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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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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3년 11월 381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휴일의 광화문. 그저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이순신 장군 동상을 혜문 스님이 언론을 통해 밝힌 사실을 토대로 꼼꼼히 살펴본다. 조선검이 아닌 일본도를 항복한 패장처럼 오른손에 들고 있다. 발목까지 늘어진 중국식 갑옷을 입고 있다. 동상의 좌대가 일본의 해군발상기념비와 똑같다. 얼굴이 표준 영정과 다르다. 폐어선의 엔진과 탄피 같은 고철과 구리 등을 녹여 만들고 그것에 청동색 페인트칠을 했다. 참 어이없이 슬픈 표상이 눈앞에 있다. 외국인들이 몰려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참으로 부끄러워 외면하고픈 장면이 눈앞에 있다. 그러나 혜문 스님은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망상은 무형의 칼로 베어야지요. 누군가 가짜 이순신 동상과 같은 삿된 것을 싹둑 잘라 넘어뜨릴 때 세상은 변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됨을 깨서 올바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생은 모호한 의식 속에서 산다. 모호한 의식이라는 종기를 터트리지 않으면 곪아 썩어 들어가서 결국 온몸으로 번진다. 그 종기를 터트려주는 것이 바로 불교라는 말씀이다. 대부분의 중생이 이해하는 불교는 \'자비\'에만 편중되어 있으나, 베고 잘라내는 것이야말로 금강경의 사상이다.
\"금강金剛이란 매우 단단하다는 뜻이에요. 금강검은 엄격한 잣대로 번뇌, 망상, 어리석음 같은 것을 자르는 칼이지요. 불법에는 취모검吹毛劒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어요. 선종이란 부처님이 쓰시던 칼을 찾는 것입니다.\"
혜문 스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불교를 말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중생의 솜털까지 잘라내는 금강검을 꺼내 보이시는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은 눈에 보이는 것을 쫓고 그것을 쫓았을 때에야 그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으니 말이다.
스님이 명함을 주신다. 금강초롱꽃이 그려져 있다. 그 옆엔 \'일본에 끌려가 하나부사야란 이름으로 불리워진 금강초롱의 슬픈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 종인 금강초롱은 한국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일본인들이 이 상징의 꽃을 하나부사야란 남자에게 헌정하면서 이 꽃의 이름은 하나부사야가 되었고 그 이름으로 세계식물학회에 등재되었다.
\"식물학자들은 학명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하고, 그것도 우리의 역사인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어요. 암 종양도 자기 몸의 일부라고 달고 있는 사람도 있나요.\"
명함을 뒤집어 보니 스님의 법명 위에는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라고 적혀 있다.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 진실의 힘이죠. 이순신 장군 동상도 언젠가는 부서질 것이고 금강초롱의 이름도 되찾게 될 거예요. 시간의 문제만 남아 있어요. 인간 세상의 역사는, 어떤 사람이 진실을 대면하고서 내어 놓은 길을 따라 토끼도 노루도 사람도 다니는 거예요. 그 길을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따르면 결국엔 큰 길이 나고 그 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죠. 저는 그런 이야기를 믿어요.\"
지난 달에 미국의 한 박물관에 있던 문정왕후의 어보가 돌아왔다. 2006년엔 일본 도쿄대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돌아왔고 2010년에는 일본의 왕궁에 소장돼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돌아왔다. 이것은 모두 \'혼이 담긴 계란\'이 이뤄낸 성과다.
\"한국의 한 승려가 조선의 의궤를 돌려달라고 일본 천황이 살고 있는 에도성에 70번을 갔더니 돌려준 거예요. 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죠. 그건 진실의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불교사상을 가지고 세상에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진실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실제로 보여주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사실은 잃어버린 문화재를 한 점 한 점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불교라는 교리 체계가 형상화해내는 가치다. 스님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를 찾는 것은 보물을 찾는다는 것이죠. 지고의 보물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입니다. 저는 환지본처還至本處, 즉 \'제자리 찾기\' 라는 뜻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방법으로 문화재라는 보물을 찾고 있어요. 이것은 문화재 찾기를 넘어서서 마음속에 있는 지고의 보물을 찾는 것이지요.\"
혜문 스님은 전 국민이 열광하는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운동을 통해 불교의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이 쓰시는 그 \'진실의 칼\'은 대체 무엇일까?
