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총무원이 요즘 한 칼럼니스트의 글에 발끈하고 나섰다. 논란이 되는 글은 민영 뉴스통신사인 ‘뉴시스’에 실린 ‘하도겸 칼럼’ 중 일부다. 하씨의 모든 글이 그렇지 않지만 몇몇 글, 은 제목이 우선 눈길을 끈다. ‘SNS 페이스북을 점령한 스님들…’ ‘응답하라 조계종! 참선수행 점검할 수 있나?’ ‘시절 잊은 조계종 승려에게 웬 3배?’ ‘스님 성불 막는 오빠부대 빠순이 점령’ 이라는 용어에서 뺏고 빼앗기는 싸움의 이미지가 떠올라 거부감이 든다.
총무원이 발끈했다. 글쓴이는 한 국립박물관의 학예사인데, 글쓴이가 소속된 기관의 장에게 “적절한 시정조치를 요구한다”면서 기획실 명의로 ‘협조 요청’을 했다. 기획실은 1월 27일자로 보낸 이 문건에서 “칼럼을 통해 저희 종단과 스님들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과 조롱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저희 종단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비하적인 표현과 현실성 없는 일방적인 주장을 통해 종단과 스님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실은 또 “‘스님 성불 막는 오빠부대 빠순이’ ‘너무나 인색한 스님들’ 등의 글을 통해 근거 없는 소문과 이야기로 스님들을 폄훼하고 반사회적인 사람들로 매도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시정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물관장은 글쓴이에게 ‘서면경고’를 했고, 이 사실을 기획실에 회신했다. 서면경고는 징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3회 누적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고 한다. 글쓴이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서면경고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신청했다.
조계종단과 관련한 언론사의 기사와 칼럼, 방송 프로그램이 논란을 일으킨 예는 많았다. 악의적인 내용을 유포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관계를 잘못 알아 글쓴이와 언론사의 대표가 사과한 경우도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언론사를 항의 방문해 뉴스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종단은 언론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이런 논의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언론은 적절한 홍보수단이기도 하지만, 종단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가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된지는 오래되었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반증인 만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마저도 기꺼이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도 종교다운 태도이다. 사실을 호도하는 데서 비롯된 비판이라 할지라도 바른 이해를 위한 계기로 삼는다면 잘못을 바로잡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자칫 비판적인 글의 취지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일부의 표현을 문제 삼는다면 과잉대응이라는 제3자의 비판을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조계종이 박물관장 앞으로 ‘협조 요청’을 보낸 날 하씨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조계종’이란 글을 실었다. 하씨는 이 글을 통해 “얼마 전에는 ‘도가 지나치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따지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이라도 조계종은 전화로 협박 아닌 협박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지적된 내용을 참회하고 개선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면서 “하도겸 칼럼은 열심히 수행하고 전법하는 승려들의 명예와 위의를 훼손케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바른 수행하는 스님들의 위상을 드날리게 하기 위한 정화불사”라고 반박했다.
하씨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적극 옹호했다. ‘SNS 페이스북을 점령한 스님들…’이란 글과 관련해서는 “SNS를 통해서 포교하는 몇몇 스님도 있지만, 적지 않은 승려들이 대부분의 승려까지 ‘땡중’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면서 “조계종은 승풍을 땅에 떨어뜨리는 그런 승려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기획실의 ‘협조 요청’과 하씨의 ‘손바닥으로…’란 글은 서로 치받는 모양새다. 어찌 보면 하찮은 일이다. 그러나 종단의 주요 부서와 ‘신실한 불교신자’라고 밝힌 칼럼니스트가 벌이는 논란이 유쾌하지 않다. 기획실과 글쓴이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대화마저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드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이런 문제는 흔쾌하게 풀고가야 더 이상의 파행을 막을 수 있다.
글쓴이는 “불교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귀 기울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야 진정 글 쓰는 의미와 보람도 있을 것”이라는 기획실의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글쓴이의 답변을 기대한다. 기획실도 글쓴이가 공직자인 점에 착안해 소속한 기관장에게 “적절한 시정조치를 요구한다”고 한 것이 최선의 방안이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논란이 된 글은 공적업무와 거리가 있는 것이고, 공직자이기 이전에 한 불자로서의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면 그 영역을 지켜주는 것이 마땅하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온전한 인격체를 형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데 어찌 박수 받을 일만 있겠는가. 개인이 아닌 단체인 경우는 사방에서 백화가 피어나듯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 게 인간사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존귀하고 고귀하다. 부처님은 종족 간 물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려하자 “물이 소중한가, 사람이 소중한가”라고 물었고, 결국 전쟁을 막았다. 견해가 달라 다툴 수 있고, 그로 인해 감정이 격해지더라도 그 견해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잊지 않는다면 조화로운 삶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풀이할 수 있는 일화다. 악감정을 남기고서는 모두 피해자가 된다. 마음의 작용은 명확한 것이어서 악감정은 자신과 주위를 할퀴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