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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에서 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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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4년 04월 386호

무거운 배낭여행을 메고 세계 일주를 1년 남짓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도 다분히 그랬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유럽 일주를 마치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지나서 들어온 곳은 메마른 땅 이집트였습니다. 세계 불가사의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피라미드가 있고 나일강을 주축으로 찬란한 고대문명을 일구었던 이집트이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서 다합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합은 스쿠버 다이빙의 명소이기도 하려니와 한번 들어서면 그 매력과 안락함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는 세계 3대 블랙홀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다합이 무엇보다 저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집트에서 나는 쌀 때문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한식을 그리워했던 와중에 이집트에서는 우리 표현대로 동남아의 길쭉한 날림쌀이 아닌, 한국의 오톨도톨한 찰진쌀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스쿠버 다이버 강사분께서 운영하는 한국 숙소에 들어가 전기밭솥에 밥을 짓고 통조림 붉은 콩과 계란, 몇몇 푸성귀를 넣고 고추장을 비벼 먹으면 한식에 대한 갈증이 상당부분 해소가 됩니다. 이곳을 들르고 떠나는 친구들이 간혹 남기고 간 된장으로 시장에서 몇몇 채소들을 넣고 끓이면 따뜻한 밥 한그릇만 있어도 행복한 식단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식에 대한 갈증은 다합에서 상당부분 충족되었습니다.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다합에서의 날들입니다만, 역시 스쿠버 다이빙을 빼 놓을 순 없겠지요.
저는 남들처럼 스쿠버 다이빙을 꼭 해봐야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물속의 기이한 생명들을 직접 가까이 보고 싶단 게 스쿠버 다이버들의 첫번째 열망이지만, 저는 약간의 호기심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은 어느정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수영을 하지 못해서 언제나 조심을 해야 할 형편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다합에 들어서니 남들 다 하는 스쿠버다이빙이니 나 역시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별스럽지 않은 생각에 무심코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습니다. 오픈워터를 기본으로 해서 어드밴스 코스까지 등록하고 한국에서 찾아온 형제 두 명과 함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물 속에서 하는 액티비티이니만큼 안정상의 이유로 여러 중요한 원칙들이 있겠지만 스쿠버다이빙에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중성부력입니다. 중성부력은 물속에서 부력과 중력의 힘이 동일해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력 조절 장치인 BCD와 호흡, 수중에서의 자세,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중성부력을 맞추는 게 스쿠버다이빙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체험할 적에 이 중성부력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해서 물밑바닥으로 내리꽂고 수면위로 솟아오르는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물속에서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나니 수중에서 미세한 호흡 조절만으로도 가만히 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비근한 비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이 중성부력은 부처님의 설법 중 거문고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거문고의 줄을 너무 느슨하게도 그렇다고 너무 팽팽하게도 하지 않게 해야만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양성과 음성 부력을 잘 조절해서 중성부력을 유지해야만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거문고 줄로 비유된 것처럼 고행과 방일에 치우지지 않는 수행이나 물속에서의 중성부력은 형식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에서의 중간이고 기본 바탕이지, 궁극적 차원의 중도(中道)라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성부력을 유지하게 되면 우선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기에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 있고, 이렇게 안정된 마음 상태에서 유영을 하면 호흡을 덜 소모하여 오랫동안 평온하게 다이빙을 할 수 있습니다. 중성부력은 좀 더 오랜 시간 평온하게 유영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 과정이고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지,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을 한다는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수행도 마찬가지로 고행과 방일에 치우치지 않게 그때그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훈련입니다. 이는 훈련으로서의 기본이고 과정이지 그 중간 자체가 고행과 방일의 양변을 궁극으로 벗어난 중도는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저 역시도 수행자이지만 일여하게 그 중간이 유지되지 않음을 인식할 때에는 그 균형점을 찾으려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줄이 조여진 정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소리를 내는 상황이 바로 수행이 제대로 익어가는 과정의 바른 비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면 수많은 조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거문고같은 악기조차도 없이 소리 없는 소리로 연주를 하고, 듣는 소리도 보게 되는 경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중도(中道)의 묘리가 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튼 그렇게 저는 적당히 중성의 부력을 다잡아가고 훈련 코스를 마친 다음에 다합의 홍해 바다 곳곳에 위치한 다이빙의 명소들을 찾아가보았습니다. 바다 깊이 들어갈수록 얕은 물가에서 스노클링을 할 땐 잘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수많은 어류들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풍경과 생명체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꼭 남다른 세상과 존재들이란 생각만이 드는 건 아니었습니다. 저것들 또한 내 마음이 지어낸 기묘한 모습들이겠거니 싶어, 이런 것들까지 지어내느라 참 애쓴다며 물속에서 혼자 피식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바로 블루홀입니다. 검푸른 심해가 밑도끝도 없이 펼쳐져 보이지 않는 그 바다의 한 가운데 서면 많은 사람들은 으레 근원없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벽을 부여잡고 그 블루홀을 조심조심 헤쳐나갑니다. 그러나 저는 그 푸르다못해 시커먼 해저를 바라보며 저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몸을 던져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납니다. 제 아무리 깊게 들어간다고 해서 마음 밖의 일이겠냐 싶어, 그 밑바닥까지 한번 천천히 밀도있게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소리없는 흥분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를 떨리게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