\"진실이란 건 사람을 참 불편하게 해요. 직시하기 어렵지만 그것을 직시하는 게 불교잖아요. 진실을 보고 진실을 구현하는 칼이지요.\"
증사작반蒸沙作飯,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래알은 밥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니 모래인지 쌀인지도 모른 체 우리는 노력만 한다. 스스로에게 엄중하게 묻고 확인해서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쌀이다 싶을 때에 밥을 짓고 그때에 진실의 힘을 쓰면 된다는 말씀이다. 허나 그 진실은 공부를 하면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사용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란다.
\"종교는 진검과 같은 거예요. 아무리 검도를 잘 한다고 해도 아무나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지푸라기도 벨 수 없는 죽도로 어떻게 이 세상을 제도하겠어요. 칼을 배울 수 있는 자는 많지만 뽑을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아요. 그것은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 용기는 진실을 알고 신념이 생겼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혜문 스님은 다른 사람 눈엔 보이지 않는 그 \'진실을 칼\'을 차고 오늘도 거리를 활보한다. 그 거침없는 행보는 문화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 많은 곳에 닿는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저 문화재 찾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진실대로 제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불교라고. 그것이 바로 승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세상은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잘못된 표상은 누군가가 칼을 꺼내서 잘라줘야 해요. 그래야만 진실을 볼 수 있어요.\"
스님이 잘라낸 대표적인 잘못된 표상은 슈베르트의 \'숭어\'다. \'송어\'의 오역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왔다. 스님은 그것이 교과서에 \'송어\'로 표기되도록 했다. \'강원도 출토 유물\'이 논산에서 출토된 사실을 입증하여 국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도산서원 뒤 에 대통령이 심었다는 금송은 이미 40년 전에 죽고 다른 나무라는 것을 밝히며 그 나무를 베기로 했다. 어쩌면 작은 부분들이라 할 지 모르지만 누군가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그렇게 거짓된 표상으로 남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그것을 끝끝내 해냈다. 거기엔 스님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제자리를 찾아 줄 것들이 많다.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도 찾아야 하고 도쿄박물관에 있는 조선제왕의 투구와 갑옷도 환수해야 하고 금강초롱꽃의 이름도 되찾아야 한다. 그런 스님의 행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표상이 될 것이기에.
\"저는 불교가 범부들에게 진짜와 가짜의 구별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엽지제黃葉止啼, 낙엽을 금이라고 속여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에요.\"
스님은 2013년의 불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말씀하신다. 고려시대에 왕사나 국사가 필요했던 것처럼 이 세계의 지도이념이 되어야 할 것이란다.
\"자비를 베풀며 착하게 살라는 것도 좋지만, 진짜 불교의 가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며 어디로 가야할 지 가르쳐 줄 때 구현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불교사상가가 나와서 2013년의 대한민국을 끌고 가야 되겠죠. 그러면 진짜 좋은 세상이 열리지 않겠어요.\"
혜문 스님은 올해 \'조선제일검\'이라 새긴 칼을 주조하기로 했다. 해마다 좋은 사상을 가진 검객을 선정해서 \'진실의 칼\'을 전수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활인검活人劍이지요.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모두가 집단 무의식에 빠져 있어서 알지 못하는 망념을 베는 거예요. 더 자라면 세상의 부당한 권력을 베는 칼이 되겠지요. 그것이 \'조선제일검\'입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권력에 겁을 먹은 신하들은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뜻에 따라 사슴을 말이라 하였다. 혜문 스님은 사슴을 사슴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렇게 혜문 스님의 활인검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분명히 갖고 있으나 어느 순간 잃어버렸거나 잊었던 것을 찾을 것이다. 언뜻 돌아서는 혜문 스님에게서 무사의 모습을 본 것만 같다. 본모습을 숨긴 무림의 고수가 휘파람을 불며 서울 시내를 활보한다. 그러다가 바람보다 빠르게 칼을 뽑는다. 이 시대의 망념이 싹둑 잘려나간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최고의 검법은 베고자 하는 대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계산해서 주저 없이 빠르게 베는 것입니다.\"
혜문 스님이 그 거리를 계산하기까지는 방대한 자료와 책을 보아야 했고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진실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게 진실을 대면하고 입증했을 땐 신념을 갖고서 재빠르게 베어냈다. 그랬을 때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칼은 이 시대를 살리는 \'진실의 칼\'이 되었다. 이것은 풍문으로 들어 다 알지만 누구도 함부로 누설하지 않는 한 무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