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의 공통되는 중요한 성지입니다. 종교학을 전공으로 공부한 바 있고 여러 이웃 종교의 공통된 성지이기에 예루살렘은 당연히 관심있게 다가왔고, 저는 망설임 없이 이스탄불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습니다. 그곳에는 흑백의 독특한 복장을 하고 안식일 저녁에 통곡의 벽에 모여 기도를 하는 유태인들, 예수님의 석묘가 모셔져 있는 성분묘 교회, 이슬람 최후의 선지자인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황금돔 사원 등 종교적 모습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상징물이 아님에도 유난히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야드 바쉠입니다.
야드 바쉠은 ‘이름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입니다. 이 기념관을 찾게 된 것은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니르가 추천해서였습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홀로코스트에 관한 재연이며 기록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야드 바쉠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트램을 타고 예루살렘 서편의 허츨 산 능선에 위치한 야드 바쉠을 찾아갔습니다. 야드 바쉠은 통곡의 벽 다음으로 예루살렘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고 들었지만 토요일 오전의 야드바쉠은 비교적 한산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시간 가량 둘러본 뒤, 전시관을 들어서기 전의 가벼운 호기심이 전혀 다른 형태로 감정으로 바뀌게 되더랍니다.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슬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홀로코스트는 나치에 의해 유태인 6백만 명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대학살 사건입니다. 그러나 제가 기념관에서 본 것은 그 중 몇 명이 살아있던 당시의 흔적들입니다. 그들이 입었던 유태인 옷이며 지갑 안의 가족사진, 오래된 일기장, 처형 당하기 직전의 표정, 그리고 죽은 뒤 시체가 된 모습들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가 객관적으로 기술된 ‘600만 대학살’이란, 그다지 큰 반향없는 서술이었음에 반해, 제가 전시관에서 본 것은 그 한사람 한사람의 삶과 죽음의 생생한 기록들이었습니다. 수많은 동포들이 죽어나가는 악몽같은 전장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유태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십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사람으로서의 본능과 당위성을 말입니다.
시오니즘의 완성이라는 이스라엘의 건국은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역사•정치•외교•경제•종교적으로 복합성을 담고 있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분쟁은 단순한 몇 가지 사항을 근거로 명확하게 평가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분쟁을 통해서 외려 열위에 처한 팔레스타인 쪽에 아무래도 더 많은 지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천 년간 머물던 터전을 어느 순간 몰려드는 유태인들에게 내주고 변방으로 밀려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아무래도 이해나 심정 면에서 더 동조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미디어의 힘을 빌어서 매번 상황을 리드하는 쪽으로 가는 데에 대한 반발감도 적잖이 한몫 하기도 할테고요. 저 역시도 이러한 정황 때문에라도 열악한 상황에 있는 팔레스타인 쪽에 더 많은 지지를 하게 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드바쉠을 둘러보고 난 뒤, 이런 생각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겁니다.
야드바쉠을 나오면서 <마더>라는 영화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영화 안에서 엄마는 살인을 저지른 저능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살인은 인륜지사에서 가장 악한 행동이고 실정법상으로도 최고의 중범죄입니다. 그러나 <마더>를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손쉽게 그 엄마를 비난하고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건 엄마라는 존재가 지니는 중층적인 역할과 의미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시키고 인격을 갖추게 하는데 있어서 엄마는 윤리 차원에서 어머니가 되지만 시비에 관계없이 자식을 비호하고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해내는 본능에서 엄마는 어미가 됩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어머니이기도 하려니와 상황에 따라서 어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을 명확히 갈라놓고 우리는 엄마에 대한 모습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저능 아들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며 살인까지 저지른 어미에 대해서 무작정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관광버스 안에서 자신의 주변 상황에 대한 고통을 잊으려 정신줄 놓고 춤을 추는 엄마의 심정처럼, 영화를 본 뒤의 관객이 지니는 심정도 그렇게 복잡다단해지는 겁니다.
이스라엘 건국이나 팔레스타인 분쟁은 사실상 합리적인 협상이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들이 아닙니다. 역사의 중대한 순간이나 사건들엔 외려 비상식적 동기나 철저한 이기주의에 근거하여 발생한 것들이 많습니다. 역사가 만들어 낸 이런 폐단들을 어떻게든 바로잡아보고 이를 지켜가려는 데에서 도덕이며 윤리란 원칙이 생겼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터입니다. 유태인들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감에서 나치에 의해 발생한 홀로코스트나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영토를 차지하여 생기게 된 팔레스타인 분쟁도 사실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갖 수모와 학살을 당하면서 어떻게든 이를 모면하고 자신들이 지낼 수 있는 이스라엘을 건설했던 것은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사명보다는 ‘어찌보면’ 무슨 수로든 살아보려는 인간의 본능에 근거한 사건인 면도 있습니다. 국가는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영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근원의 고향이고 안전한 삶을 위한 테두리이기 때문이죠. 야드 바쉠에 가서 제가 보게 된 것은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졌던 유태인들이 방랑과 핍박에서 벗어나 어미로서의 땅을 가져야 하겠다는 그 처절한 열망이었습니다. 많은 부분 잘못된 걸 알면서도 마냥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는 건 유태인들의 그 삶을 향한 본능을 야드 바쉠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명쾌한 해결 방안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든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누구도 어미에게 쉽사리 돌을 던질 수 없다는,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미화할 수도 없는 삶의 아이러니 한 가운데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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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圓帝 스님은 2006년 해인사로 출가 후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2011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은사스님을 모시며 수행하던 중 2012년 가을, 유라시카(Europe, Asia, Africa) 만행을 기획하여 2012년 9월부터 세계 만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