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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傍觀과 집착執着-천년고찰 해인사 마애불을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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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정희 2013년 11월 381호

큰 귀를 열어 소리를 듣되 소음에 집착하지 않고, 눈을 감아 못 본 척하되 허상을 방관치 않으며 가야산의 해인사와 더불어 천년을 함께 하였으니 그 어떤 생生의 모든 희로애락을 이해하지 못하랴!
주야장천 활력이 넘치는 분주한 서울에도 한산함을 느낄 수 있는 새벽 다섯 시,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 가산동을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아담한 풍경을 품은 휴게소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천 년 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해인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사뭇 설레는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여 오전 9시 지명만으로도 신라시대가 떠오르는 가야면에 도착하였다. 이어 우리 일행은 해인사를 향해 길을 물어 발길을 잡고 10여분 만에 산사의 향기조차 반듯함이 느껴지는 삼보사찰 중 하나라는 법보사찰 해인사에 도착하였다. 다시 해발 1000m고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다 잠시 장비를 내려놓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냥 완만한 듯 했는데 돌아보니 제법 가파른 산길이다. 인생사 매 마찬가지이련만 쉬고 싶은 순간순간은 어찌 그리 무겁고 가파르다고만 느끼며 살아왔을까? 한시간쯤 다시 오르자 제법 가까이서 들리는 불경소리와 약간의 급경사가 나의 심장을 더욱 빨리 뛰게 한다.
드디어 눈앞에 들어온 것은 해인사 마애불, 보물 제222호로 정식이름은‘합천 치인리 마애
여래입상’이라지만 어쩐지 그냥 해인사 마애불이 더 친근하다.
독립된 자연석을 이용하여 돋을새김을 한 1000년의 신비 해인사 마애불이다. 나의 시선에 들어온 마애불의 첫모습은 옆모습이다. 규모가 높이 7.5M 너비가 3.1M이듯 국내 최대크기라는 사실답게 정면에서 보니 더욱 당당하고 균형잡힌 풍채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도착한 지금 시간은 기도시간이다. 조용히 장비를 내려놓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고개 들어 마애불을 바라보니 불자들을 굽어보는 표정은 여전히 웃으시는 듯 타이르는 듯 근
엄하면서도 어찌 보면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기도시간이 끝난 후 자세히 살펴보니 마애불은 하나의 바위를 둘로 갈라놓은 듯 마애불의 등쪽면과 뒤쪽의 암석의 각도가 직각으로 일치하고 면의 느낌이 유사하여, 동일 암석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주변의 많은 등산객과 불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절절한 애달픈 사연을 품은 듯 무척이나 진지하여 숙연한 감정을 갖게 한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중생들의 사연을 귀 기울여 들으시다 몸소 머리에 쓰고 있던 갓을 어느 날발 앞에 내려놓으시며 그릇된 허욕을 내려놓으라 몸소 행하여 보였건만, 자신의 저린 것은 그리 안타까워 내려놓지 못하고 집착하면서도, 타인의 아린 것에 대해서는 내 일이 아니라며 못 본 척 방관하고 있다고 갓이 내려진 이유를 짐작하라 타이르는 듯 하다(마애불의 갓은 1915년 사진에까지 존재하며, 1970년대 발아래 내려놓으신 것으로 전해진다).
플랜트엔지니어링의 계장설계를 업으로 하는 20여년의 업력을 가진 회사의 EO이며,경주출
신인 나는 여러 문화재 속에서 나고 자라 문화재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던 중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해인사 팔만대장경 세계문화축전과 1200년 만에 마애불을 일반공개한다는 기사와 마애불의 사진을 접하는 순간 축전참가의 강한 의지를 느끼며,현재 우리 회사의 가용한 자원인 3D 레이저 스캐너를 통해 마애불을 스캔(촬영)한다면 의미가 깊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해인사스님과 상의하여 2013년 9월 27일 3D 레이저 스캔을 결정하게 되었다. 3D(3차원) 레이저 스캔(촬영)이란 레이저를 이용하여 형상을 입체적으로 기록하는 기술로써 여러 분야(문화재 복원, 대형 플랜트 공사, 모의 공사)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숭례문 3D 스캔 자료가 화재 이후 복원에 도움된 바 있다. 몸으로 행하는 스캔작업이었지만 마음으로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얻었다. 촬영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하산하여 장비를 운반하여 주신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조금 늦은 저녁시간에 우리 일행은 또 옹기를 마주하고 소소하고 정감어린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조금 늦은 까닭일까? 차량이 없어 한산하였고, 한산한 흐름을 타
고 차는 잘도 달린다. 조금 늦은 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구나!
우리 속세의 인생도 조금 늦더라도 이만큼만 순탄하게 달렸으면….
달리는 차 속에서 눈을 감고 마애불을 다시 한번 떠올리다 문득 사야 하는 가방이 있음을 알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가방을 사주지 못한 아내와 공부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 부족하여 항상 미안하고, 해인사에 오던 날 새벽에 묵묵히 자기 업무를 완수하려 밤샘 근무한 직원들과 있는 듯 없는 듯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직원들의 얼굴이 새삼 고맙게 떠오른다.
앞으로 모든 일에‘조금은 덜 집착하고 조금만 더 방관치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다 고개
를 들어보니 어느덧 새벽에 들렀던 휴게소를 지나고 있다. 가족과 일터가 있는 서울이 다가옴을 느낀다. 이렇게 또다른 하나의 인연이 내 인생의 가을에 강하게 접목되는 순간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촬영에 도움을 주신 종현 스님께 깊이 감사하고 불교에 귀의하신 모든 불자들과
해인사스님들의 성불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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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님은
1961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정유·석유화학 플랜트의 제어계측 전문 엔지니어링회사인 윌프랜트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근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