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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최치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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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재천 2014년 02월 384호

민족자존民族自存과 새로운 문명文明에 동시에 열려 있는 글로벌 지성

879년, 고변 휘하에서 황소黃巢를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스스로 물러나게 함으로써 문명文名이 전 중국에 자자하였던 것이다. 백년 천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안중근 최치원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국빈 방문 때 시진핑 주석은 이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범해泛海’로 천년 전의 인연을 붓으로 노래하였다.

괘석부창해掛席浮滄海 돛 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
장풍만리통長風萬里通 긴 바람 만리를 통하네.

고운을 통해 새로운 한중관계를 시작하는 빵빠레라고나 할까.‘창해’나‘장풍만리’에서는 당과 신라를 하나로 넘나드는 고운의 호연지기浩然之氣인 양 시 주석의 읊조림은 다시 천년을 내다보는 한중간의 우의다짐으로 들린다.

고孤와 고苦, 외로움과 괴로움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운의 시는‘추야우중秋夜雨中’이다. 시 한 수가 한 인간의 생애 전부의 외롭고 괴로운, 그래서 탈속脫俗하고자 하는 심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전 소설이 아니라 자전적 시인데 꿈과 현실의 불화로 천리 만리 방황하는 작자의 심회가 눈에 밟힌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아찬阿飡 벼슬에 올랐지만 진성여왕의 난정으로 국운은 사정없이 기울었고, 고운은 개혁책‘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리고는 주유천하周遊天下로 가야산으로 숨어 신선이 된 것이다.

추풍유고음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고 있건만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세상에 날 알아주는 이 적네.
창외삼경우窓外三更雨 창 밖에 밤비 오는데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등불 앞 만리의 마음이여.

‘지음知音’이 없는 만년의 고운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천하를 방랑하는 그의 행적이 증명하듯 만행과도 같은‘만리심’을 내달리는 길뿐이었다. 요컨대 이 노래는 전환시대 망해가는 당과 신라 왕조를 몸소 겪은 고운은 두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육두품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실존에서의 소외 고독은 물론 그 너머 탈속脫俗의 꿈을 집약해낸 절창絶唱이다.

동인東人의식
하지만 이 시가 더욱 절창 중의 절창으로 와 닿는 것은 그의 내면에 도사린 자존自存의식 때문이다. 이런 자존 또한 고운의 경우 자만을 방불케 하는 도도한 호기로 드러나기보다 외로움의 이면에 터를 잡고는 은둔으로 행동한다. 그렇다면 그 자존의 실체는 무엇인가.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동인東人의식이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0대 20대를 그것도 혼자 외국에서 지낸 사람들로부터는 기대하기 어렵다면 어려운 이런 정신이나 사상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가. 한마디로 고운은 유학儒學을 토대로 신라고유사상을 새롭게 인식하여 유·불·도를 하나로 통합해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진흥왕 조條’의 화랑 난랑鸞郞을 기리는‘난랑비서
鸞郞碑序’에는 삼교三敎를 회통시키는‘풍류도’를 우리 사상의 고유전통으로 처음 제시하고 있
는 것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들어와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뜻이다.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다(國有玄妙之道曰風流.設敎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이 글에서 고운이 말하는 풍류도는 신라의 화랑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그 기원은 고대의 전통신앙과 사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고유사상에 유·불·도 등의 외래사상이 하나로 녹여진 풍류도를 고운은‘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고운이 당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도 신라를‘해뜨는 나라(桑浦·桑津)’라는 해동海東의 중심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2세 때부터 16년 동안의 당 유학으로 글로벌 중국통中國通이 된 고운을 일부에서 사대事大나 모화주의자慕華主義者라고 간주하는 것은 그의 철저한 동인의식東人意識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라말려초는 물론 동아시아 세계질서 자체가 다시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명세계를 지향해 나아가는 와중이었다.
도태될 것인가, 진보할 것인가 하는 시대의 선택에서 고운은 진보를 선택하고 쟁취하였지만 시대가 결과론적으로 고운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컨대 민족자존과 새로운 문명文明에 동시에 열려 있는 고운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천년이 지난 지금 세계질서가 G2로 재편되는 지금일수록 여전히 더 생생하고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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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님은 제 19대 국회의원으로 광주일고와 전남대학교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사랑의 친구들 이사, 사회복지법인 숭실공생복지재단 목포공생원 후원회장, 산울림극단 후원회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겸임교수, 전남대 로스쿨 객원교수로 있다. 저서로는《끝나지 않은 5·18 (유스티니아누스1998, 향연 2004)》《솥단지 정치(향연 2008)》《중국-소프트파워 전략으로 부활하는 큰 나라(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여의도 일기2(온리북 2013)》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