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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로 찾아간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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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4년 03월 385호

이번 세계 만행을 계획하면서 한 가지 바램이랄 게 있었는데 그것은 서양 기독교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동안거의 중간에 크리스마스가 있기에 애초부터 불가능하지만, 이번 만행 때에는 어쩌면 그 기회가 닿을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12의 크리스마스는 동남아의 라오스에서 한여름 날씨에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몇몇의 서양여행자들이 반팔 티셔츠에 산타 모자를 머리에 쓰고 캔맥주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약간 어수선한 크리스마스 말입니다.
2013년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제가 머물렀던 곳은 이집트의 다합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였고, 다합은 한낮엔 여름, 밤에는 늦가을의 날씨가 반복되는 스쿠버다이빙의 명소였습니다. 이번에도 서양의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랑 연이 없나보다 하면서 차차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합에서 가까운 샴엘쉐이크 공항은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이 취항하는 곳이었고 런던이나 밀라노까지 단 몇 만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하여 저는 부랴부랴 표를 끊고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지난 유럽 만행의 시작점이었던 런던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런던은 지난해 7월에 열흘 정도 머물며 이미 많은 곳을 들러보아서 구경거리엔 그다지 큰 관심이 가질 않았습니다. 이번 런던에서 머문 열흘은 모두 카우치서핑을 하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같이 밥도 해먹으며 대화를 많이 하게 되어 관광도시로서의 런던이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런던을 보게 된 기회였습니다. 런던에서는 카우치서퍼 세 명을 만났고 인도에서 여행을 같이한 박선생님, 대학교 후배 부부, 블로그나 페이스북 이웃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우치서퍼이자 기독교인이었던 리차드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리차드는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500여번도 넘게 한 대단한 기록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리차드 집에 카우치서핑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그가 제시한 카우치서핑 특별한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머무는 기간은 반드시 주말을 포함해야 하고, 서퍼는 그와 함께 교회의 일요일 오후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스님으로서 교회를 가야 한다는 게 좀 의외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제가 크리스마스를 외국에서 보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기독교 문화권의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어떻게 보내는지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적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신앙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요일날 친구들이 모두 교회에 모여서 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 때에는 따로 성경읽기 모임에도 규칙적으로 나가고 교회 행사에도 참여했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믿음 차원의 정체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많이 만나고 또 학교 미사에 매번 참여해보아선지 기독교가 저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한 게 아니라 사실은 친숙한 신앙이었습니다.
리차드와 제가 간 곳은 런던의 엘리펀트 앤 캐슬이라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이라는 이름의 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삿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저의 외양을 보고 놀라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런던에 거주하며 이 교회를 다니는 한국인들이었습니다. 리차드의 안내로 아침 10시 예배를 참석하면서 저는 영국 사회의 참 선진적인 면모가 교회에서 드러남에 감탄을 했습니다.
대략 사백명 남짓 예배를 참석하는 사람들 중 제일 앞에는 청각장애인들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수가 없는 그들을 위해 그 앞에 설치된 대형 TV에서는 설교 내용이 실시간으로 타이핑되어 스크린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화를 알 줄 아는 두 명의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설교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도 있었습니다. 매번 찬송할 시간이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를 하며 부지런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목사님의 설교를 잘 알아듣지 못할 외국인들을 위해서 통역 장비를 마련해 두어서 영어에 숙달되지 않은 사람이 설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영국식 영어와 생소한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저를 위해서 한 한국인 친구가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동시간으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태생적으로 불편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나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층을 배려해주는 모습에 왜 사람들이 영국의 복지를 높게 평가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리차드와의 만남 그 자체도 사실 참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리차드는 평생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살아온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일요일에는 예배 참석 뒤에는 교회에 오는 아이들을 집까지 태워다주는 기사 역할을 하고 평일에는 영국으로 일자리를 구하러온 외국인들의 비자며 취업 문제를 상담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 1층의 방에 2층 침대까지 구비하면서 그는 한번에 대여섯명의 서퍼들을 받고 그들을 위해 아침을 하고 직접 잠자리도 마련해주고 있었습니다. 리차드는 천성적으로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지만 믿음의 힘으로 그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의 삶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고 난 뒤 집을 떠나기 전에 저는 그와 함께 오랜시간 포옹을 했습니다. 만행을 하면서 어쩌다 보면 한번씩 꼬옥 안아보는 사람이 있는데, 리차드는 그 중에서 저를 가장 힘껏 안았던 사람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