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지난여름 전력난을 겪어 관공서에서는 에어컨을 며칠째 틀지 못한 곳이 있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만 해도 노후 배수관 교체를 하기 위해 한 달 반 동안 온수 공급을 받지 못해 순간온수기를 유상 임대했으며, 공사가 있는 날은 하루 종일 단수되기도 해 목욕탕에 물을 받아놓기도 했다. 마치 70년대 생활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정도 불편은 견딜 만하다. 아프리카의 삶에 비하면 말이다.
아프리카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어패가 있지만 최소한 사하라 이남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북의 대부분의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종일 전기가 공급되는 곳이 드물 뿐 아니라 수돗물을 사용하는 곳도 외국인이 이용하거나 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일례로 아프리카 한 중간에 위치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일반 주민들의 생활을 들어보겠다.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중앙아프리카의 수도 방기에서는 전기가 공급되는 시간이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경까지로, 낮 시간에는 하루 종일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 구호 단체들이나 호텔에는 반드시 대형 발전기가 설치돼 있으며, 석유를 사용하는 발전기를 하루 종일 돌리지 못할 때에는 배터리를 사용해 컴퓨터 정도를 작동 시킨다.
길거리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휴대폰 충전소들이 있다. 충전소라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판잣집처럼 작게 지은 곳에 작은 발전기 하나 갖다 놓고 충전을 시켜주면서 장사를 하는 곳들이다.
또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유리병에 기름 같은 게 담겨져 있는 것이 보이는 데, 그건 바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넣는 휘발유이다. 길거리 휘발유 한 병은 100프랑(220원 정도) 이지만 1리터는 680프랑(1,500원) 정도로 꽤 비싼 편이다. 따라서 일반 주민들은 차량을 거의 소지하고 있지 않으며, 버스를 타거나 장거리 여행을 갈 경우에는 ‘부시 택시(bush taxi)’라고 하는, 폐차 일보직전의 차를 개조시켜 만든 승용차나 픽업트럭에 짐과 사람이 모두 올라타고 다닌다.
그럼 가정에서 요리는 어떻게 할까. 아프리카 일반 가정에서는 집안에 부엌이 따로 없고 마당 한 구석에서 벽돌을 쌓아놓고 바닥에 앉아 요리를 한다. 땔감은 가스가 아닌 나무나 석탄을 주로 사용하며, 나무의 경우 4조각에 50프랑(100원), 석탄 작은 한 봉지에 50프랑 (100원) 정도에 산다. 나무는 음식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5인 가족이 하루에 8조각을 사용한다고 한다. 석탄은 급할 때는 한 봉지 당 사지만 보통은 한 자루를 통째로 사며, 가격은 1,000프랑(2,200원) 정도라고 한다. 또한 식용유 한 병은 1,000프랑(2,200원), 비누 한 곽은 500프랑(1,000원) 정도이다.
중앙아프리카에는 길거리 상인들이 길바닥에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경우도 있지만 한명이 여러 가지 잡화를 들고 다니면서 파는 경우도 많다. 특히 삶은 달걀을 파는 청년들이 길거리에 많이 눈에 띄는 데, 이 계란 하나는 25프랑(50원 정도)이며, 커피와 홍차도 길거리에서 한 사람이 파는 데, 잔당 25프랑(50원)이다.
물가가 낮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라 중앙아프리카 일반인 소득도 무척 낮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루에 1달러(1,000원) 정도로 먹고살기 때문에(1인당 국민 총생산이 1년에 446 달러이다) 여태까지 열거한 모든 생필품을 온 가족이 모아서 사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고,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텃밭을 일구거나 농사를 지어 먹을거리를 충당한다. 마니오크라는 작물을 지어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를 물과 함께 섞어 저으면 죽처럼 끈적끈적한 물질이 된다. 그러면 그걸 마치 우리의 밥처럼 먹는 것이다. 마니오크는 직접 재배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살 경우 한 봉지에 100프랑(200원) 이며, 물에 섞으면 꽤 많은 양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5인 가족의 경우 한 끼에 두 봉지(400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도 아프리카처럼 산 적이 있었다. 한국 전쟁 직후 1인 국민 총생산은 짐바브웨보다 낮았다고 한다. 우리도 전기가 안 나오고 물도 우물에서 건져 먹었었다. 내가 성장하던 70년대에도 아파트에서 연탄을 때고 온수가 안 나와 가끔씩 목욕탕에 가면서, 그렇게 살았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