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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변상도-비로자나불의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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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불화 이야기 - 김현정 2014년 04월 386호

<화엄경변상도> 견본채색, 165.0×58㎝, 고려시대 13세기, William Sturgis Bigelow collection courtesy, Museum of Fine art, Boston, USA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에서 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위치는 지대하다. 이것은 물론 법화와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양대 산맥이 대승불교운동의 시작부터 불교를 지탱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화엄종의 도입이 본격화 된 신라시대부터 경전의 참구를 연구하는 교종이나, 선 수행을 우선하는 선종에서 모두 화엄경은 소의경전에 버금가는 정도로 연구했던 다대한 의미가 있는 경전이었다. 독자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 연재를 시작한 제일 첫 회에도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 변상도를 감상한 것도 신라시대 화엄종과 화엄경의 위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였고, 또 다음으로 감상한 <수월관음도>, <비로자나불도> 모두 화엄경을 사상적 배경으로 한 도상(圖像, Icon)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명실공히 화엄과 법화경 이 두 경전이야말로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살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적멸도량(寂滅道場)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셨던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정각을 이루신 후 부처님의 진리는 천상의 보살과 천인들과 신장들에게까지 전해져 마음에 번뇌가 없어지고 견고해 졌으며 여래의 바다에 들어가 부처님의 법문에서 자재를 얻게 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여래의 설법은 바로 중생의 구제로 이어졌으므로 비로자나불과 중생의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가 바로 보살이 되는 것이고, 비로자나불의 진리와 번뇌의 중생을 하나로 묶어서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보살행인 것이다.
보스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엄경변상도>에는 보살과 같이 보관을 머리에 쓰고, 중품중생(中品中生)의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이 중앙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 머리에 보관을 쓴 부처님의 도상은 흔한 것이 아니어서 많은 독자들은 아마 보살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로자나삼존불 중 보신불(報身佛)인 노사나불 이렇게 보관을 쓰고 중품중생인을 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화엄경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진리와 중생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정각과 설법이라고 하는 행(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행(깨달음)과 설법이야 말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하는 보살행의 본질이라고 말 할 수 있으므로 노사나불(비로자나불)이 보살 같은 보관을 쓰게 된 것이다.
또 두 팔을 벌려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중생수인은 범천왕의 청법(請法)처럼 대부분의 중생들이 중간 정도의 근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님의 설법을 통해 이들은 수면에 뜬 연꽃과 같이 진리의 바다로 들어가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중품중생의 설법수인은 중생을 향한 설법을 상징하는 전법륜(轉法輪)을 강조한 수인이다.
그럼 마갈제국 보리수 하 여래의 설법처로 우리도 함께 들어가 보자. 부처님의 좌우에는 각각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였고, 그 아래로 열 분의 보살, 이 좌우에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기다리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비로자나여래를 행해 앉아 있는 선재동자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좌우와 하단에는 천왕과 귀왕, 금강역사, 제석천 등 천신들이 비로자나여래의 설법회를 찬탄하는 권속들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선재동자에 대해서는 수월관음도를 이야기 하며 간단히 언급했거니와 그가 주인공인 <입법계품>은 화엄경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화엄경과 관련된 불화에서 입법계품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불화는 고려불화 중 유일한 <비로자나설법회도(毘盧遮羅說法會圖)>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작품이며, 이 독특한 도상을 통해 고려 화엄사상의 지향점이 중생을 향한 보살행을 강조하였음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