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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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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용운┃해인사승가대학 2학년 2014년 05월 387호
4월 14일 새볔부터 시작된 해인사 승가대학 성지순례단의 여정은 당일 오사카 간사히 공항행 비행기부터 당일 날 이어진 동대사東大寺 및 나라현의 사찰 참방으로 이어졌다.
강원 50여명의 대중 스님들과 함께 돌아본 나라, 교토, 오사카 지역의 사찰들은 옛 한반도 도래인渡來人들의 문화와 자연과 조상신 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토속신앙 신도의 흔적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사찰 한쪽에 신사神社가 세워져 있고, 신사 안에 불단이 모셔져 있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특히 신도에서 사용하는 하늘 천天자 모양의 붉은 문인 도리이鳥居가 사찰마다 설치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 중국에서는 도교와 자리다툼을 벌여온 것이 불교의 역사였지만 일본에서는 신도와 불교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지진, 화산 등 일상적으로 천재지변에 노출된 일본인에게 자연은 경외의 대상,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다. 나무, 돌 등 모든 자연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 보편적인 영혼관인 일본인들은 “신도神道에는 800만의 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신도의 신이라는 것도 본래는 부처님이고, 일본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신도의 신으로 화현한 것이며 신도와 불교는 둘이 아니다라는 사상적 체계를 만들어서 습합시켰다는 것이다.

한국과는 달리 진언종 정토종 정토진종 조동종 임제종 등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는 일본에서는 3/4이상이 결혼한 대처승이며 대한불교조계종과 뿌리를 같이 하는 일본 임제종 등의 경우 독신의 승려들도 존재한다. 대처승帶妻僧은 일본불교가 수행과는 거리가 멀며 신앙의 진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한 이유다. 하지만 은사스님의 말씀처럼 대처승의 역사적 기원은 “살아있는 인간 안에서 부처가 나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었다. “끝없이 권력의 주변을 맴돈 일본 불교문화의 이면에서 역사의 힘을 민중에게 돌리면서 생겨난 게 대처승 제도”이고 “나 혼자 붓다가 된다면 의미가 없으며 내 아들을 보살로 만들겠다”라는 사상으로 중생 속의 부처를 적극적 제도로서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찰들도 요즘 활기를 띠고 있지만 일본 사찰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행사장이자 전시장이었다. 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법회시의 동대사東大寺는 우리나라의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통도사의 화엄산림법회를 훨씬 뛰어넘는 화려한 의례가 펼쳐지는 듯 보였고 15일에 참배했던 교토의 33간당三十三間堂은 중앙에 자리잡은 본존 천수 관음 좌상과 좌 500, 우 500, 총 1000상의 천수 관음 입상들이 신성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연출하기도 했다. 임제종 종립대학 하나조노대의 현대건축과 불교가 접목된 강당, 선종사찰 양식이 그대로 나타난 임제종 총본산 묘심사妙心寺의 퇴장원退蔵院이나 금각사金閣寺의 연못과 어우러진 전각 등은 자연그대로의 한국사찰과 달리 인공과 자연미가 결합된 명상 공간이었다.

나라현 법륭사法隆寺에서는 고구려 출신 승려였던 담징의 벽화와 백제인들의 옛 자취를,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건립을 지시했던 교토 광륭사廣隆寺에서는 불교를 통해 새 시대를 열려했던 지배층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東大寺 대불전에서는 거대한 청동 비로자나불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온화롭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화현해 있었다.

성지순례 마지막 날인 16일, 오사카성에 들르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사천왕사에서는 때마침 염불중이시던 일본 스님을 뵐 수 있었다. 문자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부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는 그 스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이심전심以心傳心되어 가슴을 울렸다. 근처에 있는 사천왕사 부속 학교를 보면서는 ‘일본에서는 불교계가 직접 정규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포교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부속 병원을 보면서는 ‘이거다! 살아있는 불교와 살아있는 보살도는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역할들을 기독교 쪽에서만 주가 되어 해내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과거 우리나라 불교와 스님들이 시대를 선도先導하고 사회를 리드(lead)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응 이정 자장 의상 나옹혜근 태고보우 등의 많은 구법승들이 당시 세계나 다름없던 중국과 인도를 유람하며 견문을 넓히고 전법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구법승들은 불교뿐만 아니라 선진 외국문물도 가져왔다.
먼 미래에 우리 해인사 승가대학의 학인스님들은 한국불교 또는 세계불교의 기둥이 되고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일본불교의 과거와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던 이번 성지순례는 훗날 국내와 세계로 빛을 발할 한국불교의 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