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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인가, 고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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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3년 07월 377호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주제가 표현의 자유냐, 풍기 문란이냐는 내용으로 변용되어 법정에 오르기도 한다. 법원의 판례는 일정 기간 사회적 기준이 되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예술과 외설을 판가름하는 판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다수의 법 감정에 호응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고발과 폭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주제 또한 법정에 자주 오른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떡검 X 파일 사건’은 이런 사례의 하나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관여’ 논란도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삼성 떡검 사건은 노회찬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검사의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초대형 쓰나미가 되었다. 이름이 거론된 검사들이 노 의원을 고소하는 사건으로 번졌다.

지난 2월 대법원은 노 의원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실명을 공개한 공익에 비해 검사 개인의 사생활 정도가 더 크다.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함으로써 국회를 벗어나 모든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면책특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노원병 지역구 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일명 떡값을 받은 검사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 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검사는 공직의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공직자들을 일벌백계로 엄중히 다스려 공직기강을 확립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떡값 검사\'로 지목되었던 인사들을 공소시효와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전원 무혐의 처분했고,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가 있던 이건희 삼성회장을 서면조사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등 부실수사로 사건의 실체를 덮어버렸습니다.

2010년 미국의 외교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도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은 위키리크스 운영자인 줄리안 어샌지에게 간첩죄를 적용했는데, 이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이듬해 1월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위키리크스, 혁명의 언론 혹은 국가의 위험’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어샌지의 폭로가 미국의 국가안전에 위협을 준 것인지, 시민권력과 국가권력 간의 충돌인가, 이런 쟁점들이 제기됐다.
토론회에서 이택광 교수는 과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내부고발 사건을 예로 들며 “자기 조직에 헌신하는 것이 공익이라 인식하는 상황”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우리 모두 저널리스트가 되어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교수도 “정부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중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이 민주주의의 결정적 요소”라고 강조했다.(PD저널,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언론행위다”, 2011. 1. 6.)

어샌지의 폭로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도 비판과 옹호로 갈렸다. 폭스뉴스는 어샌지의 행위를 “미국의 국익에 위배됐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지지했다.
최근엔 스노든 사건이 전 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스노든은 최근 홍콩에서 영국의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들이 민간인 전화통화ㆍ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고 폭로했다. 스노든 사건은 미국과 중국의 외교 마찰로 번졌다. 미국은 스노든을 간첩혐의로 홍콩당국에 신병을 요청했다. 미국 내에서는 스노든 사면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번 사태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당시의 `워터게이트\' 사태에 빗대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도 올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폭로 또는 고발에 대해 비판 또는 옹호하는 일이 교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장주
스님이 충격적인 주장을 내놨다. 장주 스님은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냈다. 얼마 전까지는 불국사 말사인 오어사 주지 소임도 살았다. 장주 스님의 주장 내용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스님의 범계행위였다. 장주 스님은 선거법 개정 등 종단의 개혁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계속 폭로하겠다고 밝혔다. 장주 스님의 폭로를 한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다른 한 언론은 ‘앞뒤 안 가린 폭로’라고 비판했다.

10월로 예정된 총무원장선거를 앞두고 폭로 또는 고발이 빈번할 가능성이 높다. 총무원장선거가 있을 때마다 나타난 현상이다. 4년 전 총무원장선거 때는 당시 총무원장후보 자승 스님의 승적 정정 문제를 제기하는 무기명 투서가 나돌았다. 이 사건은 투서 발송인을 추적해 징계에 회부했고, 발송인이 이에 반발하면서 고발과 징계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 장주 스님의 폭로를 보며 선거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다른 한편에서는 폭로의 내용에 주목해, 조사해서 사실로 확인되면 응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폭로자의 주장에 담긴 내용이 사실이라면, 특히 종단 고위소임자의 범계행위를 드러내어 소임을 박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폭로 혹은 고발은 대개 폭로자의 처벌로 이어졌다. 피폭로자가 종단의 주요소임에 있으므로 폭로자를 압박하고 처벌하는 여러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폭로를 앞뒤 따져볼 것도 없이 부도덕하다고 치부할 필요는 없다. 고발행위로도 볼 수 있다. 폭로를 부정적인 상태의 것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면, 폭로와 고발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지가 차이를 드러내는 기준이 될 것이다. 드러냄으로써 특정인에게는 불이익이 될지라도 종단에 이익이 되는가이다. 폭로자 또는 고발자가 익명이 아니라 이름을 분명히 밝혀야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폭로(고발) 행위자의 지위도 고려해야 한다. 종단의 관계기관에 호소할 수 있는 지위와 처지에 있다면, 당연히 정해진 절차에 우선 호소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단의 해당 기관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느냐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 폭로 내용을 증빙할 수 있거나 범계행위의 개연성이 뚜렷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에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한 정도 상응해야 폭로가 아닌 고발로 취급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폭로와 고발은 언론에게는 하나의 사건이며 뉴스거리다. 그러나 언론 스스로 위에서 나열한 것과 같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놓고 미국의 언론들이 비판과 지지가 동시에 나타나듯이 교계언론에서도 입장을 달리 할 수 있다. 다만, 언론이 폭로(고발)을 대하는 기준이 분명해야 하며, 그 기준이 무엇인지 밝혀 독자들과도 호응해야 할 것이다. 폭로가 아닌 고발, 즉 폭로의 윤리가 정리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언론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