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만나고 돌아오면 일주일, 아니 한 달, 아니 수 개월 동안 나를 밝고 따뜻한 기운으로 끌어올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윽박지르면 도망쳐버리는 나를, 노력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만큼씩 친절하게 끌어주시던 나의 인도인 할아버지 선생님. 건강 상의 문제로 은퇴하셨던 선생님은 내 인도유학 첫 해에 내게 빠알리어 알파벳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는데, 이듬 해에는 침대에 누워만 계셨고, 그 다음 해에는 말씀도 잘 못하시게 되었다. 몸이 점점 마비되는 병에 걸리셨기 때문이었다.
석사과정 중에 중심을 잃고 흔들리거나 회의감이 들 때마다 나는 선생님을 찾았다. 바나나 나무가 보이던 선생님 댁을 향해 일명 뽈뽈이라고 불리는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긴 길을 달려가곤 했다. 10평도 채 안 되는 선생님 댁은 인도유학 8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힘을 얻은 곳이자 휴식처였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바나나 나무가 보이는 선생님 댁으로 걸어가다 보면 선생님이 침대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창문 사이로 항상 보였다. 학생들이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사모님이 선생님을 일으켜 앉힌 후 양말도 신기시고 머리도 빗겨주신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30~40분 정도밖에 못 앉아 계시기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나마스떼(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집에 들어가서는 온갖 이야기를 숨도 안 쉬고 쏟아냈다. 이야기를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모님께서 준비해주신 달달한 음식을 다 먹고 나면 그때 … 나의 선생님은 딱 한 말씀 해주신다.“현재 하는 일에 충실해라”그리고는 사모님께 눕혀달라고 손짓을 하시곤 했다.
나는 1초 정도 억울하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와 이렇게 힘들다고 떠들었는데, 겨우 이 한 말씀만 하신다고 나는 섭섭해 한다. 그런데 그 1초가 지나면 나는“맞아! 맞는 말씀이셔!”하며 그 한 말씀을 움켜쥐고 그 집을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토바이와 함께 날아오를 것처럼 힘이 넘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나는 선생님께 학문적 자문을 구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다.
그 가난했던 유학시절, 마이크와 녹음기를 사서 들고 다니며 들리지 않는 선생님의 말씀을 녹음해서 집에 돌아와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남아 있는 온 힘을 끌어올려 힘겹게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뭔지 겨우 알아내서 종이에 크게 적어 다시 선생님 댁으로 간다. 그걸 보여드리고 읽어드린 후 여쭈었다.
“이것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맞으면 손가락을 움직여 주세요. 아니라면 눈을 꼭 감아 주세요.”
다행히 손가락을 움직여 주실 때가 많았다. 이렇게 박사 논문의 전체적인 윤곽을 다 잡아주셨다.
이렇듯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과 선생님께 가르침을 얻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고, 선생님 댁에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선생님과 아주 친밀하다고, 선생님의 지식을 전수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갔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나는‘이 시점이다’싶을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그 종이들을 보곤 했다. 몇 장 안 되는 그 말씀은 내가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조금씩 성취해가면서‘아, 이 말씀이 이 뜻이었구나’하며 뒤늦게 알게 된 것들이 더 많았다. 내가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점프해 올라설수록 보이지도 않던 말씀들이 종이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박사 논문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에서야 종이 속 선생님의 말씀 전체가 보였다.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했던 그 종이가 더 이상 지표가 아닌, 추억의 흔적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나는 선생님에 대해, 선생님의 학문적 세계에 대해 천만 분의 일조차도 몰랐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천만 분의 일도 모르면서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유로, 많은 일화가 있었다는 이유로 또는 힘들게 가르침을 얻었다는 이유로 잘 안다고 착각했던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법구경 시가 있다.
yāajīam pi ce bāo paṇoḍtaṃpayirupāati
야와지왐 삐 쩨 발로 빤디땅 빠이루빠싸띠
na so dhammaṃvijāāi dabbīsūarasaṃyathā①
나 쏘 담맘 위자나띠 답삐 수빠라쌈 야타
어리석은 자가 일생 동안 지혜로운 이를 섬긴다고 하더라도
그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숟가락이 국의 맛을 알지 못하듯.② ≪법구경 64≫
성인聖人이나 명승名僧, 또는 대학자大學者를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마치 그런 훌륭한 분들의 덕이나 지혜 또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그런 훌륭한 분들을 오랫동안 모셨다한들 마음의 눈이 어둡고 정진하지 않는 자라면 그분들의 뜻을 제대로 알겠는가. 안에 국물이 가득하다고 해도 숟가락이 국의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 한편, 마음의 눈이 밝고 스스로 정진하는 이라면 지혜로운 이를 아주잠깐 섬긴다고 해도 그는 진리의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혀가 국의 맛을 알듯이 말이다.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에서 오래 모시는 일은 분명 신심信心을 일으키는 복된 일이지만 지혜로운 이의 그 지혜가 내게로 옮겨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지혜롭지 못하고서 어찌 그 상대의 지혜로움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에서 모시게 되는 그 복됨만큼이나 스스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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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yāajīam: 일생동안. pi ce: 비록 ~라고 하더라도. bāo: 어리석은 자가. paṇḍtaṃt: 지혜로운 이를. payirupāati: 섬긴다. na: ~아니다. so: 그는. dhammaṃa: 진리를. vijāāi: 깨닫는다. dabbīb: 숟가락이. sūarasaṃa: 국의 맛을. yathāt: 마치 ~처럼.
② 우인진형수愚人盡形壽 승사명지인承事明智人 역부지진법亦不知眞法 여표짐작식如杓斟酌食(한역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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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리 님은 동국대학교(경주) 불교학과를 졸업하고(2002), 인도 뿌네대학교에서 빠알리어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010). 2년간 태국 마하출라
롱콘라자 불교대학교에서 빠알리어를 강의하였고, 현재 동국대학교(경주) 파라미타 칼리지 학사지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