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대구 관오사 회주 자광 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정영 2014년 02월 384호

설법제일인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라 하였다. 사람들이 그리 칭할 만큼 자광 스님의 법문은 진실되니 법문을 청하는 곳이 많고 그곳이 어디든 스님은 달려가신다. 그러니 자광 스님은 늘 길 위에 있다. 관오사에선 그저 방 한 칸 빌려 살 뿐이란다.
“난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태어난 집고 없어졌고 출가해서 행자생활 하던 방도 없어지고 내가 살던 작은 절도 철도가 놓이며 없어졌어요. 집도 절도 없는 스님입니다.”
맨몸 하나 뿐인데 그 몸마저도 스님의 몸이 아니란다. 20년 전에‘생명나눔실천본부’를 만들며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부처님 법을 전하다가 죽는 것이지요. 전법도생傳法度生,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내 원력입니다.”
무소유의 삶이다. 태어날 때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리 살아온 삶이니 거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그러니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가버리실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 자광 스님과 마주앉아 이 생에 온 인연을, 산문에 들어선 인연을 듣는다.
자광 스님이 첫돌 되기 전에 부친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어린 애를 데리고 남편을 묻으러 갈 수 없으니 뜨거운 아랫목에 스님을 눕혀놓고 산으로 갔다. 하도 오래 그리 두었으니 엉덩이를 데었다. 후에 그 흉터에 대해 어머니께 여쭈니 어머니는 그제야 아버지의 죽음을 말씀해주셨다. 큰 집이 솜 타는 공장을 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일하셨다. 어느 날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니 아버지는 그것을 잡아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을 잡으려다 그만 솜 타는 기계의 피댓줄에 걸려 넘어져 온몸을 다쳤다.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친정에 전하니 뱀으로 담근 술을 보내왔다. 삭혀 먹으라고 당부하였으나 아버지는 얼른 낫고 싶은 욕심에 그것을 바로 마시고 뱀독이 올라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허망한 욕심과 어머니의 과욕이 간접 살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종이함지에 아버지 새 옷을 해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러다가 스님이 열 살 무렵이었을 즈음 학교에 다녀오니 방 안에서 뱀 한 마리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다 떨어지길 거듭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뱀이 되어 왔다며 뱀을 소쿠리에 담아 마을 끝에 가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한쪽 팔을 잃으셨다. 스님은 그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인과응보를 알았다. 어머니의 고단함 삶과 자신의 평탄치 않은 삶 속에서 세상만사가 싫었다. 그러면서 출가의 뜻을 품었다. 어머니는 원당암에서 여래자如來子라는 법명을 받고 혜암 대종사를 스승으로 삼고 사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광 스님이 출가하는 인연을 삼아주셨다. 스님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여주신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아침발원과 저녁참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손수 적으신 것이란다. 스님은 그것을 책상머리에 붙여두고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신단다.
“내게는 이것이 큰 보배입니다. 어머니는 늘 아침 발원과 저녁 참회를 생활화하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스님은 그렇게 팔공산 북지장사에 가서 자광이란 법명을 받고 취공도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사스님은 자광스님에게 수행하는 법을 일러주셨다.‘막존시비莫存是非, 시비의 마음을 두지 말라. 불탐소출不貪所出, 소득이 있는 것을 바라지 말라.
유연직주有緣直住, 인연이 있으면 곧 머물라. 무연속거無緣速去, 인연이 없으면 속히 떠나라.’
이것은 자광 스님에게 있어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그 말씀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어떤 삶이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나 온 삶에 감사하고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해선 절대 긍정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은사스님께서 내게 내려준 법어입니다.”
자광 스님에게 살아가는 법을 일러주신 게 은사스님이라면 진리를 얻는 데에 영향을 주신 법사스님으로는 영허녹원 스님이다. 황악산 직지사에 주석하시는데 자광 스님이 그곳에 입실하였을 때 천불전에서 마라나 게송을 내려주셨다.‘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은 경계를 따라 분주히 움직여도,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진실한 그 마음은 변함이 없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움직인 그 경계 쥐어 잡으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
憂 기쁨도 근심도 함께 없으리.’
