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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틀렸고, 둘도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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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4년 01월 383호
2013년 동안거 반산림 일기번순농설一期飜脣弄舌이나
요차무불법도리要且無佛法道理로다
입술을 까불고 혀를 놀린다고 해도
불법의 도리는 제대로 없구나.

운문 선사께서 결제가 반쯤 지났을 무렵 상당上堂하여 말했습니다.
“오늘은 반산림半山林날이다. 작은 북과 북채가 부딪히는 곳을 한 구절로 일러보아라.”

청규淸規에 이르기를‘발(簾)을 걷고 문을 열고 북소리를 낸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총림에는
종鐘 판版 목어木魚 추椎 경磬 바라(鈸) 북(鼓) 등을 사용하여 의식을 올리고 대중을 운집하여 갖가지 일상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작은 북은 용도에 따라 차를 마실 때, 공양할 때, 운력할 때, 목욕을 할 때는 북채를 부딪쳐서 법도에 맞게 소리를 냅니다. 차 마실 때는 길게 한 번, 공양할 때는 세 번, 목욕할 때는 네 번을 두드렸습니다. 작은 북을 울리는 것은 그 소리에 따라서 뭔가 대중에게 분별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작은 북을 울리고 발을 걷어 올리고 문을 여닫는 것도 늘 있는 일상사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모든 동작과 분별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일상생활을 떠나지 않고 제대로 한마디 해보라는 말입니다. 반산림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라 늘 일 상사 그대로 살아왔던 살림살이 있는 그대로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말을 쫓아서 이해하려고 하거나 천차만별로 질문과 논란을 던져서 해결하려고 든다면 한바탕 말재주만 늘어나 도에서는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결제대중은 이 질문을 알아듣고서 제대로 풀어낸다면 살길이 저절로 열리겠지만, 이 질문을 피하려고 든다거나 혹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죽을 길이 저절로 열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의 쌀 한 말을 얻고자 한다면 나의 반년 양식을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시간은 절대로 우리들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어느 날 죽는 날이 닥친다면 염라대왕 앞에서 무엇을 가지고, 또 무슨 공부 힘으로 겨루어 볼 수가 있겠습니까? 끓는 물속에 빠진 조개나 게처럼 허우적대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벌써 반결제가 지나갑니다. 어정거리면서 절대로 시간을 부질없이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한번 사람의 몸을 잃는다면 만겁 동안에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공부하는 일은 절대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믿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저 코끼리가 발걸음을 옮기듯이 뚜벅뚜벅 한 걸음 한 걸음 공부길을 향해 걸어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수지맞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해인총림은 전통대로 반산림 이후 납월 8일까지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철 동안 혹 공부가 미진한 납자가 있었다면 더욱 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 결제 이후 오늘까지 꾸준히 공부 해 온 납자는 더욱 힘을 얻는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운문 선사는 납월 팔일 용맹정진을 앞두고 납자들에게 격려 삼아 한마디 하였습니다.
“여래께서 샛별이 떴을 때 도를 이루었다.”
그러자 한 납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샛별이 떴을 때 도를 이룬 것입니까?”
뭔가 자기공부를 자랑하기 위한 거량이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헛발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운문 선사는 말했습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와.”
우쭐한 마음으로 다가선 그 납자에게 선사는 주장자로 후려쳐서 사정없이 내쫓아버렸습니다.
용맹정진 동참대중은 납월 팔일날 주장자로 얻어 맞을 것인지, 샛별을 보고 빙그레 웃을 것인
지 하는 것은 얼마나 분심으로 간절하게 정진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운문 선사께서 반산림半山林날 하신‘북과 북채가 부딪히는 곳을 한 구절로 일러보아라’라는 말
에 대하여 보림寶林 본本 스님은“일기불성一旣不成이요 이역불시二亦不是로다. 하나라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고, 둘이라 해도 옳지 못하다”는 착어着語를 붙였습니다.
삼동三冬안거의 결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정진대중 각자가 뭔가 자기 소리를 한 마디
씩 할 수 있는 경계가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결제대중이 듣는 죽비의 양 날개가 부딪히는 소리와 산승이 구르는 주장자 부딪히는 소리와 운
문 선사가 들었던 북과 북채의 부딪히는 소리는 서로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다고해서 또 이 말에 걸려들어 마주쳐서 부딪치는 곳을 절대로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구절구절마다 분명하게 그 뜻이 드러나 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니우도약상청명泥牛跳躍上靑冥하야
축착액두합착비築着額頭磕着鼻로다
진흙소가 뛰어올라 푸른 하늘로 솟았지만
이마를 부딪치고 코만 찢어졌을 뿐이로구나.

불기2557(2013)년 동안거 반산림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