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마곡사에서 솔숲 길을 따라 걸으니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소리 들린다. 땅도 바람도 하늘도 포근해진 봄날, 그 길 끝에 자리한 한국문화연수원에서 구과 스님과 마주앉아 널찍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차향을 음미한다.
구과 스님이 연수원장으로 자리한 지 세 달여, 스님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함께 상주한다.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살피니 낱낱이 눈에 보이고 세세하게 손이 간다. 직원들과 가족처럼 같이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로가 잘 안다.
\"조계종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우리 연수원을 찾는 분들은 일반 연수원과는 다른 것을 원해요. 저는 이곳이 잠시 자신을 놓을 수 있는 공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강의실도 입식에서 좌식으로 바꾸고 식단도 완벽한 사찰 식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사찰음식에 가깝도록 변화를 주고 있다. 불교를 크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인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스님은 연수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방은 따뜻했는지, 공양은 입에 맞았는지, 숲길은 걸어보았는지 인사를 건넨다.
\"사람들이 연수원에 들어올 때는 모르지만 나갈 때는 참선을 하고 사찰음식을 먹으며 불교를 접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명상이란 말을 쓰지만 그것이 참선과 다르지 않고, 연수원이라 하지만 포교원과 다르지 않다. 이미 알고 찾아오는 신도들이 아니라, 아예 모르는 채 왔다가 불교를 알게 되는 이들이니 스님은 더 많은 부분에 불교의 색이 스며들게 할 생각이다. 구과 스님은 얼마 전에 찾아온 이들이 예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며 또 오겠다고 해서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연수원에는 휴식 형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있어서 누구든 편하게 쉬어갈 수도 있다. 숲길을 걷고 명상을 하고 차의 증기를 훈하며 스님의 말씀을 듣는 차훈명상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언제든 찾아가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 이토록 쉼의 공간인 연수원을 꾸려 가시는 구과 스님은 정작 쉬지 못할 것만 같다. 연수원장으로 바삐 지내며 그래도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여쭈니 스님은 말씀하신다.
\"백여 명이 와서 북적이는데도 사고 없이 순탄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가 지나갈 때 가장 행복해요.\"
구과 스님은 8년간 선방에 다녔다. 그러고는 석남사 포교원 소임을 3년간 보고 토굴에서 살다가 이곳 연수원으로 왔다. 그러니 선방이 그리울 만도 하실 텐데 그저 일에 여념이 없으시다.
\"제가 공부가 덜 돼서 그렇겠지만, 좌복을 깔고 앉으면 업무가 떠올라요.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어요. 여기에 있을 때는 여기에 충실하자. 여기에서 저쪽을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도 충실하지 못 한 것이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지금은 이곳을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한 일이예요.\"
스님은 그저 현재 정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스님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일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웃으신다. 모든 일이 즐거우니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가할 때도 그러했다. 그리고 출가해서 고된 행자생활을 할 때도 그러했다. 행자생활을 하는 동안엔 내내 교무 스님께 야단을 맞았다. 뭐가 그리 좋아 맨날 웃고 다니느냐고.
“그땐 출가자가 많아서 행자방에서 비좁게 누워서 자는데도 좋았어요. 여름이면 새벽 예불을 마치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도 좋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좋고,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는 것도 좋고. 출가 자체가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구과 스님은 대학을 다니다가 출가했다. 어려서부터 범어사 방장스님인 지유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며 주말이면 절로 향하고 방학이며 절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출가를 염두에 두고 살았던 것 같단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과 살았는데 제가 애기였을 때 어른들이 놀리는 말로 시집가라고 하면 제가 그랬대요. 대궐 같은 기와집이 여러 채 있는 집이면 가고 안 그러면 안 간다고. 그런데 정말 대궐 같은 기와집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오신채를 아예 못 먹어서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대요. 그런데 지금 오신채를 안 먹는 집에 살고 있지요.”
