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권 변상도에서는 보혜보살의 30가지로 10행의 문답에 대한 보현보살의 3백 가지 답을 하는 내용이다. 이세간품離世間品 삼육지이三六之二
여기서는 10행에 대한 물음과 답이 이어진다.
십종변입十種扁入
보살은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이 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모든 세계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일체중생의 몸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모든 법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모든 부처님을 보고 삼매에 들어가고, 온갖 겁에 머물러 삼매에 들어가고, 삼매에서 일어나 부사의한 몸을 나투어 삼매에 들어가고, 모든 부처님 몸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일체중생이 평등함을 깨달아 삼매에 들어가고 잠깐 동안에 모든 보살의 삼매에 들어가는 지혜로 삼매에 들어가고, 잠깐 동안에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을 성취하되 쉬는 일이 없어 삼매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의 위없이 교묘한 삼매의 법을 얻느니라.
보살은 열 가지 두루 들어감이 있다.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루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중생에 두루 들어가고, 국토에 두루 들어가고, 세간의 가지가지 모양에 두루 들어가고, 화재火災에 두루 들어가고, 수재水災에 두루 들어가고, 부처에 두루 들어가고, 장엄에 두루 들어가고, 여래의 그지없는 공덕의 몸에 두루 들어가고, 모든 갖가지 법을 말하는 데 두루 들어가고, 모든 여래를 갖가지로 공양하는 데 두루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에 두루 들어가는 법을 얻느니라.
보살은 열 가지 해탈문이 있다.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해탈문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한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하는 해탈문과 모든 세계에서 한량없는 가지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해탈문과 모든 세계로써 한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과, 일체중생계에 널리 가지하는 해탈문과 모든 부처님의 장엄한 몸으로 모든 세계에 가득하는 해탈문과 제 몸 가운데서 모든 세계를 보는 해탈문과 잠깐 동안에 모든 세계에 나아가는 해탈문과 한 세계에서 모든 여래가 출세함을 보이는 해탈문과 한 몸이 모든 법계에 가득하는 해탈문과 잠깐 동안에 모든 부처님의 유희하는 신통을 나타내는 해탈문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해탈문을 얻느니라.
보살은 열 가지 신통이 있다.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지난 세상에 났던 일을 기억하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하늘귀가 걸림 없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다른 중생의 부사의한 마음과 행을 아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하늘눈으로 관찰하여 걸림이 없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중생의 마음을 따라 부사의한 크게 신통한 힘을 나타내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한 몸이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나타나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한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두루 들어가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한량없는 장엄거리를 내어 부사의한 세계를 장엄하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말할 수 없는 변화하는 몸을 나타내는 방편지혜의 신통과 부사의한 중생의 마음을 따라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룸을 나타내는 방편지혜의 신통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크게 교묘한 신통을 얻고, 일체중생에게 가지가지로 나타내어 그로 하여금 닦아 배우게 하느니라.
이 법문들은 삼매로 부터 점점 증장해서 넓어짐을 말한다. 한 가지에 들어감에 일체에 두루 한다는 추상적인 묘사이다. 무수함에 들어가는 설법은 보살이 여러 세계에 자유자재로 들어 갈수 있기를 원하고, 문수의 지혜를 만나 보현의 행으로 이루어지기까지 세간을 떠나 청량한 마음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화엄경 화장세계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꽃들이 피는 세계이다. 즉 화장장엄 세계, 조화로운 세계를 말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내고, 부처님 세계가 보살행을 통해서 장엄되고 있다. 범부 중생이 부처의 삶을 살게 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도의 완성을 위한 갖가지 수행 방편과 실천에 대해서 설법하고 있다. 온 우주 법계에 충만한 변만불遍滿佛로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현 아님이 없다. 개개 존재가 고유한 제 가치를 평등하게 다 갖고 있으니 여래의 지헤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범부가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는 경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른 점은 발심에 있다. 중생은 자기가 바로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처인것을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화엄경에서는 말한다. 신심은 자기가 부처인 것을 믿는 것인데, 이런 깊은 신심을 성취하려면 원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발심이 일어나고, 발심 중생이 보살이다. 화엄에서는 발심만하면 정각한다고 강조 하고 있다. 처음 발심할 때가 바로 정각한다고 설법 한다. 그래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바로 화엄경의 보살행이다. 우리 모두 현재 이 자리에서 화엄의 꽃이 되고 화엄의 꽃을 피우는 불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