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흐른 지금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소리길에는 차로 오갈 때 보지 못했던 봄, 가을의 춘초화春草花 추풍엽秋風葉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자연과 문화,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쉬는 명품소리길로 21세기에 다시 탄생 했다. 빼어난 풍광과 절경, 최치원이 지정했다는 명소들은 성주괘공의 이치 속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세월을 담은 채 천년의 향기를 지금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보장천추’에서는 잊고 지냈던, 혹은 계곡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명소와 유적, 석문들을 재발견하여 문화와 자료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해인지에서는 2002년 대구에 한학자 김홍영선생에게 부탁하여 고문서에 나타난 홍류동과 해인사의 기록들을 정리해서 1년간 연재한 적이 있었다. 홍류동과 고운선생, 홍류동을 여행했던 많은 선비와 유생들의 기록을 ‘홍류동천’을 통해 만날수 있었다.
이번 코너는 그 2탄아라고 할까? 그때 실지 못했던 사진자료를 많이 싫고 직접 가서 보고 느낀 점을 싫는 탐방기라고 할 수 있다.
1. 환경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1 -암반에 새긴 불명호
환경 스님은 우리나라 해방 후 첫 번째 해인사 주지를 사신 분이다(1946). 어려서부터 서도에 능했던 환경 스님은 평생을 글을 쓰며 서도 정진에 몰두하셨던 분이다. 환경 스님 회고록에는 “해인사 어귀 반석에 새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지장보살地藏菩薩 옥류동천玉流洞天 절승대絶勝臺 사자문獅子門, 그리고 3기의 석주石柱 등은 그가 쓰고 새긴 것이다《환경대선사회고록幻鏡大禪師回顧錄》”라고 돼있다. 그동안 해인사 어른 스님들을 통해 계곡 암반에 여러 글씨가 씌여 있고 그중에는 불명호를 각해놓은 바위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으나 오가며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고는 어느 상점 입간판정도로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친 기억이 난다. 이제 관심을 갖고 찾아보려고 하니 이미 예전에 한번쯤은 봤던 그런 글들이었고 “이것이 그것인가” 하며 새삼 만져도 보며 감탄하게 된다.
지장보살地藏菩薩
첩석대가 있는 계곡의 화강암 암반에 새겨 있으며 해서체의 곧고 웅대한 글씨로 새겨져 있는 지장보살. 해인사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지옥중생을 구제하시는 지장보살이 중생들을 맞이하며 이곳이 부처님이 상주하시는 연화장 세계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래에는 ‘비구니도삼’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후일에 지장보살의 가피를 생각하며 추가로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선암龜船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소리길 마지막 다리, 해인사 주간통제소 앞에 있는 암반에 큰 글씨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바르게 새겨져 있다. 큰 돌거북(龜船巖)이 험난한 홍류동 계곡을 헤쳐 나가는 모양이어서 세상사 파도를 헤쳐 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환경 대선사회고록자료에는 환경 스님이 1906년경에 구선암龜船巖에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절승대絶勝臺 : ‘최고의 경치를 바라보는 곳’이란 뜻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홍류동의 경치가 최고라는 뜻. 두평가까이 되는 누워있는 평평한 바위에 글씨가 Tm여 있으며 하늘을 받치고 있어 대臺자가 붙은 듯하다. 초서체의 화려한 글로 물이 흐르는 듯 한 부드러운 굴곡이 아름다우며 홍류계곡의 흐르는 물과 잘 어울린다. 글씨 끝에는 사문환경서沙門幻鏡書라는 관지가 새겨져 있어 환경 스님의 글씨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농산정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20 미터 위쪽 도로가 계곡 평반에 새겨져 있어 찾아보려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옥류동천玉流洞天
소리길 끝 해인주유소에 등산화를 청소하라고 친절하게 콤프레셔를 설치해놓은 곳 하단에 글씨가 있다. 1909년 환경 스님이 사자문 밑에 정자를 세우고 옥류정이라 이름하며 주춧돌에 옥류동천이라 새겨 넣었다. 이 정자는 1936년 대홍수때 유실되었고 그 자리에는 주춧돌과 석문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