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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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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4년 01월 383호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맞는 달엔 몸도 마음도 바쁘다. 혜일 스님도 정신없이 바쁘시다. 잠시 이야기 나눌 틈도 내기 어렵다는 스님을 찾아가 뵙는다. 도심에서 이렇게 바쁘게 사시는데, 무얼 위해 출가를 했는지부터 여쭙는다.
“범부들처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진일보된 삶을 원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런 갈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출가 전에 혜일 스님은 혼자 깊은 산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지낸 날들도 있고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해답을 찾길 원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계기도 없이 통도사에 찾아가 출가를 했다. 그러고는 해인사로 가서 강원을 마치고 밀양 표충사의 자그마한 암자에 들어가서 혼자 2년을 살았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서 밥을 끓여먹으며 수행을 했다. 그 이후 강진 백련사 주지를 살면서부터 사판의 삶이 시작됐다. 연화사의 주지를 살고 총무원 호법부에서 조사국장을 살고 98년 종단 사태도 현장에서 몸소 겪고 종회의원으로도 살았다. 그러고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차별법에 대항하는‘종교 차별 범불교대회’를 이끌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청와대 수석들이 불교를 폄훼하던 때였다. 그러면서 공공연하게 성시화 운동을 펼치던 때였다. 외국의 대사관에도 예배당을 짓고 사찰이 무너지라고 기도하면서 학생들에게 예배를 강요하였으니 한국 땅에서 불교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 정도였다. 전국의 스님들을 비롯해 불자들 삼십만 명이 서울 광장에 모였다.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법 수호에 대한 뜻을 단결하는 것만이 불교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약속했어요.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법을 금지시키고 싶었어요.
다른 스님 여섯 분이 제 소신공양에 뜻을 같이하겠다고 했지요.”
이행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의 만류에 의해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다. 혜일 스님은 3개월간 범불교대회를 이끌며 많은 회의와 절망을 느꼈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문광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에서 약간의 조례들이 바뀌었다.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불교의 위상이 많이 제고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그것을 위한 방법이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뿐이었는지 스님께 여쭙는다.
“생명이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때 판단했을 때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생명 하나 없애서 불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불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는 길에 꼭 필요하다면 몸을 던져야죠.”
그 당시 혜일 스님은 종회의원이면서 연화사 주지를 할 때라서 사판 승려로선 선두주자로 인정받으며 탄탄하게 살 때였단다. 그 당시 이 생이 참으로 행복했단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 안에서 사는 한 소신공양, 그것이 혜일 스님의 큰 뜻이었단다.
“부처님 법이 존재해야만 현세의 사람들도 성불할 수 있고 후세에도 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부처님 법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 한뜻을 모았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할 것입니다.”
혜일 스님은 내내 불법 수호를 위한 단결을 말씀하신다. 불자들이 뜻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야만 한단다. 그리고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성과 쇄신이 필요하다 말씀하신다.
“불교 수행자들이 변해야 할 때가 왔어요. 불자들이 봤을 때 맞지 않는 행동은 스님들이 자제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첫째로 재정이 투명해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계율을 잘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스님은‘희생’을 말씀하신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것,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더 큰 것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니, 소신공양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혜일 스님은 주지
를 살 때에도 자신보다 사찰이 먼저였고 사찰보다 지역사암연합회가 먼저였으며 그것보다 조계종이 먼저였고 그것보다 불교가 먼저였다.

“우리 신도들은 남한테 다 양보하고 뒷바라지만 해서 제대로 누려보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그랬을 때에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를 위해서 내 희생이 보탬이 된다면 그 길을 가는 데에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조건을 바라는 봉사는 보살행일 수 없겠지만 자비를 바탕으로 한 봉사는 보살행일 것이란다. 행함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행하는 무행을 할 수 있기까지 그렇게 꾸준히 자신을 단련시켜가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하기에.

혜일 스님이 문화부에 온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되었다. 그 두 달간 정신없이 지내오며 문화부를 이끌어 가시는 스님의 소신을 여쭙는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불교의 것이에요. 이 유형, 무형의 문화를 당대에도 향유해야겠지만 잘 보존해서 후세에도 이것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불교문화재들을 잘 살펴 제도화되어 있지 못한 무형의 문화들을 제도화하고 전수 기관을 만들고 자료 수집을 통해 해설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해설사도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많은 스님들이 그것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이해시키기를 원한다.
“저는 불교문화 속에 불법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문화를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불교를 잘 지키고 전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소임을 보는 동안 제 역량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혜일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지금 펼쳐진 상황이 인연이라면 회피하고 싶지는 않단다. 부처님 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것에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혜일 스님의 뜻이다. 지금은 지금 이대로 행정 일을 보고 암자에 가서는 법문도 하고 포교도 하고 밤엔 수행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다.
“저는 복덕 위에 선정이 있어야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복덕을 구족하기 위해서 많은 선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선방스님들처럼 내 스스로를 찾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아요.
이 자체로 살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출가자로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부처님 앞에 부끄러움 없고 스스로의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혜일 스님이 원하는 최상의 삶이란다. 스님은 며칠 전에 난전에서 삼십 년 넘게 장사를 해온 한 60대 보살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그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단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부처님 법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 이야기는 지난달에 있었던 일에서부터 연유한다. 지난달 해인사 암자에 내려가 한 보살님 수계를 하고선 불살생不殺生 법문을 했다. 그때 그 보살님이 물으셨다. 남편이 낚시를 너무도 좋아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그만두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혜일 스님은 이리 전하라 말씀하셨다. 고깃간에 가보아라. 큰 갈고리에 고깃덩이가 꿰여서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당신 입에 끼워 그 끝이 눈으로 나오고 코로 나오고 볼을 뚫고 나오면 어떨 것 같으냐. 그것에 줄을 매달아 차에 매달고 당기다 놓고 또 당기다 놓으면 어떨 것 같으냐. 잘은 모르지만 물고기의 마음도 그것과 같지 않겠나. 참 괴롭지 않겠나. 고기를 잡을 때의 손맛, 그 동물적 욕망과 그것으로 인한 희열을 위해서 고기를 잡아서 먹지도 않으면서 죽이는 일을 계속 한다면 어찌 성불을 하겠나. 그 업 속에서 물고기가 인연의 고리로 언젠가 당신을 만나 앙갚음을 하지 않겠나. 보살님은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낚시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 보살님은
스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맞춤법도 전혀 맞지 않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어온 편지를 말이다. ‘혜일 스님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와서 시킨 대로 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안 해서 감사합니다. 웃는 얼굴로 항상 노점에서 장사하면서 부처님을 만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혜일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혜일 스님의 원력은 스님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불자가 되는 것이란다. 그리고 한 발이라도 더 부처가 되는 길에 다가 설 수 있는 것이란다. 한 걸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이것
이 바로 혜일 스님의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처럼 어렵고 그처럼 중요하고 그처럼 깊고 넓은 말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