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년 전 월정사 대적광전을 처음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대적광전이 일본식 건물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청동기와 때문이었습니다. 청동판을 기와모양의 금형으로 찍어낸 청동기와는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이어져 있었고 색깔 또한 완벽한 단일 색 이었습니다. 우리 전통 조선기와는 굽는 과정에서 약간씩 뒤틀어집니다. 또한 색깔도 검정색, 회색, 갈색 등이 뒤섞여 나옵니다. 물론 기와를 얹으면서 조금씩 삐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조선 기와에 친숙해진 제 눈에 월정사 대적광전의 청동기와가 일본사찰의 완벽한 기와지붕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한국인이 만든 물건은 이처럼 완벽치 못한 구석이 있어야 ‘국산’으로 보이는 가 봅니다.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세계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하나뿐이어서 발굴 초기 때 ‘혹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것은 아닌 가‘ 하는 의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실의 안병찬씨가 한국일보 최성자 기자에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최기자,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줄까요. 저 향로가 보존처리를 하기 위해 처음 이방에 왔을 때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고 한국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어요. 왠지 아세요? 우리나라 유물의 특징 때문이지요. 끝마무리가 좋지 않은 거예요. 이 걸작품도 예외가 아니더라고요” 저는 이 글을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민족은 이렇게 세계적인 걸작품을 만들면서도 적당히 마무리하는 습성이 있는 것입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에 올라가 보면 두 번 놀라게 됩니다. 첫 번째는 주변풍경과의 어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이고 두 번째는 천장에 쓰인 보의 모양 때문입니다. 기둥과 기둥사이를 연결한 굵은 보들의 모양이 제 각각으로서,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쓴 모양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구례 화엄사 보제루의 휘어지고 뒤틀어진 루하주도 자연미의 극치이고, 선운사 만세루의 안과 밖에 쓰인 휘어진 기둥들에서 조선인들의 심성이 그대로 들어 납니다. 기둥이나 보의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굽어진 나무면 어떻고 뒤틀어진 나무면 어떻습니까. 인위적인 것이 적을수록 사람의 마음은 편해집니다. 완벽함을 뛰어 넘는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해인사 일주문은 절 규모에 비해 작고 고졸해 보입니다. 주변 나무들과 어울려 있는 듯 없는 듯 합니다. 1900년대 초에 찍은 사진에 일주문 좌우로 낮은 담장이 보입니다. ‘여기부터 절 영역입니다’라는 의미이지요. 넓은 절을 담장으로 둘러치지 못하는 대신 상징으로 남긴 것입니다. 현재 모습에 담장을 그려 넣어서 옛 정취를 살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