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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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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승원┃해인사 지족암 2014년 05월 387호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분들 모두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며, 참화속에서 벗어나 목숨은 건졌으나 사고의 고통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분들과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수많은 분들이 모두 이승의 삶에 희망을 가지고 일상생활로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02시 4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켜고 나서, 오늘도 하루라는 시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나에게 허락되어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씻고 법당으로 올라가서 새벽예불을 준비한 다음에 도량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남아있는 다만 몇 분의 시간동안 사위를 둘러보고, 크게 숨을 들이켜고, 귀를 기울여본다. 조용하다. 참으로 조용하다. 가끔씩 잠 못 이루는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잠투정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03시. 또르르르르르륵… 도량석을 시작한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공기속으로 목탁소리를 서서히 서서히 퍼뜨려본다. 이제는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알리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렇게 맞이하는 지족암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다양하고 경이로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깊은 새벽의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사위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기 시작하는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질거린다. 저렇게 작은 몸에서 어찌 이리도 큰소리를 쉴 새 없이 뿜어내는지 감타스러울 정도로 새들의 지저귐은 꽤나 오랫동안 계속된다.
산은 산대로 스스로 몸을 가꾸어가고 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비가 내린 요즘, 메말라있던 나무에 새잎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번 퍼지기 시작한 새잎의 번짐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산의 얼굴을 바꾸어가고 있다. 새로 단장하는 싱그러운 색상의 산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마술을 하루 종일 펼쳐 보이고 있어서, 산속에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없이 웃도록 만들어 준다.

산 속의 낮은 바쁨과 한가함의 반복이다. 해인사 큰절에 왔다가 산내 암자로 참배하는 불자님들이 가끔 지족암 부처님께도 참배하고자 들르면, 시간적 여유가 허용하는 한 함께 차나 커피를 마시며 지족암까지 찾아준 정성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각처에서 열심히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계신 스님들이 바쁜 시간을 내어서 지족암에 찾아오면 함께 말벗 삼아 차를 마시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외부사람의 발길이 끊기는 날에는, 하늘을 벗삼고 산을 벗삼고 새들을 벗삼고 나무를 벗삼아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게 되니, 수많은 대화를 하지만 정작 여유는 넘쳐나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곤 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나면 이번에는 하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작고 맑은 많은 별들이 소리없이 재잘대기 시작한다. 구름이 끼거나 보름달이 뜰 때면 그 여린 빛을 잃기는 하지만, 맑은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을 바라볼 때면, ‘아! 참으로 별 볼일 있는 세상이구나!’하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나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법보종찰 해인사 옆에 자리하고 있는 지족암은, 매달 첫 번째 일요일 법회날이 한 달 중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날이며 법회날을 제외하면 무척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말 그대로 절집같은 절집이다.
이렇게 조용한 지족암이, 법회날도 아닌데 신도들의 목소리로 들썩거리고 있다. 바로 법당에 달아놓을 연등을 만들기 위해, 바쁜 일정중에서도 멀리서 지족암까지 찾아준 신도들의 대화소리이다. 불과 며칠 전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여, 집에 있으면서 많이들 속상해하고 많이들 눈물 흘리다가 지족암을 찾아준 신도들이기에, 지족암에서 연등을 만드는 시간만이라도 슬픔을 잊을 수 있도록 가벼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산이 깊은 겨울을 보내고 싱그러운 새잎으로 얼굴을 치장하는 봄날이 되면, 지족암도 매년 이맘때 법당을 새로 단장해오고 있다. 일년동안 법당에 매달려있던 묵은 연등을 모두 내리고, 여기저기에 계시는 신도들이 정성으로 말아준 연잎으로 법당 연등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연등에 붙일 연잎을 하나하나 정성껏 말아서 상자가득 담아온 것을 가지고, 초파일을 앞둔 이즈음에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지족암에 모여서 함께 연등을 만드는 이 소중한 시간은, 지족암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라고 감히 자부해 본다.
올 해도 예년처럼 지족암 법당에는 새로 핀 예쁜 연등이 만개할 수 있도록 차분히 준비해 나가고 있지만, 이 깊은 산속까지 들려오는 침체된 경기와 그에 따른 힘든 가계생활의 한숨소리는 연등에 달리는 꼬리표의 개수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
침체된 경기가 살아나고, 우리나라 국민의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모두의 마음속에 잦아들어 있는 불심佛心이 다시한번 뜨겁게 타오르는 날이 오기를, 신도분들과 함께 연등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서 발원해본다.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서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서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