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에 앉아 가섭 스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이 물끄러미 허공을 보시다 문득 꿈 한 자락을 펼쳐놓으신다.
“난 이런 꿈을 꿔 봐요. 일 년에 두 번 해제하는 날, 서울역에서 종정스님하고 총무원장스님하고 선방스님들천여 명이 홈리스들을 포옹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발을 씻겨주는 거예요. 아니면 초파일을 앞두고 전국의 역 앞에서 스님들이 동시에 희망의 문구가 담긴 카드를 나눠주며 탁발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탁발 들어온 걸 모두 기부하는 거죠.”
참 꿈같은 이야기지만 어느 날 그 꿈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은, 참 여법한 이야기다. 가섭 스님은이 시대의 불교는‘불교를 위해 존재하는 불교’가 아닌‘대사회적으로 희망을 주는 불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상 위의 권위적인 불교도 문중을 따지는 파벌 불교도 다 좁은 우물 안의 이야기다.“이 사회는 끊임없이 불교를 바라보고 있어요. 불교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위로 받고 싶어 합니다. 중생의 손을 잡고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자, 그것이 이 시대가 한국 불교에 요구하는 바일 것입니다.”대중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종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에 불교가 오롯이 서지 못하는 것은 수행자들의 중생에 대한 연민과 자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불교가 이 사회를 위할 때에 다시금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신다.“우린 출가와 동시에 세속을 떠났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있어요. 세속적 욕망은 끊었지만 욕망을 끊은 그 자리에 세속에 대한 자비심을 싹 틔워 나가야 합니다.”
가섭 스님은 그 부분에서 승가교육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승가의 교육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고 그것이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근본 교리에서 더 나아가 사회 실천이란 부분까지 아우를 수 있게 교육 편제가 되어 있습니다. 늘 자비를 구현하고 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수행자 상을 정립해나가는 것이죠.”
교육을 통해 이 시대에 맞는 수행자 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때에 가장 큰 중심으로 삼은 것이 자비였듯이 자비로운 수행자를 만들어가고자 함이다.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이 깨달음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젠 그 깨달음에서 더 나아가 실천의 부분까지 폭을 넓힌 것이다. “수행자로서 위의威儀를 갖추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겉모습과 격식에 짜여져 있기보다 자비로움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비로움을 심어줄 수 있는 승가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새로운 수행자 상의 정립이라는 큰 과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승가교육이 변화를 가진 게 300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무색하리만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지켜나가야 할 전통도 있다. 그러나 전통에 얽매여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종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함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생각이 안착되어버리면 그 조직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불교는 하향평준화가 될 수밖에 없어요. 현실에 뒤처지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 불교가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계승할 것과 변화할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부터 필요할 것이다. 소중한 문화재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이며 시대에 맞지 않은 생활 문화는 전통이라고 목매지않고 과감히 변화해가는 태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럴 때에야 손닿지 않는 먼 산사의 종교가 아닌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종교일 것이란 말씀이다. “무상無常이란 것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덧없기에 항상‘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봐요. 무아無我라는 것은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인데 저는 그것이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기에‘소통’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불교가 보존하고 전승하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변화하며 늘 이웃과 함께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했을 때‘출가’에 대한 이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성스럽고 소중한 길이란 인식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했을 때 출가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판승과 사판승을 나눌 때가 아니에요. 융합된 인식이 필요합니다. 큰 개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종단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시대에 필요한 수행자로 변모해 나갈 때 종단의 발전도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백천억 화신 석가모니부처님이라 하였다. 이토록 다양한 중생이 사는 세상이니 어찌 똑같은 부처님의 모습만 있을 수가 있을까. 가섭 스님은 또 하나의 꿈을 꾸신다. 부처님도 그러할진대 수행자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 도심의 걸인의 모습으로 연극을 하는 배우의 모습으로 민심을 읽는 정치인으로 시장의 상인으로… 이 세속에서 중생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모습으로라도.
가섭 스님은 어려서부터 절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출가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절문에 들어서는 순간 이제부터 참 행복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단다. 삭발을 할 때는 마음에 있던 바윗덩이 하나가 물러나는 것 같아 씩 웃었단다. 그렇게 시작해 강원에 다니고 중앙승가대학에 다니며 하루 온종일 책만 봤다. “중앙승가대학에선 사회학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이 사회를 모르고는 내가 어떻게 제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여러 사상가들의 책을 읽으며 불교는 역시 위대한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욱 매료되었죠.”
그 이후 동국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치고 해인사 강원에서 한철 강사를 하고 다시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포교실천으로 석사를 수료했다. 그러고는 서울불학승가대학에 들어가서 2년간 한문불전을 공부했다. 그이후 2년 동안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관장을 하고는 노인복지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 사회복지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현재 교육원에서 3년간 일을 하고 있는데, 올해엔 법체계에 대해 알고 싶어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에 입학해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살면서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 경기도 광주의 불국사 주지로 있기도 한 스님은, 언젠가는 지역사회에서 복지관을 운영하며 사회에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다방면의 공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쉴 틈 없이 바쁘고 힘드시지 않을까 하는데 스님은 노스님이신 지관 스님이 하신 말씀을 조용히 읊어주신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 괴롭습니다. 쉽게 살려니깐 더 어렵습니다. 대충 살겠다고 하니 더 괴롭습니다. 게으르기에 부지런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쉬운 만큼 공덕은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인생의 바른길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가섭 스님은 신도들에게도 쉬운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스스로 기도하게 한다.
“수행자는 길을 안내하고 곁에서 지켜봐주고 그것을 회향할 때까지 힘을 실어주는 따뜻한 존재예요. 그렇게 존재하면 되는 거예요.”
누군가의 현실적 고뇌를 직접 해결해주는 것은 수행자가 아니라 제사장일 뿐이란다. 우리 삶의 역경이란 게 하나 넘어섰다고 끝나는 게 아니기에,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수행자의 역할이란 말씀이다.
“부처님도 그러셨을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팔짱 끼고 거룩하게 앉아서 정답을 주신 게 아니라 얼굴 가까이맞대고 눈 맞춰 가며 이야기 다 들어주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지 않았을까요.”
수행자라는 신분은 권력이나 지위가 아니란다. 수행자라면 누구를 만나든 인격적으로 대하고 존중하고 귀하고 소중하게 대해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스님은 늘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자고. “사람이 희망입니다. 중생이 희망입니다. 그것은 번뇌 즉 보리인 것이지요. 그러니 사람을 정성껏 대해야지요.”
‘정성껏’이란 말,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어본다. 그저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참 갸륵한 말이다. 그러니 가섭 스님은 내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정성껏 눈뜨고 정성껏 만나고 정성껏말하고 정성껏 들어주고 정성껏 손잡고 정성껏 먹고 정성껏 걷고 정성껏 살다가 정성껏 눈감는 일, 그게 우리 함께하는 참 정성스러운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