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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암자 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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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혜원┃해인사승가대학 1학년 2013년 11월 381호

여름 안거를 마치고 이제는 제법 쌀쌀한 가을 산철을 보내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도 2011년에 이은 대장경세계문화축전 행사로 깊어가는 가을의 단풍과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다. 대장경축전이 사중의 큰 행사인 만큼 우리 학인스님들도 대중의 일원으로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여기저기서 발로 뛰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백련암, 지족암, 희랑대 3곳의 산내암자 안내소임을 맡게 되었다. 삼보사찰 중 하나인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굉장히 큰 기대를 갖고 오실 텐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여러 모로 승려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미승이다 보니 나의 모습이 승가 전체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되었다.

율원과 선원의 샛길을 따라 30여분을 걸어서 지족암에 이르렀다. 지족암은 일타스님께서 주석하신 도량으로 유명하며, 원래 도솔암으로 불리다가 조선말기(1893년)에 환운幻雲 스님께서 사찰을 중건하시면서 도솔(兜率=Tusita)의 음역音譯인 지족으로 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우선 큰법당과 일타 큰스님의 진영에 참배를 하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족암에서 바라보는 가야산의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풍광에 사로잡힌 눈길이 이어 닿은 곳은 일타스님께서 손수 쓰신 대몽각전大夢覺殿이라는 현판이었다. 오른손 열두마디를 연지燃指하신 뒤에 쓰신 글씨라 뭔가 어눌한 듯 하였지만, 그 글씨를 통해 큰스님께서 보여주셨던 수행자의 기상을 되새길 수 있었다.

지족암을 참배하고 일주문을 나서자마자 희랑대가 눈에 들어왔다. 희랑대는 신라말·고려초 화엄학의 거두로서 고려 태조왕건의 국사로 잘 알려진 희랑대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태조왕건과 희랑대사와의 인연으로 가야산 일대가 해인사에 귀속되었다 하니 해인사의 학승으로 필히 참배해야 할 도량이 아닐 수 없다. 희랑대는 현재 나한도량으로 유명하며, 지족암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들떠있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 했다.

지족암과 희랑대를 참배하고 다시 가파른 산길을 30여분 걸어서 백련암에 도착했다. 백련암은 해인사 암자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량으로 근세의 큰스님이신 성철스님께서 주석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대적광전과 성철스님의 진영이 모셔진 고심원에 참배하고 도량을 천천히 거닐었다. 절 마당에 부처님 얼굴모습을 하여 불면석佛面石이라 이름 지어진 거대한 천연바위는 마치 잠 자지 말고不眠 항상 깨어있는 수행자가 되라고 경책하는 듯했다.

세 암자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 시간이 조금 남는 듯 하여 성철스님 사리탑을 참배했다. 사리탑을 참배하고 돌아서는 길, 어느 꼬마가 “부도탑이 클수록 큰 스님인 거예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 웃음으로써 답을 해주었다. 꼬마의 의문에 찬 눈동자를 뒤로 하고 큰절로 올라오는 길, 이번에는 어떤 보살님께서 《칠일칠야 팔만사천배》 현수막을 가르키며 “절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까?”라는 다소 당황스런 질문에 “예, 많이 할수록 좋기는 한데, 일배 일배 정성을 들여서 하시면 더욱 좋습니다.”라고 대답을 해드렸다.

다양한 연령층의 각기 다른 관심사 속에서 나오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나의 공부가 많이 필요함을 세삼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시줏밥으로 사는 나 자신이 신도분들의 공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하고 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암자안내를 다녀오고 나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스스로의 공부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고,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효과적으로 포교하기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정진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안내를 마치고 일주문을 향해 돌아오는 길, 수많은 고승대덕스님들께서 걸어가셨던 이 길을 지금은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앞서간 큰스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학이 되어야겠다는 굳건한 서원으로 회향되고 있었다. 불자님들께 암자를 안내하러 간 길이었지만, 내가 그 분들께 드린 것보다 내 스스로 받은 것이 더 많아서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