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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났지만 할 일은 태산처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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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3년 11월 381호

선거는 끝났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종단을 휩쓸고 간 것처럼 술렁였다. 33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34대 총무원장에 재임하는 데 성공했다. 10월 31일부터 새 임기가 시작됐다. 지금은 태풍 뒤의 고요함 같은 정적이 감싸고 있다. 새 총무원장이 뽑히면 으레 언론들은 당선자 인터뷰에 지면을 할애할 텐데, 그런 언론은 없다. 매스컴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자승 스님의 성격도 작용했을 테지만, 총무원 주변에서는 언론의 냉담한 반응이 시사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선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선거법의 문제, 종도들을 소외시키는 과두적 계파 지배의 구조화를 보여줬다. 이런 문제들이 결국은 ‘저들만의 잔치’였다는 인식을 굳히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면 너무 비관적인가.
가을 저녁의 찬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선거법의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이후 직선제가 되었든, 추천제가 되었든 큰 변화가 있을 테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따져야 한다. 그리고 선거법에 담아내야 할 정신과 철학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난해 수차례 걸쳐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논의 주체와 폭을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는 절박함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종도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현 제도는 중앙종회의원 81명과 교구 선거인단 240명이 뽑는 간선제이다. 제도상으로는 큰 하자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교구선거인단을 선출하면서 종도들의 의사가 반영되느냐이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종도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됐다. 대부분의 교구선거인단 선출과정을 보면, 한 스님이 발언권을 얻어 “중앙정치무대에서 힘을 발휘하도록 본사주지스님에게 위임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을 내면, 두세스님이 똑같은 내용의 발언을 하며 앞서의 제안에 동의한다. 그러면 잠시 휴회 후 주지스님이 미리 작성한 명단을 읽는다. 이로써 선거인단이 정해진다.
동화사와 마곡사 등의 교구에서는 주지스님에게 위임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대가 있으면 당연히 선출 방법부터 정하고, 이에 따라 의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종도들의 의사를 대신해 행사하는 선거인단을 뽑으면서 종도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 차례의 회의를 통해 마곡사 선거인단의 선출을 무효화했다.
그러나 비슷한 사례로 뽑힌 동화사 선거인단의 선출은 인정했다.‘종정스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것이 이유였는데, 종정스님이 계시는 곳에서는 이래도 되는 것인가, 종정스님이 계시는 곳이니 철두철미 여법하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오리혀 종정스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오점을 남겼으니 교구선거인단을 뽑게끔 하는 제도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답이 없다. 현 선거법에서는 교구선거인단을 뽑는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교구종회에서 선출한다고만 되어 있다. 이렇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비한 제도일지라도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운용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있다. 이왕 교구종회에서 뽑도록 했으면 교구에 소속된 말사주지스님들의 자유로운 의사의 결집으로서 선거인단이 뽑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제도를 운용하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선거법 중 또 하나의 문제는 피선거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제13조(피선거권)가 문제의 조항인데, 승랍 30년, 연령 50세,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춘 자는 총무원장의 피선거권이 있다.
1.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역임, 2.교구본사 주지 4년 이상 재직 경력, 3.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 2년 이상재직 경력, 4. 중앙종회의원 6년 이상 재직경력, 5. 각급 종정기관 위원장 역임.
이 규정은 지난해 9월 만들어졌다. 후보의 난립을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조항에 해당하려면 계파의 추천이 있어야 가능하다. 종단정치를 분할 지배하고 있는 계파모임에 속하거나 계파의 추천을 받지 않고서는 종회의원이나 교구본사주지 등 위에 나열된 소임을 맡기 어렵다. 장벽을 너무 높게 만들어놨다. 수행과 포교, 교육에 전념하는 스님은 아예 출마자격조차 얻을 수 없다.
일정 정도는 정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소임이 총무원장이긴 하지만, 제방에서 존경받는 스님이라 할지라도 총무원장이 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시급히 철폐되어야 할 조항이다.
계파 구조 또한 혁파되어야 한다. 조계종도 정치가 이뤄지는 곳이라 몇 개의 정치계파가 존재한다. 지난해 계파의 폐해를 지적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해체를 선언했지만,불교광장, 무량회, 무차회, 백상도량이라는 네 개의 계파가 활동하고 있다. 최대 계파인 불교광장은 이번 선거에서 자승 스님을, 무량회와 무차회, 백상도량 즉 3자연대는 보선스님을 총무원장후보로 각각 추대했다. 계파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계파라면 대중의 지지와 참여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계파는 종회의원들과 본사주지들의 이너서클 같은 모양이다. 종도들의 참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은 물론 오히려 원성의 대상이다.
계파의 이해관계의 결합에 따라 총무원장을 비롯해 종단의 주요소임을 배분한다. 계파에 속한 스님들이 종법에 어긋난 일을 저질러도 계파 보호라는 울타리를 치니 합당한 처벌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계파들은 자파의 이익의 확장을 넘어 종법을 무력화시키는 상황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종도들을 소외시키는 이런 구조는 더욱 공고화됐다. 소외된 종도들은 무관심과 냉소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총무원장의 대표성의 위기와 지도력의 한계를 가져온다.
선거과정을 거쳐 뽑혔으므로 법적인 정통성은 확보했지만, 종도들의 마음마저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소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갈등이 깊어지거나 스캔들이 발생하면 강력한 저항과 비협조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나아가 종도들의 무관심과 냉소가 분노로 변화해 저항이 조직화되면 종무행정 전반이 흔들리게 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각자의 처소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시 되새기며 일상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면서 각인이 종단이라는 터전을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모이면 차 한잔 마시면서 자연스레 선거 뒤와 종단의 앞날을 걱정하는 얘기를 나눈다. 얘기들을 모아 논의로 다듬어내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