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도들은 남한테 다 양보하고 뒷바라지만 해서 제대로 누려보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그랬을 때에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를 위해서 내 희생이 보탬이 된다면 그 길을 가는 데에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조건을 바라는 봉사는 보살행일 수 없겠지만 자비를 바탕으로 한 봉사는 보살행일 것이란다. 행함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행하는 무행을 할 수 있기까지 그렇게 꾸준히 자신을 단련시켜가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하기에.
혜일 스님이 문화부에 온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되었다. 그 두 달간 정신없이 지내오며 문화부를 이끌어 가시는 스님의 소신을 여쭙는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불교의 것이에요. 이 유형, 무형의 문화를 당대에도 향유해야겠지만 잘 보존해서 후세에도 이것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불교문화재들을 잘 살펴 제도화되어 있지 못한 무형의 문화들을 제도화하고 전수 기관을 만들고 자료 수집을 통해 해설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해설사도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많은 스님들이 그것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이해시키기를 원한다.
“저는 불교문화 속에 불법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문화를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불교를 잘 지키고 전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소임을 보는 동안 제 역량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혜일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지금 펼쳐진 상황이 인연이라면 회피하고 싶지는 않단다. 부처님 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것에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혜일 스님의 뜻이다. 지금은 지금 이대로 행정 일을 보고 암자에 가서는 법문도 하고 포교도 하고 밤엔 수행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다.
“저는 복덕 위에 선정이 있어야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복덕을 구족하기 위해서 많은 선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선방스님들처럼 내 스스로를 찾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아요.
이 자체로 살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출가자로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부처님 앞에 부끄러움 없고 스스로의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혜일 스님이 원하는 최상의 삶이란다. 스님은 며칠 전에 난전에서 삼십 년 넘게 장사를 해온 한 60대 보살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그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단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부처님 법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 이야기는 지난달에 있었던 일에서부터 연유한다. 지난달 해인사 암자에 내려가 한 보살님 수계를 하고선 불살생不殺生 법문을 했다. 그때 그 보살님이 물으셨다. 남편이 낚시를 너무도 좋아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그만두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혜일 스님은 이리 전하라 말씀하셨다. 고깃간에 가보아라. 큰 갈고리에 고깃덩이가 꿰여서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당신 입에 끼워 그 끝이 눈으로 나오고 코로 나오고 볼을 뚫고 나오면 어떨 것 같으냐. 그것에 줄을 매달아 차에 매달고 당기다 놓고 또 당기다 놓으면 어떨 것 같으냐. 잘은 모르지만 물고기의 마음도 그것과 같지 않겠나. 참 괴롭지 않겠나. 고기를 잡을 때의 손맛, 그 동물적 욕망과 그것으로 인한 희열을 위해서 고기를 잡아서 먹지도 않으면서 죽이는 일을 계속 한다면 어찌 성불을 하겠나. 그 업 속에서 물고기가 인연의 고리로 언젠가 당신을 만나 앙갚음을 하지 않겠나. 보살님은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낚시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 보살님은
스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맞춤법도 전혀 맞지 않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어온 편지를 말이다. ‘혜일 스님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와서 시킨 대로 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안 해서 감사합니다. 웃는 얼굴로 항상 노점에서 장사하면서 부처님을 만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혜일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혜일 스님의 원력은 스님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불자가 되는 것이란다. 그리고 한 발이라도 더 부처가 되는 길에 다가 설 수 있는 것이란다. 한 걸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이것
이 바로 혜일 스님의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처럼 어렵고 그처럼 중요하고 그처럼 깊고 넓은 말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