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하쿠나 마타타 잔지바르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4년 05월 387호
섬이란 때론 그렇게 독특합니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유일하게 힌두교의 영향 하에 힌두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는 섬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로 발리는 서핑을 하는 유명한 휴양지이지만, 제주도 세배 크기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섬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힌두 문화권의 모습을 지키는 곳이었기에 그런 점에서 저에겐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섬이었습니다. 탄자니아의 자치령인 잔지바르 역시 기독교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종교와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하나의 섬입니다. 그 잔지바르 섬에서 스톤타운은 오래전 중계무역을 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무슬림들이 지은 흰색칠을 한 낡은 석조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한 잔지바르의 중심지입니다. 미로같이 펼쳐진 스톤타운의 골목들을 거닐다 보면, 아랍의 여느 도시에서나 나올 듯 한 무슬림 복장의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거리를 걷다보면 비록 아프리카에 있지만 인도 북부의 이슬람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애초에 시작은 아랍의 무역상들이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 아프리카 사이에 무역을 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잔지바르에 정착을 했었지만 단지 이슬람만이 잔지바르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와도 오랜 역사동안 향신료를 교역하면서 사람이나 거리에서 언뜻언뜻 인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인도 카레는 이곳에서 아주 평범한 식단이 된지도 오래입니다. 후에 역사를 거치며 잔지바르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고 노예들이 거래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교회 양식의 건물도 섬 곳곳에 틈틈이 보이고 과거 식민지 시대의 치열한 쟁탈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포탑 몇 개도 빛바랜 유물처럼 도시 군데군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아프리카 본토의 모습도 자연스레 뒤섞여 있어 잔지바르는 이슬람과 인도의 힌두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과 아프리카의 전통 문화가 한꺼번에 뒤섞인, 아주 복합적이면서도 희귀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 저에겐 매력적인 섬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의 잔지바르는 물론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도시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성격을 스며내고 있는데, 잔지바르의 특징은 바로 여유로움입니다. 그냥 어지럽게 뻗어있는 스톤타운의 골목거리를 다니며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오후의 햇빛이 뜨거운 항구나 모래사장을 별일 없이 거닐고, 잔지바르 북쪽의 능귀에서 해질녘의 평화로운 석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으면, 그대로 이곳의 시간이 정지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리만큼 여유로움을 스며내는 곳입니다. 휴양지로서 지녀야 할 첫째 덕목은 언제나 여유로움인데 그러한 점에서 잔지바르는 기본을 충실히 하는 휴양지이고 이 여유를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광과 휴식의 섬인 잔지바르에는 여러 가지 갖가지 향신료를 채취해보고 맛보는 향신료 투어를 비롯해 몇몇 유명한 투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인상적인 경험은 역시 돌고래 위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돌핀 투어였습니다. 한국에서 꽤나 인기를 끈 오래된 영화 <그랑블루>를 인상깊게 본 탓도 있겠고 돌고래라는 동물이 주는 아련한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바다에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저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염도가 비교적 높은 인도양의 바다에선 따로 안전조끼를 입지 않아도 물위에 어렵지 않게 떴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함께 돌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잔지바르 남쪽의 바다까지 보트를 타고 나가 돌고래 무리를 찾았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보트에서 대기하며 돌고래가 물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보트의 선장은 점프를 외쳤고, 이와 동시에 보트 위의 사람들은 바다로 몸을 던져 열심히 돌고래를 따라 수영을 했습니다. 3, 4 미터 간극을 두고 바다 깊은 곳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돌고래를 따라잡으려 열심히 핀킥을 했건만 제 아무리 여유로운 돌고래도 사람보다는 훨씬 빠르다는 게 현실적인 상황이기는 했습니다.
여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잔지바르는 그 어떤 다른 곳보다 좀더 각별한 기억으로 남는 듯합니다. 이 섬을 둘러싼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자취들은 오래된 유적으로나마 희미하게 남아있고 그 기억에 기대어 잔지바르는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렇다할만한 산업기반 없이 관광에 거의 대부분의 수입을 기대고 있는 잔지바르이기에 인구 평균당 하루 수입이 채 1달러도 되지 않는다는 ‘우리들’의 산술적인 계산은 그들에게 그닥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잔지바르의 아이들은 매일 저녁마다 해질녘의 황금빛으로 물드는 서쪽 바다를 향해 뛰어들 때마다 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미풍을 가로지르며 멋진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달려가 누가 더 멋진 포즈로 공중에서 자세를 취하고 입수를 하는가가 섬에 사는 그 아이들이 서로 뽐내는 자랑거리입니다. 아무 문제없어, 라는 뜻의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가 하루에도 수차례 일상적인 대화에 자리잡힌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하루 일당으로 따져도 수십배도 더 많이 버는 한국 사회가 가까스로 부여잡으려는 희망같은 이 문구가 일상의 가벼운 미소와 함께 녹아든 이곳이 바로 잔지바르였고, 그래선지 더 어떤 면에선 부럽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