범어사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지유 스님께서 다른 스님들에게 법문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들어가 법문을 듣게 해 달라 청하니 다른 스님들을 일일이 찾아가 허락을 받아오라 하셨다. 그렇게 해서 그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스님들 세계에선 필요치 않은 엉뚱한 질문을 자꾸만 하니 스님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출가를 하지 않고서 불교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지유 스님께서 초발심자경문을 가르쳐주셨는데 그러고 나서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꾸지람을 하셨다. 대학을 마치고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유학을 다녀오면 출가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질 것을 아셨던 것이다. 새 학기 등록을 한 상태였지만 출가에 마음을 굳혔다. 부처님 출가재일에 출가를 해야겠다고 집을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고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도중에 진주 호국사에 잠시 들렀는데 우연히 혜암 큰 스님을 만났다. 큰 스님은 출가하려느냐고, 어디로 가는 중이냐고 물으셨다. 구과 스님이 답하길 내원사는 너무 가깝고 수덕사는 너무 멀어서 운문사로 갈까 한다 하였다. 그러자 혜암 스님께서는 석남사에 인홍 스님이 계시니 그곳으로 가서 공부하라 하셨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혜암 스님이 석남사에 오셨을 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며 웃었다.
“인홍 노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중이 된다는 것은 하늘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의 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시를 받아 살아가니 얼마나 큰 복일 것이며, 그러니 얼마나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는가 하시는 구과 스님. 그래서 스님은 노스님의 이 말씀을 사는 내내 가슴에 품고 산다. 그리고 절에 들어왔을 때 해주신 \'인욕\'에 대한 말씀도 늘 상기한다.
“신발과 같이 참으라 하셨어요. 신발이 똥을 밟는다고 더럽다고 하나요, 뜨거운 걸 밟으니 뜨겁다고 하나요. 참는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노스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이 스님으로 살아오는 데에 있어 살림밑천이었단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와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깎은 머리를 만져보는 것은 법정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인해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발심하라고 하셨어요.”
스님이 되어 처음 들었던 이 말씀들은 구과 스님을 흐트러지지 않고 살게 했다. 그렇기에 늘 초심으로 돌아가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시비를 가리지 않는 신발처럼 살아올 수 있었다.
구과 스님은 현재 종회의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요즈음 ‘종헌개정 및 종법제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일로 바쁘다. 호계 위원의 자격을 ’비구‘에서 ’승려‘로 바꿔 비구니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올려놓은 상태다. 지난해에 부결된 바 있으나 종헌 개정안을 재상정 했다.
“많은 부분에 있어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요. 종헌을 펼쳐보면 많은 부분에 ‘비구에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점차 하나씩 변화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15대 종회의원들이 이런 변화를 처음으로 꾀하고 있으니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신다. 그래서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단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래의 더 나은 불교를 위한 것이지요.\"
보존해야 할 전통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서 개정해야 할 법도 분명히 있는 법이다. 그러해야 사람을 얽매지 않는 법일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윤택해지는 법일 것이다.
구과 스님은 사람들을 만나면 ‘거울을 보라’ 하신다. 우리의 몸 중에서 다른 부분은 다 겉으로 드러내도 괜찮지만 얼굴은 감추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바로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울을 보란 말씀은,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는 말씀이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분명히 뱀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화를 내는 얼굴은 남에게만 숱하게 보여 왔지 정작 나는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님은 억지로라도 웃으라 하신다. 웃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일으켜야 하는 것이란다. 안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든 얼른 좋은 생각으로 돌려놓아 웃으란 말씀이다. 내가 웃으면 웃는 인연들이 따라 모여들게 된단다. 그러고 보니 마주앉았을 때부터 내내 웃으시는 스님을 따로 나도 덩달아 웃고 있다. 내내 웃음소리 들리니 만남이 이렇게 좋다. 봄 오면 또 오라는 스님의 웃음 인사가 이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