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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라는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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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법구경 - 김서리 2014년 05월 387호
교실 가득 만연한 오후의 나른함을 뚫고 누군가가 완전히 내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교실의 맨 앞줄 가운데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나의 말들을 바로 바로 흡수해버리는 18살 방글라데시 사미스님이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나의 영어문장들은 강의라는 핑계로 교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가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막힐 때가 있었다. 딱 그 순간, 그 사미스님은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적절한 단어를 알려주셨다. 수업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내가 할 말들까지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이것은 태국 불교대학 강사시절의 일이었다. 그렇게 그 사미스님의 입모양 영어단어에 여러 번 신세를 지며 무사히 첫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오후의 나른함에도, 땀 냄새의 불쾌감에도, 빠알리어 문법 특유의 딱딱함과 지루함에도, 강사의 엉성한 영어실력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 때 자신이 앉아있는 그 곳에서 최선을 이끌어내는 그 사미스님은 주변의 다른 학생스님들을 본의 아니게 배경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그만이 선명하게 돋보였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모든 강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학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아시아의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곳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비단 공부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중들은 환경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습관에 지배되기 쉬운데, “지금 여기”에 순간순간 깨어있으면서 몰두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리고 주변까지 밝게 비추곤 한다. 마치 진흙 속에서도 핀다는 연꽃처럼 말이다. 다음의 법구경이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다.

yathā saṃkāradhānasmiṃ ujjhitasmiṃ mahāpathe
야타 쌍까라다나스밍 웃지따스밍 마하빠테
padumaṃ tattha jāyetha sucigandhaṃ manoramaṃ, ①
빠두망 땃타 자예타 수찌간당 마노라망

큰길에 내버려진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듯②《법구경 58》

evaṃ saṃkārabhūtesu andhabhūte puthujjane
에왕 쌍까라부떼수 안다부떼 뿌투자네
atirocati paññāya sammāsambuddhasāvako.③
아띠로짜띠 빤냐야 삼마삼붓다사와꼬

쓰레기 같고 눈먼 중생들 속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깨달은 이(=붓다)의 제자는 지혜로 인해 밝게 빛난다. 《법구경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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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yathā: ~와 같이. saṃkāradhānasmiṃ: 쓰레기더미에서. ujjhitasmiṃ: 내버려진. mahāpathe: 큰 길에. padumaṃ: 연꽃이. tattha: 거기에. jāyetha: 생길 수 있다. sucigandhaṃ: 향기로운. manoramaṃ: 아름다운.
②여작전구如作田溝 근우대도近于大道 중생연화中生蓮花 향결가의香潔可意(한역법구경)
③evaṃ: 이와 같이. saṃkārabhūtesu: 쓰레기 같은. andhabhūte: 눈먼. puthujjane: 중생들 속에서도. atirocati: 밝게 빛난다. paññāya: 지혜로 인해. sammāsambuddhasāvako: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깨달은 이(=붓다).
④유생사연有生死然 범부처변凡夫處邊 혜자락출慧者樂出 위불제자爲佛弟子(한역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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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밖에서 대중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혜안慧眼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대중 가운데에서 연꽃과 같은 지자智者를 알아볼 수 있으랴. 필자는 다만 대중 속의, 환경 속의, 자신의 숱한 습관들 속의 자기 자신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나의 업장과도 같은 습관들 속에서 얼마나 깨어있는가, 얼마나 깨어서 “지금 여기”에 몰두하고 있는가.
법구경 59에 나온 “지혜로 빛나는 붓다의 제자”와 “쓰레기 같고 눈먼 중생들”이 항상 서로 타자他者일 리는 없다. 환경에 휩쓸려 버리는 나의 나약함이나 습관에 지배받는 나의 게으름과 같은 것들이 쓰레기 더미이자 눈먼 중생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묵은 때와 같은 자신의 습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그 순간이 바로 향기롭고 아름다운 연꽃이며, 지혜로 밝게 빛나는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170명에 가까운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을 면담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떤 아이들은 환경과 습관에 짓눌려 스스로가 만든 틀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이 있고, 어떤 아이들은 참 눈에 띄게 생각이 유연하고 밝은 아이들이 있다. 그 어떤 누구도 아직은 연꽃이다 아니다 라고 나의 어리석은 눈으로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언제든 “지금 여기”에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의 그는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운 것이다.
나의 20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이들의 어여쁜 모습을 보며 그들의 밝은 삶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나의 20대와는 또 다른 나의 마음의 청춘을 향기롭고 아름다운 연꽃처럼 피워보길 희망해본다. 그간 낀 많은 때와 숱한 습관, 그리고 무겁고 탁한 환경을 먼지 털 듯 털어내 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 여기’라는 연꽃을 곱게 곱게 피워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