도 급수가 있는데, 그 최고과정은 절도 스님도 없는 폐사지 답사다.” 이 말은 답사의 고급자일수록 그 연륜을 말해주는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 속에서 최고의 행복감을 맛본다는 뜻이다. 우리가 옛 절터의 흔적을 찾는 일은 어쩌면 한국 문화사의 한 축을 연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이와 유사한 사례는 가야산 산자락 아래에 있는 성주 법수사지에도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려하자 이를 반대한 태자는 울며 반대하다 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풀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삼베옷을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麻衣태자라고 불린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마의태자의 아우가 범공 스님인데, 일연이 쓴《삼국유사》에 의하면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베옷과 채식으로 한 세상을 마쳤고, 계자季子는 머리를 깍고 화엄종에 드나들면서 산승山僧으로 일생을 마쳤다”라고 전하는데, 해인사와 법수사에 머물면서 불법을 닦았다고 한다.
이렇듯 가야산에는 불교가 유입된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불교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해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 및 암자들이 가야산 전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가야산을 유람한 선비들의 문집에 남긴 유람기, 시 등을 통해 오늘날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사찰의 유허지도 여전히 기록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사무소는 2012년부터 기록 속에 묻혀 있는 가야산에 산재한 다양한 폐사지를 찾아내고, 사찰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다양한 자연 자원이 살아 숨 쉬는 가야산국립공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