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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문인가? 점액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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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4년 06월 388호
욕성만인산欲成萬仞山하니
여하일궤지如何一簣止리오.
법왕불유현法王不遺賢이니
용문수투과龍門須透過하라.

만 길 높이의 산을 만들고자 한다면
어찌 한 번의 삼태기로 끝낼 수 있으랴.
법왕은 절대로 정진하는 이를 버리지 않노니
모름지기 용문폭포를 통과해야 하느니라.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땅 보자사報慈寺에 광운혜각光雲慧覺 선사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결제를 앞두고 선사의 회상에 방부를 들이려는 어떤 납자와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와룡臥龍에서 왔습니다.”
“거기서 얼마나 살았는가?”
“겨울을 지내고 여름을 지냈습니다.”
“용문에는 묵어가는 손님이 없거늘 어찌하여 그렇게 오래 머물렀는가?”
“사자의 굴 안에는 다른 짐승이 없습니다.”
“그대가 새로 방부를 들인 것을 감안하여 너에게 삼십방만 날리도록 하겠다.”

후한後漢시대에 이응李膺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 보는 안목이 어찌나 탁월한지 얼굴만 봐도 될 나무와 안될 나무를 그 자리에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아무나 재워주지 않았습니다. 가풍이 엄정하여 빈객을 함부로 제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객방은 언제나 텅 비어있는 날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어쩌다가 그가 묵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은 얼마 후에 틀림없이 명예를 얻음과 아울러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용문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제접을 받은 사람은 ‘용문상객龍門上客’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송宋나라 때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는 이런 게송을 남겼습니다.
용문만인龍門萬仞에 증유숙객曾有宿客이라
진퇴상장進退相將하니 수조점액誰遭點額이랴
용문폭포의 만길 높이에서 일찍이 묵었던 나그네라.
나아가고 물러감에 서로 붙잡아 주니 누가 점액을 만났던가?

만길의 용문폭포는 황하강 중류 섬서성陝西省과 산서성山西省의 경계지역에 있습니다. 물 흐름이 너무 가파르고 험준하여 고기와 자라들이 더 이상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는 지점입니다. 폭포아래에 모여 있는 고기 떼와 자라 떼가 수천 수만 마리가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곳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한다면 용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등용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잉어가 용문폭포를 통과하면 용이 되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올라가던 도중에 바위에 머리가 부딪혀 이마에 멍만 들고 맙니다. 이것을 점액點額이라고 합니다. 이후 벼슬길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거나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것도 점액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선가禪家에서도 문 입구에 서성일 뿐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거나 견성하지 못한 것을‘점액’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결제를 제대로 한다면 등용문이 될 것이요, 결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마에 멍 자국만 남는 점액문이 될 것입니다. 선불장은 뱀을 용으로 만드는 등용문입니다. 이번 여름결제에는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만길 용문폭포를 헤치고 오를 수 있다면 크게 웃을 일이 생길 것입니다.

하안거 결제대중은 용문입구에서 쫓겨나는 객이 될 것이 아니라 용문에 입실하여 묵을 수 있는 객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용문조차도 결코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될 곳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용은 절대로 용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두 선사는‘용문에서 일찍이 묵었던 나그네’라고 했고
광운 선사는‘용문에는 묵어가는 객이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용문의 객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래 앉는 것으로 살림살이를 삼는다면 결국 삼십대의 방망이가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제 철에는 반드시 공부를 해 마치겠다는 대용맹심의 각오로써 임해야 할 것입니다.

착단용문투벽진鑿斷龍門透碧津하니
홍류분취기정진洪流奔驟豈停塵이리오.
용문을 뚫고 푸른 하진河津나루를 통과하였으니
달리는 거센 물결 위에 어찌 먼지가 앉을 수 있겠는가.

2558(2014)년 하안거 결제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