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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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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유기석 2014년 01월 383호

\'이것은 무색 무취하여 건강에 몹시 해로우니 아주 날려버립시다.\' 밑도 끝도 없이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연탄가스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건강을 해치는 ‘듣보잡’이 발견되기라도 했나 하겠지만 사실 이 말은 거리에서 술집 광고용으로 나누어주는 휴지 팩 겉에 쓰여 있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의다. 스트레스는 냄새도 색깔도 없고 이것이 암 발병의 주범이라고 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닌 성 싶다.
내가 있는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 식당가의 점심시간은 11시 반쯤부터 시작되지만 밥집의 피크타임은 12시쯤부터 삼사 십분 정도된다. 그래서 보통 12시 반을 지나서 밥집으로 가면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빈자리에 앉을 수 있지만, 한참 붐비는 시간에는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거나, 대충 걷어 넣고 빨리 자리 내달라는 뜻으로 내지르는 식사사의 \'저쪽 분들 다 먹어가니까 금방 자리나요\'라는 압력에 밥이 코로 들어갈 수도 있다.
서울 디지털 단지 안에는 약 11,000개의 회사가 있고 약13만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삼사 십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한꺼번에 식당으로 몰려가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할 만큼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목구멍으로 점심을 넘긴다. 점심시간 마다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선택한 음식을 먹는데도 이건 숫제 스트레스를 먹는다고 해야 옳을 지경이다.
그래서 언젠가 식사사(식당 아주머니의 존칭)한테 피크 타임을 넘어 입장하는 손님한테는 음식값을 좀 깎아주는 마케팅을 한번 해보심이 어떠냐고 제안해보기도 했었는데, 그 식사사의 표정이 떨떠름한 것이 \'바쁜데 시킨 거나 얼른 먹고 자리를 비켜줄 일이지 수도분한 소리나 지껄인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손님이 잘 먹든 말든 시간은 갈 테고 일은 끝날 텐데 바쁜 시간에 그런 얘기 듣는 것 자체가 식사사에게는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날씨 탓인지 그런 광경을 보기 힘들지만 주점 등에서 온 김실장, 이박사, 조영필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피에로 복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작은 일회용 휴지를 나누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나 같이 캐주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패스고 넥타이 메고 말쑥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만 골라서 준다. 캐주얼과 정장의 차이는 점심시간에 길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까 작은 휴지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청바지와 점퍼의 스트레스를!
어느 날엔가 정장을 입은 덕에 건널목에 서있다가 휴지 하나를 받았는데 거기에 쓰여있는 말이 냄새도 색깔도 없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로우니 자기네 집에 와서 날려버리라는 것이었다.
최첨단 음향기기와 인테리어를 구비한 쾌적하고 안락한 VIP 룸에서 죽죽 빵빵 하다는 미녀와 전혀 부담 없다는 저렴한 가격의 양주를 같이 마시고 진탕 놀다가 마지막에는 대리운전 기사를 사서 집에까지 간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활기찬 내일을 기약한다?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곳에 몇 번 경험이 있는 내가 볼 때, 그 다음날 숙취 등으로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쌓였지 그 반대의 효과는 기억에 없다.
세상 살면서 스트레스 없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지기는 오만 가지 걱정이라는 옛말도 있는데, 송장이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포대기에 쌓인 간난아기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다리를 쭉 뻗으며 온 몸에 힘을 주는 행동이 최초의 자위행위라는 설이 있는 반면에 스트레스의 발산이라는 설도 있다. 갓난애기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다.
남미의 아마존 강에서 열대어를 잡아다가 미국의 가정에 파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지 원주민들을 동원하여 잡아들인 열대어를 한 마리 당 1 센트에 사서, 미국까지 운송하여 각 가정에 소매로 팔 때는 마리 당 10 달러에 팔았다. 아마존에서 미국까지 수송하는데 아무리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탱크의 내부를 열대어들이 살던 강과 최대한 흡사에게 만들어 주어도 수송하는 과정에서 90% 이상 죽어버리니 팔 때의 값이 비싼 건 어쩔 수 없었다. 운송 과정의 손실률을 줄이려고 수많은 돈과 수고를 들였지만 별로 성과가 없는지라 나중엔 어쩔 수 없는 손실률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으로 배달된 탱크 속을 들여다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열대어들이 쌩쌩하게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탱크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는 메기가 한 마리 섞여있을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마도 잡은 열대어들을 탱크에 싣는 과정에서 메기가 한 마리 딸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너무나 판이한 결과가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마리의 메기와 열대어의 생존율에 대하여 연구하였는데, 재미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고 나중에 실제 실험을 통하여 그들의 추론이 정확했음을 확인하였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그 결론이라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메기 없는, 즉 천적이 없는 상황하에서는 열대어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삶의 치열함을 느끼지 못하는 열대어들이 오히려 스트레스 없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운송기간 동안에 많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아마존 강 속에는 먹고 먹히는, 쫓고 쫓기는 삶의 치열함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이 살기 위해서 긴장하는데 비하여, 탱크의 내부는 그런 긴장이 없었던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사 아무 걱정이 없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면 전혀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처럼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그런 맹탕 같은 삶이 아닐까 싶다.
지난 여름 휴가철에 섬의 해변에서 전화기를 물에 빠트리는 그야말로 큰 사건이 있었다. 핸드폰 없이 산 며칠 동안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문이 바로 내 손안에 있었구나 라는 걸 실감했고, 외부와의 통로가 차단된 사실 하나로 며칠 동안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핸드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도올의 강의에 \'유위(有爲)는 인간사 비극의 원초적 근원이라지만 그렇다고 무위(無爲)를 추구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로 인한 맹탕 같은 삶도 스트레스지만 유위는 반듯이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따라서 스트레스 없기를 바라는 우둔함 보다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오히려 필요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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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석 님은 서울 금천구 디지털 산업단지에 있는 ㈜트라이텍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