“씩 웃는 게 인생이란 말입니다. 인생은 미소로 끝나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어떤 이유나 미련을 두면 불제자라고 할 수 없지요.”
그리고 또 의지하는 것은 율사스님이다. 자광 스님은 1974년에 해인사에서 도견 스님께 사미계를 수지하고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께 구족계를 수지한다. 그렇게 은사스님, 법사스님, 율사스님의 가르침을 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광 스님이 의지하며 사는 것은 참회사다.
“나는 33대 존자인 육조 혜능 존자를 참회사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육조단경에 의지해 지금까지 살고 있지요.”
‘장정견도將正見度, 정견을 가져 건너가라. 타파우치打破愚癡, 어리석음을 타파하라. 미망중생迷妄衆生, 미망한 중생이여. 각각자도各各自度, 각각 스스로 건너가라.’
“스스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은 스스로 건너가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 대신에 큰스님이나 보살을 의지하지요. 이것이 한국불교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건너가야 해요. 그렇게 건너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사래정도邪來正度 사견이 오면 바른 것으로 건너가고, 미래오도迷來悟度 미혹함이 오면 깨달음으로 건너가고, 우래지도愚來智度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건너가고, 악래선도惡來善度 악이 오면 선으로 건너가라.’
“육조단경에 나온 대로만 하면 돼요.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어른스님들이 내려주신 법어가 자광 스님 삶의 기저가 되었다. 그 안에서 태양과 같이 마음을 잘 쓰며 허공과 같이 경계마다 무심하며 걸어가는 것이 자광 스님의 삶이다. 그런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누구라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은 이 세상을 참 행복하게 살지 않았나 싶겠단다. 그러나 우매한 중생들에게 있어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단능일념귀무념但能一念歸無念 다만 한 생각을 능히 무념으로 돌리면, 고보비로정상행高步毘盧頂上行 비로 정상에서 거닐게 되는 거예요.”
자광 스님은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느 날 아침 은사스님의 요강을 비우다가 깨뜨렸단다. 아침 공양도 안 하고 새 요강을 사러 장에 나갔다. 배가 고파 호떡을 사서 새 요강에 넣어 산길을 올랐다. 잠시 쉬며 요강에서 호떡을 꺼내먹으려는데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요강이니 더러울 것이 없는데 분별심으로 인해 순간 더럽다 생각이 든 것이다. 원효 대사가 마신 해골의 물처럼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자기 생각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한 생각을 무념으로 돌리며, 사는 가운데 무념을 즐기며 살라 하신다.
올해 대한민국의 대표 사자성어가‘전미개오轉迷開悟, 어리석음을 굴려서 깨달음에 이른다’이다. 불교용어가 처음으로 국가와 국민의 화두가 되었다. 종교를 넘어서서 이 시대의 큰 지침이라는 의미다.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개시오입 開示悟入, 진리를 열어서 보이고 깨달아 그 길에 들게 하기 위해서 라고 했다. 그러니 자광 스님은 올해야말로 불교가 열심히 살아가야 할 한 해가 아닌가 말씀하신다. 노을이 슬며시 내려앉는 겨울 저녁, 내내 게송을 들려주시던 자광 스님이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무지개’를 읊어주신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설렌다/ 나 어렸을 때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에 머물기를’ 그리고 그 뜻을 부처님 법 안에서 헤아려 주신다. 자광 스님은‘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이 시에서 찾는단다.
“무지개를 바라보며 가슴이 설렌다는 것은 자성본불自性本佛입니다. 어려서도 늙어서도 그렇다는 것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최고임을 말하는 것이고,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것은 윤회輪廻를 말하지요. 자연의 경건함에 머문다는 것은 늘 자성본불을 향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해거름도 다 지나 도심의 사찰에도 어둠이 깃드는데 자광 스님은 또 어딘가로 바삐 걸음을 옮기신다. 어디로 가시는지 여쭈니 그저 저 어둠에 여여히 스며드신다.
“단자무심거但自無心去, 다만 스스로 무심히 가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남을 붙들지도 남에게 붙들리지도 않고,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과 같이 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