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스님 계실 때 부터 백련암에는 초파일등을 달지 않았습니다.
“내가 명색이 해인사 어른으로 있으면서 큰 절이 아닌 지(자기) 암자에 등을 달면 되겠나.?” 하는 말씀으로 그 이유를 설명 하신 듯 합니다.
따지고 보면 길 없는 길 이라 듯이 산길도 겨우 나 있는 인적이 끊어져 있는 백련암에 초파일 등 달러 오는 사람도 몇이나 있을까 싶은 한적하고 한적한 백련암이었습니다. 또 큰스님께서 스님으로서 절을 떠나 신도 집을 드나드는 것을 무척 싫어 하셨으니 도시로 나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등켜기를 권선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 큰스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백련암에서 초파일 등불을 밝힌다는 것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 아닌가 이해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니 백련암에서 큰스님을 모시고 산 상좌스님들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등 만드는 연잎도 제대로 말지 못하는 부끄러운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뒤, 그때는 백련암에 자동차길이 생긴지 몇 년이 지난 뒤입니다만, 절 살림이 걱정이 되고 해서 신도님들에게 “초파일 등을 달고 싶다.”고 뜻을 내 비쳤더니 신도님들부터 먼저 기겁을 하십니다.
“스님, 큰스님께서 초파일 등을 달지 않으셨는데, 큰스님 뜻을 지켜 가셔야지 어떻게 스님께서 그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하며, 얼마나 실망스러워하는지 정말 민망해서 두 번 다시 “초파일 등 달자.”는 생각은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말은 세월입니다. 종종 초파일이 가까워오면 신도님들이 “초파일 등을 달고 가겠다”고 요청을 하시면 “큰스님 뜻으로 백련암은 등을 달지 않으니 큰 절에 가서 달아 주십시오”하고 말씀드립니다.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의아해 하시다가 “큰스님 뜻 이라시니 큰절에 등을 켜고 가겠습니다.”하고 발걸음을 돌리시지만, 발걸음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정을 곧 잘 느끼곤 하였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젊었을 때는 꽃을 별로 좋아하시지도 않았고, 화사한 꽃이 마당에 피어 있으면 오히려 젊은 수좌들에게 방해가 된다 하시며 일부러 꺽어 버렸다는, 강직한 성품의 일단을 나타내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들을 앞 스님들로부터 듣기도 하였습니다.
백련암으로 출가 하였을 때 뜰 앞 화단에 붉은 모란꽃도 피고 작약 꽃도 불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70세 전후가 되셔서 “소나무도 울창하고 바위도 쭝긋쭝긋하여 좋다만 백련암에 꽃을 한번 심어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화승의 현승훈 회장님께 큰스님의 뜻을 말씀드려서 주차장 주변에서 시작하여 적광전 앞까지 바위 돌을 앉히고 영산홍과 철쭉들을 심었습니다. 5월 중순이면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큰스님께서 꽃밭을 둘러보곤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는 이 아름다운 꽃밭도 10여년을 무심히 보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꽃밭을 둘러보니 영산홍과 철쭉의 꽃나무 보다 함께 심어놓은 가로 뻗는 주목들이 더 무성하여 꽃밭을 황폐화 시켜가고 있었습니다. “큰 스님 께서 말년에 아끼셨던 꽃밭을 이렇게 방치하였구나!” 하는 참담함에 마음이 크게 아팠던 기억입니다. 일꾼들과 함께 무성히 뻗은 주목의 가지를 과감히 잘라내고, 그 기세에 눌러 가지를 뻗지 못하던 영산홍과 철쭉들을 다시 다듬고 비료와 퇴비들을 가을이 되면 거두어 주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니 큰 스님 계실 때처럼 꽃이 봄이 되니 화사하게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무슨 꽃 색깔이 많았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그 후 꽃밭을 자세히 살피니 큰 주차장 주변에는 붉은 색 꽃 보다 흰색 꽃이 훨씬 더 많이 피어났습니다.
“큰 스님께서 흰색 꽃을 좋아 하셔서 현회장님께 특별히 부탁하셨나보다”고 혼자서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꽃이 피면 흰색이 그렇게 청초하게 다가옵니다.
어느 해 이런 아름다운 꽃밭을 백련암 신도님들은 정말 모르고 지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쳐 “초발심 찾아가는 철쭉제”라 이름 붙이고 5월 둘째 토요일을 정하여 5~6년 전부터 꽃 잔치를 시작했습니다. 바깥으로 초파일과 겹치고 안으로는 4월아비라 기도 기간과 겹쳐서 우리 신도님들에게는 그 반응을 못 얻고 있습니다.
오시는 모든 분들께 새 봄 쑥떡을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니 꽃밭에는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한창 볼록볼록 눈을 틔우고 있고 백련암 일주문 오르는 계단 옆에는 시내에서는 다 져버린 목련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처음으로 목련꽃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백련암에는 초파일 연등 켜기가 아니라 큰 스님께서 좋아하시며 거닐으셨던 것을 기념하여 “철쭉제”로 대신하고 있으니 산내의 사부대중께서는 물론이고 많은 신도님들 께서 큰절 초파일 등 축제에 오시면서 백련암 철쭉제도 즐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