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둘이요 입은 하나(해인지 가족모임의 부활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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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관암┃전 월간해인 편집장
2014년 04월 386호
어느날 해인지가 마련한 ‘통通’을 논하는 자리에 초청된 큰 스님은 보경당 법좌에 올라 ‘귀는 둘이요, 입은 하나’라고 짧고 상식적인 말씀만 하시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가야산에서 울려퍼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명구 이래로 가장 신선한 말씀으로 와 닿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라보고 깨어있는 존재로의 깊은 돈오의 경지는 차지하고라도 소통과 공감이 화두가 되어버린 요즈음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을 얻을 것인가라는 담론의 장에서 단순 명료한 법문이었습니다. 그동안 해인지 편집도 세상의 흐름과 대중의 다양한 소리를 많이 듣고 좌구보리 우화중생의 견지에서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를 펼쳐 독자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1982년 3월에 창간되어 한번도 걸러지 않고 31년 10개월을 달려와 이번 달로 통권385호를 맞이하는 해인지도 소통과 공감의 역사였습니다. 초창기 해인강원 포교부 발행 편집 시절에는 전국에서 모인 강원 대중들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 포교지로서 명성을 날렸고, 86년 정식 잡지로 등록하고 또한 해인사 내 불교용품과 불교서적 판매로 재정의 자율성을 확보하여 대구를 거쳐 서울 북아현동 시절은 해인지의 황금기였습니다. 당시 서울 편집실은 의식있는 스님들과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이 되어 세상의 흐름을 읽고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며 이를 반영하여 한국불교의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사회 민주화에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해인지의 상근 직제는 편집장 스님, 출판부장 스님, 용품판매를 관리하는 해인지 회계스님, 대외 활동으로 편집 기금을 마련하는 화주스님, 편집실 직원1명, 연경당 판매 직원 2명 등 7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실질적인 편집 자문위원인 해인지 선배스님이 5~6명이 포진하여 관여 하였으니 명성을 날릴 수 있는 바탕 또한 갖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황금기가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편집운영의 돈줄인 해인사 연경당 불교용품 판매 수익이 감소되자 서적출판 부문이 먼저 정리되었고 급기야 연경당 판매 부문이 사중으로 편입되어 더 이상 서울에서 편집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니 2000년 4월 편집실이 해인사로 내려오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넷 발달로 이제는 편집실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위안으로 마음을 달랬지만 절집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세상에서 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은 도루묵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행히 전 편집장 원철 스님과 그 뒤를 이은 현 편집장 종현 스님의 오랜기간 근무원력으로 해인사 편집실이 잘 정착되어 옛 명성을 되찾아 가니 모두 구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의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구독자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그 사랑과 관심으로 해인지가 다시 업그래이드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구독자 모임인 해인지 가족모임을 계획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5년에 연말에 시작된 첫 번째 해인지 (구독자)가족모임은 필자와의 만남의 요구에서 2박3일 일정으로 년말에 열렸는데 차츰 세상과 대중의 다양한 소리를 많이 듣는 장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해인사 겨울수련회와 수련 동문회 법회가 활성화 되면서 방사문제가 어렵게 되자 2002년 연말 일곱번째 해인지 가족모임을 마지막으로 휴면해오다가 이제 계절을 바꾸어 해인지 가족 모임을 재개한다 하니 매우 축하 할 일이며 구독자들도 기대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구독자 가족모임은 매회 평균 100여명 정도가 모였지만 여섯 번째 모임인 2001년에는 240명이나 모일 때도 있었습니다. 초기 모임에서 어느 구독자는 많은 편집위원스님들을 향해 ‘해인지는 내용이 어렵고 편집이 귀족주의적이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분위기가 싸늘할 때도 있었는데 편집위원스님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아마 지금도 유효한 대답이라 짐작이 됩니다. 편집위원 스님 ‘왈’ ‘신도들은 스님들이 모두 진짜스님이길 바라듯 스님들도 신도들이 모두 진짜 불자이길 바랍니다. 해인지가 어렵다, 대중적이지 못하다 할 것이 아니라 불자님들도 영험불교, 기복불교에서 벗어나 수행불교, 지혜불교로 나아가길 바랍니다’라고 응수한 일이 있었지만 매회 모임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많은 덕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구독자들은 해인지를 통해 ‘쓰러져가던 나를 일으켜 세워 삶의 의욕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늘 공허하고 외로웠던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채워져 충만된 일상을 맛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잡하게 엉기어 갑갑해질 대로 갑갑했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게을렀으며 사치스러운 망상에 빠져서 젊음을 낭비했는지 깊게 참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와같은 다양한 덕담으로 해인지의 가치와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스님이 해인지 가족모임을 쭉 참가하면서 느낀 것은 해인지 구독자들은 냉정한 머리(이성)에 비해 따뜻한 가슴(감성)이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해인지가 좋고 가족 모임이 좋으면 그 가치를 공유하고자하는 구독자 배가 운동과 모이는 대중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중보시에 인색함을 보았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참가비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 해인지 가족모임이 앞으로 따뜻하게 진행되고 오래갈려면 대중이 자발적으로 구독자 배가운동을 벌려주고, 모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나 빵이나 과일 등 공양물을 들고와서 대중과 함께하는 공덕의 자리가 필요함을 봅니다. 물론 해인지 편집에 대한 따끔한 조언도 반드시 필요 할 것입니다. 해인지 가족 모임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다시한번 축하를 보냅니다. 해인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