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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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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불화 이야기 - 김현정 2013년 11월 381호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

모든 불화가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특정한 경전을 그림으로 옮긴 형식을 두고 변상도變相圖라고 한다. 경전의 내용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면을 압축하기도 하고, 혹은 사진의 스냅샷(Snap shot)처럼 부처님의 설법 장면을 그리기도 하였다. 변상도는 큰 화폭에 그려서 불전 내부에 걸기도 했지만, 요즘으로 치면 책의 표지화나 혹은 삽화와 같이 출판되거나 사경된 경전의 앞부분에 그려 넣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변상도를 특별히 사경화 혹은 경전화로 구분하여 부른다.
우리 불화 이야기를 시작하는 마당에 아무래도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순서인 듯싶어 신라 경덕왕 14년(775)에 완성된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신라시대 그림이 남아 있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감개무량인데(워낙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고대의 회화가 없다), 거기다 자세한 조성기造成記(발원문)까지 적혀 있어 불사를 하게 된 사정은 물론이고, 누가 언제 제작했는지까지 알 수 있으니 우리나라 오래된 그림이라는 점 말고도 너무나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앞에서 길게 설명한 것처럼 화엄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변상도인데, 백지에 먹으로 사경한 화엄경 첫 머리에 그려진 것이다. 자색 종이에 금니金泥로 그렸는데, 경전 자체가 펼쳐보기 어려울 만큼 손상되었고, 한 장짜리 그림이 2장으로 찢어져 전해지고 있는 지경이다.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아마도 전래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
던 듯 싶다. 그림은 많은 부분이 손실돼서 현재는 신장상, 불보살, 장엄용 꽃 풀 등 몇몇 부분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알아볼 수 있는 부분만을 보더라도 신라의 금니 사경화의 수준은 세계적이었다(이러한 전통은 이후 고려에 와서는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황룡사의 연기緣起 법사法師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발원하여 제작하였다. 발원문에는“내가 이제 서원하노니 미래가 다하도록 이루어진 이 경전 훼손되지 말지어다. 설령 삼재가 대천세계를 부순다하여도 이 경만은 허공과 같이 함께 부서지지 않으리. 중생들은 이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을 보고, 경문을 듣고, 사리를 공경하리니 보리심을 내어 물러나지 않아 보현보살의인을 닦아 성불하리라. 화엄사에서 사경을 하였다. 경덕왕 13년(754) 갑오년 8월 1일에 시작하여 을미년 (경덕왕 14, 755) 2월 14일에 완성하고 구층불세존사리탑도 함께 조성하였다”고 기록하였다.
화엄사의 대대적인 중창이 경덕왕대 이루어졌고, 여기서 화엄경 사경을 했다는 내용으로 보건대, 당시 신라에 널리 퍼진 화엄사상의 유행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더불어 조성기에는 사경의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사경 제작 전의 준비과정을 모두 나열하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매우 크다. 이 기록을 보면 종이를 만들고 사경을 하는 것은 남원, 무진 등 지리산 인근 사람들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화엄사에서 쓰고, 이후 경전으로 엮는 작업은 대경大京 즉 서울사람들이 했다는 내용으로 보건대 마무리 작업은 서라벌에서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특별히 변상도를 그린 화가로 의본한내마, 정득내마, 광득사지, 두오사(佛菩薩像筆師 同京 義本韓奈麻 丁得奈麻 光得舍知 豆烏舍)와 같은 이름이 적혀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우리 불화에 등장하는 첫 화사들이다.“삼재가 이 세계를 부순다해도 이 경만은 허공과 같이 부서지지 않으리”라는 발원처럼 우리는 천이백오십년의 세월을 허공과 같이 거슬러 올라가 신라인들과 여기서 조우遭遇할 수 있으니 연기 법사의 기원이 참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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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님은 상명대학교에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였으며 석가여래 설법도상 연구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미술사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