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욕심 위에 이성이 있고, 이성 위에 존중할 참가치가 있는 부처 마음자리가 있다. 그런데 이 훌륭한 것을 잊어버리고 감각과 욕망으로만 살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험악한 세상이 되었으며 “인류가 전부 파멸을 면하지 못하겠다.”며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 우리들은 현대사회 병리의 심화된 현상들을 치유할 수 있는 분명한 길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모색하고 역할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속 인간 생활의 원동력은 인생관人生觀에서 나온다. 탐욕貪, 성냄嗔, 어리석음痴을 여의고, 분별分別과 차별심差別心에서 벗어나 자타自他를 넘어서 크고 높은 절대가치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붓다의 가르침 중 하나인 연기법緣起法적 세계관世界觀, 인생관人生觀으로 바른 견해見解를 세우고,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에 대한 사유思惟를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주적인 선택을 통해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면 삶의 큰 장애가 생기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밑바탕 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기 근원을 잃어버리고 주변 환경에 쉽게 물들어 버린다. 다시 말해, 자신의 근원을 투시하는 자기 반조返照, 본질에 대한 투철한 자각 과정이 부족하여 근본바탕에서 멀어져 실상實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지하려는 태도에서 공허함과 두려움이 따르게 된다. 또한, 사회 및 조직 속에서 개인은 역할과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해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이다. 이런 공허함과 불안함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맺어주는 것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라 생각한다. 즉, 불교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치를 바로 보게 하고 가야할 길을 분명히 밝혀 주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과 가르침을 사회화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출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붓다의 혜명慧命을 이어 받아 내 자신을 구제하고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 세속화가 아닌 순수한 성역화로서의 불교, 청정성에 의해 정신 공해를 씻고, 깊은 신심信心을 가질 수 있도록 선구자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가령, 작가가 글을 써도 그 글 속에 작가의 신념信念과 사상思想, 즉 작가적 혼魂이 어려 있는 작품이 아니면 그 글은 죽은 글이며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이나 감동도 줄 수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듯, 가슴 속 깊이 사무쳐 흐르는 자비慈悲의 울림, 간절한 서원誓願에 의한 수행자적 행위가 아니면 그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 피상적인 소리에 불과하며, 불교라는 맹목성에 압박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관념의 노예가 되어 어리석음만을 더 할 뿐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붓다가 말했듯,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는 연속성에 우리 삶의 흐름이 존재한다. 너, 나,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소통, 배려, 이해와 사랑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희망적이라는 것은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상생과 조화로운 관계의 삶을 살아 갈 때 비로소 체득體得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은 차별 없는 존재들이다. 다만, 낡은 사상과 잘못된 습관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자기를 바라보기 보다는 비추어지는 삶에 더 의미를 두고 있어 알아차리지 못 할 뿐이다. 괴로움과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생生의 지혜智慧를 얻는 것은 타성에 젖어든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 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서 없다. 그런데도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삶에 많은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다. 그런데도 미래를 염두에 두는 것은 그것이 곧 현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순간순간 지나 갈 뿐이다. 그러니 현재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너,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밑받침이 될 것이다.
모든 이들이 바른 가르침을 따라 참된 길을 걸어가길 발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