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첫 인연이 궁금합니다.
79년도였을 겁니다. 스무 살에 3년 정도 있었어요. 사회생활하다 결혼하고. 2001년도에 다시 오게 됐죠.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건강이 나빠져 쉬고 있었어요. 그러다 해인사 스님께서 구광루에 있던 갤러리를 봐달라고 하셨죠. 매일 아침 법당에 가서 108배와 기도를 꾸준히 했어요. 하다보니 건강이 좋아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더군요. 내가 좋아지니 주위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더군요. 밖에서 아웅다웅 사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땐 참 재밌었죠. 스님들도 직원들도 한 식구 같았어요. 직원들 단합모임에도 국장스님들의 관심과 후원도 컸고, 스님들께
스스럼없이 고민상담도 받으러가고.(웃음)
미모가 뛰어나셨다 들었습니다.
4월의 초봄 같았을 스무 살. 그 시절 이야기 들려주세요.
누구나에게 스무 살 시절은 그 자체로 예쁘지 않나요? (웃음) 전 그 시절 해인사에서 있었죠. 당시 일주문 아래 육각전, 팔각전이 있었어요.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육각전의 일을 돕고 있었죠. 용돈 삼아 7만원을 받았어요. 오래된 국사당이 있었는데 아침마다 108배 하고 다기물 갈고 청소까지 했었죠. 스님들께서 해우소 청소하면 예쁜 딸 낳는다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했었구요. 어릴 때 아버지께서 부처님은 항상 마음에 계시니까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바른 행
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죠. 절일을 우리 집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스님들께서 착하다고 많이 예뻐해 주셨죠.(웃음) 당시 선방과 강원이 단합축구대회를 하면 종무원식구들, 비구니 스님들이 모두 가서 응원했어요. 그러면 보살들은 또래의 멋지고 잘생긴 스님을 응원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강원스님 편을 들어 응원하다보면 선
방스님들이 장난스레 흘겨보시고‘끝나면 보자’라고 말씀하셨죠.(웃음) 그 후환으로 우린 손들고 벌서기도 했었어요. (그 시절 이야기를 더 꺼내봐 달라고 졸랐더니, 쑥스러우신 듯 웃으시고는) 한번은 그런 일이있었어요. 당시 행자반장님의 호출이 있었죠. 나보다 한 살 많은 행자님께서 저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하셨대요. 그래서 행자반장님은 저에게 이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죠. 전 그랬어요. 당시 출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행자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저도 출가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상황이 잘 마무리되고 나서 지금, 그 행자님은 부산에서 큰스님이 되셨다는 후문이 있어요. 그리고 그때 그 행자반장님이 (웃음) 해인사승가대학장을 지내신 종묵 스님이시구요.
어린 시절의 해인사 스님들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스님의 주머니 속에는 항상 사탕, 과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보면 꼭 주머니에서 꺼내주시곤 했으니까요. 어린마음에 스님들 입적하시면 좋았죠. 다비장에 가면 과자나 사탕봉지를 많이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어머니가 집에서 스님들께 공양을 대접해드리곤 했었는데 우린
딸 부잣집이었거든요. 그러니 스님들께서 종종‘한 놈은 스님 따라 머리 깎자’고 하시면 무서워 도망가곤 했었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저에겐 스님들은 위엄 있고 어려운 분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식구, 오빠 동생과 같이 편안한 분들이었죠. 그러니 절에서 일을 하며 지내는 생
활이 어렵지 않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해인사에 계시면서 자부심과 보람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고충도 함께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스님들이나 신도님들께서 저를 알아봐 주
시고 반가워해주실 때인데요. 스님들께서 옛날의 저를 기억하시고 불연각에 들르시면‘보살은 계속 여기 있어야 될 사람이야’라고 말씀하실 땐 저도 보람을 느끼죠. 그리고 신도님들도 직원이 자주 바뀌면 서운하신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반가워해주세요. 그럼 저도 더욱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 드리죠.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라면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해인사요!’라고 말할 때이죠.(웃음) 업무적으로 힘든 점이라면 불연각은 정가판매를 원칙으로 해요. 그런데 할인을 문의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저희가 따로 조정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안타깝게 생각하죠. 그리고 (웃음) 어느 국장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요.‘연순보살 아는 데 6년 걸렸다’고. 무슨 뜻이냐면 제가 겉보기에 좀 세보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독하게 대할 것 같고. 그래서 오해를 자주 받게 되죠. 그럴 땐 씁쓸해요. 알고 보면 속은 참 여리거든요.(웃음)
해인사 종무원으로서 바람이 있으시다면.
옛날에는 국장스님들께서 자기 부서 가리지 않고 잘 대해주셨어요. 가족적인 분위기가 따뜻하고 좋았 었죠.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국장 스님들의 관심과 칭찬은 종무원들에게 의욕과 사기를 일으키죠. 이런 작지만 사소한 배려와 관심이 해인사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요.(웃음) 인터뷰가 끝나고 편집실 한켠에서 야생화사진집을 꺼내드신다. 꽃을 좋아하신다며 반갑게 책장을 넘기다 이내 시선이 고정된다. 그곳엔 우리들의 그 시절을 닮은 조그맣고 여린 새하얀꽃이 함박 피어 있었다. 새소리가 잦아든다. 이내 해인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나무사이로 안개가 비집고 들어선다. 이 비가 지나가면 단단함을 비집고 나온 보드라운 새순이 아침 햇살에 맑게 빛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