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야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해인사, 팔만대장경, 홍류동계곡, 만물상, 금강송 그리고 천년의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놓은 기암봉( 奇岩峰 :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그 바위들로 이뤄진 봉우리)이 아닐까?
필자가 비경을 찾아 떠난 곳은 가야산에서도 특히 유명한 홍류동계곡에 위치한 길상암자 정상에 있는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이라 불리는 기암봉이다.
해인사 길상암은 매표소 입구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암자 주위로 수령 200~300년 이상인 수백 그루의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72년 영암 대종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암자는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이 있으며,그 일대 자연풍경을 가리켜 우리 조상들은 홍류동계곡 또는 옥류동천 玉流洞天이라 명하였고, 이곳에는 홍류9곡과 가야19명소 가운데 16명소를 만날 수 있는 그야 말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얼마 전, 길상암 위쪽에 거북이 형상을 한 기묘한 바위가 있다는 스님의 말씀에 이른 새벽 촬영 장비를 챙겨서 길상암으로 향했다. 밤새 비가 와서 자욱한 안개에 휘감긴 가야산은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초입에 있는 미륵불, 약사여래불, 불광보탑을 거쳐 미륵불 뒤편으로 가파른 계단과 함께 길상암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음을 동여매듯 등산화 끈을 바짝 쪼여 매고 산행을 시작했다. 나무 계단으로 이루어진 오르막길 옆으로 산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작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얼마 오르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대웅전은 가파른 바위에 있었고, 안개에 둘러싸인 가야산 줄기가 어슴푸레 펼쳐지기 시작했다. 잠시 조망한 후, 다시 관음전을 끼고 돌아서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매우 가팔랐다. 허리를 세울 수 없는 경사길, 땀과 안개 비로 젖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안개 속에서도 유유히 자태를 드러낸 전각을 보고 나서였다.
전각 앞에서 합장하고 마음을 모으니 고요한 새벽이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산들바람에 땀을 식힌 후 다시 가파른 산길을 10여분 더 오르니 스님께서 말씀 하시던 바위와 적송군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노구승천암.
바위 틈에 자리잡은 적송은 용틀임과 함께 오랜 세월의 풍파에 시달린 귀갑피( 龜甲皮, 거북이 등에 있는 육각형 무늬)를 자랑하고, 억만년의 세월이 녹아든 기암괴석은 마치 거북이 형상으로 안개 낀 홍류동계곡을 지금 당장이라도 승천할 듯한 모습이었다.
대자연은 사계절 그 어느 때라도 같은 모습이 없으며, 낮과 밤의 기후 변화로 천공의 빛을 달리하고 눈, 바람, 구름의 변화에 따라서 형형색색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매순간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가야산의 산악미에 매료되어 이곳에만 발길을 둔 지 10여년. 자연의 변화 무쌍한 신비스러운 모습과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오르다보면 가슴 조일 때도 있지만 기다림의 벅찬 감동으로 찰나의 순간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나는 자연과 함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머물게 되었다.
자연이 빚어놓은 바위,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우람한 노송이 하늘을 뒤덮어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버린 가야산! 스님께서 말씀하신 노구승천암은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장관이었다. 가야산의 새소리, 바람소리, 목탁소리, 숲의 소리를 들으며 억만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오르며 경외감이 들었다.
산사진가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험한 등반도 기꺼이 감내하며, 연중 휴일을 산에서 지내고 있지만 오늘처럼 노거송과 기암봉을 만난다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끊임없이 찾아와서 가만히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만물에 귀를 기울일 때 시절인연이 닿은 것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선비들과 묵객들이 다녀간 불교의 성지 해인사!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 그리고 나와 가야산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또 어디 있으랴!
산은 가리는 것이 없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을 품어 안기에 그 안에는 치유가 있는 것이다. 지난 4월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민들은 고통으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픔을 통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한 그루의 작은 나무들이 모여서 숲을 이루고, 천년을 살면서 비로소 산이 되었다. 사람 또한 각자의
존재 자체로 호흡하며 삶의 모진 풍파를 견디어 내어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대 사람이여,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가야산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노거송과 기암봉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듯 그대의 지친 영혼이 노구승천암과 어울러 삶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찰나의 영감을 이 아름다운 인연에서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