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판전에는 왜 손상된 경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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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4년 01월 383호
해인사에 봉안된 팔만대장경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고려는 지정학상으로 북방 오랑캐들이 자주 침입하는 곳에 위치하였다. 그 당시에 우수한 선진문화 척도는 대장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조성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 중국의 북송에서 최초로 개보칙판 대장경이 983년에 완성 되었다. 북송 대장경이 고려의 사신들을 통하여 성종10년(991)에 도입되자 이를 버금으로 판각하여 고려는 국위를 선양하려 하였다. 그러나 거란의 외침이 잦아 때를 기다렸는데 무참하게도 수도인 개경까지 쳐들어와 압박을 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간행하려는 대장경을 부처님의 가호로 거란족이 물러가기를 발원으로 시작하니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이 초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고려를 침범한 거란은 스스로 물러나게 되었다. 초조대장경은 1011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77년만인 1087년에 완성이 되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은 대구의 부인사에 보관이 되었는데 1232년에 몽골군의 방화로 그만 불타버리고 말았다. 고려를 침범한 몽골군은 황룡사 구층목탑과 초조대장경등의 우수한 선조들의 민족문화유산에 많은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수한 문화를 파괴하여 고려인들의 응집된 힘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고려 고종은 소실된 초조대장경보다 훨씬 뛰어난 대장경을 만들어 몽골군의 침입으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나라가 어려워지자 민심을 한곳에 모아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스스로 재건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국가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대장경 조성은 1236년부터 시작하여 16년만인 1251년에 완성하였다. 대장경판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판각에 적당한 나무의 선택이다. 경북대학교 박상진 명예교수가 1994년에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표본 250여판을 추출하여 조사하여 보니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80% 이상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현재 많은 서각전문가들도 경판을 새기기에는 산벚나무가 탁월하며 고려시대에는 쉽게 구할수 있는 나무였다고 한다. 그러나 81,258판이나 되는 대장경판을 만들기 위하여는 모두 좋은 나무가 사용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인사에서 108판 중복판 조사를 하면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원판이 손상이 된 것은 나무의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손상된 경판들은 나무가 가볍고 또한 무르고 약하여 쉽게 손상이 갔다. 그래서 고려시대부터 인경을 하면서 글자가 마모가 되고 보수를 한 흔적들이 경판에 남아 있다. 앞으로 해인사는 이러한 경판들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보존과 보수를 병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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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부터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중 훼손상태가 심각하고 급히 보존·보수가 필요한 경판에 대해 매달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