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세계문화축전을 맞이하여 1200년 만에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된 마애불.
그 마애불의 안내소임을 위해 산을 오르던 중 나도 모르게 서산 사의 《선가귀감》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만큼 가야산의 가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편안했다. 곳곳에 바위와 계곡이 이어지는 산길의 경사가 가팔라서 숨이 차기는 했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초목과 야생화 그리고 시원한 계곡물소리는 가야산의 운치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마애불 탐방로는 스님들께서 이용하시는 길과는 조금 달랐다. 스님들의 포행로가 장경판전 뒤 수미정상탑을 경유하는 데 반해, 이번에 개방된 탐방로는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는 ‘화장원’을 지나치는 것이었다. 강원의 학인스님들이 강의를 받기 위해 오르곤 했던 고즈넉한 이 길이 간만에 마애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불자님들로 붐볐다. 지나치는 불자님들마다 합장반배로써 예를 갖춰주시니 갓 출가하여 수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해인사는 배가 바다를 지나가는 행주형국行舟形局의 가람구조를 하고 있다. ‘물 위의 수도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몽생미셸수도원(Abbey of Mont Saint Michel)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그런 해인사에서 마애불은 ‘해인사’라는 반야선般若船을 이끌고 고해苦海를 헤쳐 나가는 선장과 같은 역할이다. 마애불은 그동안 그러한 상징적인 의미로 인해 스님들의 기도처로만 사용되었을 뿐 일반인들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었다. 천년의 신비 속에 가려졌던 마애부처님이 드디어 일반에 공개된다고 하니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애부처님을 친견하는 데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파른 산길을 1시간 동안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인사까지 힘들게 와서 다시 1시간을 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니, 체력이 부족한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에게는 여간 고역苦役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분들의 찌그러진 얼굴과는 상반되게, 산을 내려가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마애불을 뵈러가는 힘에 겨운 얼굴과 마애불을 뵙고 오는 기쁨에 찬 얼굴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마애불의 웅장한 모습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 마애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나서 근무를 시작했다. 우선 기도접수하시는 보살님의 일도 거들고, 주변의 쓰레기도 줍고, 신도님들의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도 해드리다 보니 나에게 주어진 근무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가야산의 가을풍광과 절묘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애부처님을 두고 발길을 돌리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임을 교대하러 오신 윗반스님께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되겠냐고 부탁드렸으나 내려가 쉬라며 등을 떠미셨다.
기도접수를 받는 보살님의 부탁으로 불자님들께서 올렸던 공양미를 지고 험한 비탈길을 내려왔다. 공양미를 가득 채운 걸망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원주실에 도착하니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다 나은 줄 알고 있었던 오른쪽 무릎은 다시금 시큰거렸다. 그러나 마음은 더 없이 청량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마애불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그 높은 산중에 어떻게 마애불이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마애불은 통일신라말기에 왕조가 부패하고 지방의 호족들이 난립하자 오갈 데가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애불이 해발 1000m의 고지대에 조성되었으니 포악한 위정자의 힘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혹독한 정치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고사가 떠올랐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국민의 삶을 결정한다. 정치가 바로서면 국민이 편안하고, 정치가 흔들리면 국민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도자(leader)의 말과 행동, 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follower)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출가자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지도자라고 할 것이요, 불자님들에게 있어 스님들은 귀의해야 할 대상이다. 위정자가 타락하면 힘없는 백성이 갈 데가 없듯, 출가수행자가 타락하면 중생들이 기댈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불자들이 믿고 귀의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출가수행자가 되어라.”
마애부처님은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1200여년을 그렇게 깊은 산 속에 계셨던 것은 아닐까?
청량하고 상쾌했던 마음 안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