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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고통과 불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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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4년 05월 387호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숨진 이들의 시신을 가족들 품으로 돌려주는 일도 더뎠다. 가족들의 황망함은 어디에 비할 데 없다. 때론 분노로 표출되었는데,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을 여덟 시간이나 붙잡고 하소연했다. 시간을 다투어야 구조에 희망을 걸 수 있는데 거친 바다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사고 원인을 수사하는 검경합동수사팀의 소식도 들려온다. 20년 가까이 된 노후된 배라고 한다. 얼마 전의 법 적용을 받는다면 바다에 나올 수 없는 배인데, 이명박정부 때 규제개혁을 하며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고 한다. 노후한 배인데도 사람과 화물을 더 실을 수 있도록 증축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운항하는 배의 복원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규정대로 채우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직 증축해 구조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는 데다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까지 부족했다면 사고는 예고된 것일 수밖에 없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 상황이 닥쳤는데도 선장을 비롯한 승객 구조의무를 수행해야 할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구하기보다는 자신들만 빠져나왔으니 참으로 어이없고 통탄할 일이다.

정부에 대한 질책도 이어졌다. 한마디로 재난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 우왕좌왕 이었다. 오죽했으면 정부는 없었다는 언론의 비평이 있었을까. 현장을 방문한 장관과 고위공무원들의 무감각하고 비상식적인 언행은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어찌 국민의 안전을 이 정부에 맡겨둘 수 있겠는가라는 극도의 불신이 팽배했다. 정부의 가장 큰 존재이유 중 하나가 국민의 안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국가적 문제다.

노후한 배의 증축과 승무원들의 무책임, 정부의 무능, 이런 것들이 지적되는 가운데‘참사 원인, 결국 돈이었나’라는 한탄 섞인 분석도 제기되었다. 경향신문 박용채 논설위원은 4월 24일자 칼럼에서“애초부터 안전은 고려 사안이 아니었다”면서 안전에 무감각한 선박사와 관련기관들의 공생관계를 비판하고“며칠 전 올해 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탐욕과 천박한 자본주의만 가득한 선진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물었다.

지난달 조계종 교수아사리 포럼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불교의 역할이 논의됐다.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이‘중도로 본 본래붓다와 동체대비행’을 주제로 발표했는데,“사람이 그대로 본래붓다이므로 지금 당장 붓다로 살아야 한다”면서“지금 당장 마음먹고 매 순간순간 전 존재를 바쳐 본래붓다의 동체대비행을 하고 또 하자”고 제안했다.“불교가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며“이 시대의 수행자로서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당신도 붓다입니다’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키고 또 위로할 수 있겠느냐”는 한 스님의 질문에, 도법 스님은“그런 묘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이 그들을 지원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문제”라면서“이런 문제를 계기로 불교계 스스로가 생명가치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생명가치를 중심 화두로 삶의 방법을 모색하는 기회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각묵 스님은“불교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는 없다. 불교는 좀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즉 죽고 사는 문제에 천착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 출가자다운 자세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석 스님은“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것처럼 슬퍼하는 이런 모습이 대승불교의 불타관이자 법신관”이라며“불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스님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부처님은 문제와 갈등이 있는 세속의 여러 현장에 개입해 행위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주거나 스스로 모범을 제공함으로써 민생현안이나 사회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볼 수 있다”며“이 시대가 요구하는 붓다상 역시 고해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건지기 위해 승가를 조직해 다르마를 사회 속에 실천하는 모습이 아니겠느냐” 라며 불교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포럼 내용은 불교포커스“세월호 참사, 부처님이라면…” , 2014. 4. 25. 부분 인용)

각묵 스님과 현석 스님, 금강 스님은 각각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참여불교의 관점에서 견해를 제시했는데, 세월호 참사의 근원을 파헤치고 이에 대한 불교의 역할을 제안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세월호 참사가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 만큼 그 고통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은 검찰과 경찰의 몫만은 아니다. 불교계도 치열한 원인 찾기가 있어야 한다.

종교는 으뜸의 가르침이며, 불교의 회향처는 중생이며, 궁극은 중생의 구제이다.‘ 죽고 사는 문제’혹은 세월호 참사가 되었든 중생을 고통스럽게 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세월호의 슬픔이 실제로 있으며, 이 고통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참여 불교의 확산은 자연스런 시대적 요청이다. 안전 불감과 정부의 무능, 돈벌이에 매몰된 세상에 대한 질타는 물론 이를 바로잡으려는 불교계의 노력은 시도조차 없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심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가르쳤다. 우리 사회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 불교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커녕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불교계의 논의는 일어나지 않았다. 부처님오신날 행사에 묻혔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해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치러진 연등회는 추모의 기조로 진행됐지만, 추모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어린 것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가혹한 세상 만들기에 우리는 일조하지 않았는가, 이런 성찰은 미미했다. 우리의 민낯을 또 보았다.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