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의 갑작스런 죽음(기원전 323)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은 톨레미Ptolemy, 셀류시드Seleucid, 마케도니아Macedonia 왕국으로 삼분되고 서로 대립하여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이 서서히 그 막을 내리게 된다. 다행히 제국의 문화적 기치였던 헬레니즘은 제국의 붕괴 즈음에 변방 이탈리아 반도에서 천천히 미래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로마의 정치이념으로 흡착되었고, 후에 로마가 또 다른 제국으로 성장해가면서 헤브라이즘Hebraism을 공식적으로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용인하게 될 때(밀라노칙령, 313)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서양 고대사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알렉산더로부터 기독 로마제국이 등장하게 되는 반천 년半千年 동안, 헬레니즘은 동서방 문명의 충돌과 융화를 통한 다양하면서도 고양된 문화형식을 창출해 내었다. 경제적 교류는 물론이고 그리스의 민주정과 동방의 군주정의 상호차용에 더불어 수학과 자연과학(예컨대 Euclid, Archimedes), 건축과 미술(Acropolis 신전, ‘Venus de Milo’, Gandhara 불상) 등 문화의 비약이 이루어졌다. 그중에 철학의 변화도 진행되었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 그리스철학은 그 역할을 다하고 무대 뒤로 물러나면서, 플라톤에 기초한 교부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스콜라철학으로 대변되는 ‘중세철학’이라는 다음 막이 오르기 전까지 견유주의Cynicism, 스토아학파Stoicism, 에피쿠로스철학Epicureanism, 그리고 회의론Skepticism 등이 막간극幕間劇을 연출하고 있었다.
막간극의 첫 주인공(Cynicism)은 민망하게도 ‘견유犬儒’라 일컬어지는 일군의 혐세嫌世주의자들로서 냉소와 조소로 사회적 관습과 통념을 전반적으로 부정하며, 문명부정적인 사고와 행태—즉 개와 같은 생활방식—를 시위하며, 지극히 검박한 생활과 견고한 욕망억제가 세론世論과 습속이 될 수 있도록 지족知足한 삶의 창달을 이끌었다. 전설이 된 견유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기원전 412-323)는 알렉산더의 아테네 순방 시 그의 후의를 정중히 거절한 채 오직 소원은 “빛을 가리지 말아주시오”라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플라톤의 아카데미 교실에서 학인들이 ‘인간은 깃털 없는featherless 두 발로 걷는biped 동물이다’는 정의를 밖에서 듣고 깃털을 모두 뽑은 닭 한 마리를 교실 안으로 집어던져 넣었다는 예지도 보여주었고, 대낮에 등불을 밝히고 “정직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시사적 교훈을 실천하였으며, 거의 나체로 거리를 뒹굴며 동가식서가숙하는 반인위적 걸행乞行으로 자연주의와 자유주의 철학을 체험으로 제시하였다. 견유학파의 이념은 나중에 스토아학파의 정신적 뿌리가 되고 중세 금욕주의 수도사들의 사상적 원천이 된다. 이들은, 한편으로 소크라테스를 계승하여,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의지의 우월성을 강조하였으며 권력과 명예를 쫓는 세속사에 매이지 않는 자유를 존중하였고 부질없는 쾌락을 멀리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비록 ‘개처럼’ 보였을지라도,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의 특징이며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실천지식인 혹은 진정한 지성인이었던 셈이다. 걸승 모습의 고승이 많았다는 옛 어른들의 얘기가 돋보이는 순간이며, 무소유의 힘의 실체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두 번째 막간극은 스토아학파(Stoicism)로서 극기와 금욕을 바탕으로 하는 엄숙주의라 할 수 있다. Cynicism이 실천적 Stoicism이라면 Stoicism은 이론적 혹은 교양 있는 Cynicism이라 할 수 있다. 배경이론으로 내세운 이법理法(Logos)은 만물에 편재된 자연과 우주의 내재적 운용법칙이며, 특히 인간 이성의 구성특질로써 우리의 이성(아我)은 단순히 로고스와 같은 인식론적 속성을 가지는 것으로서 뿐만 아니라 로고스의 한 분유分有이며 세계이성(이법, 범梵)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하는 존재론적 고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즉 이성적 존재는, 소우주로서 범아일여梵我一如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적 존재이며 또한 범아일여를 추구하는 실천현장인 셈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떠나 이법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래장인 것이다. 로고스의 분유인 인간이성의 고유기능은, 따라서, 우리의 삶을 우주적 질서에 부합되게 하고 역행하지 않으며 “자연과 마찬가지로” 무사무편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파테이아apatheia(‘un-passion’)라 부르는 부동심不動心을 가져야하며, 충동과 사사로움으로부터 해방된 평정심을 가져야 인간 본연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아파테이아에 진정한 행복의 경지가 있고, 그 경지에 대한 통찰은 로고스로 충만한 현자賢者sophos만이 도달할 수 있으므로, 학문하는 자세—특히 논리학(판단력), 물리학(‘이법’의 이해), 윤리학(처신술)—가 그 근본이 된다. 그런 이유로 로마의 왕(예컨대 Marcus Aurelius)과 많은 학자(Seneca)들도 스스로 Stoic임을 자처하였다. 특이사항은, 스토아학파는 유물론적 일원론을 신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원론에서는 유물이냐 유심이냐는 의미 없는 구분일 뿐으로, 우주 만물은 동질이며 따라서 영겁에 의한 근원적 환원과 순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일 것이다.
세 번째 막간극은 기린아 에피쿠로소(Epicurus, 기원전 341-270)가 내세운 철학으로, 인간은 보편원리로서의 로고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자연 속의 고립적 존재로서 쾌락과 고통을 그 본질로 품은 유정有情(sentient being)이며 이성적 사고보다 쾌-불쾌의 감성을 가장 두드러진 지각知覺 활동으로 삼는 존재라 한다. 더 나아가, 인간 행동과 사회 실천의 기준이 되는 선과 악은 쾌불쾌 혹은 고락의 상대적 선호選好에 불과하지만 그 선택이 궁극적인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고 역설하였다. 사실(fact: pleasure-pain)에 의거한 당위(oughtness: right-wrong)를 설명함으로써,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으로 여기는 근대 공리주의(Bentham, J. S. Mill)의 원형을 낳고 있었던 셈이다. 행동에 있어서, 선악이 동기動機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호불호의 심리적 사실이 우선인 자연상태의 인간본성을 그려 보인 것이다. 그런 탓으로 때로 무분별한 쾌락주의자로 오해되는 에피쿠로소의 본의는 쾌-불쾌의 형평equilibrium을 잃은 상태를 피하고—즉 어느 쪽이든 곧 형평을 잃고 고통을 수반할 것이므로, 아타락시아ataraxia라 불리는 마음의 중도적 평온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권고한다. 권고한 바의 내용을 옮겨보면 거의 ‘依ataraxia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에 흡사한 사유를 보여준다. 에피쿠로스가 정녕코 소망했던 것은 고통의 부재, 죽음의 공포와 신의 응보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알려지지 말고 살아라! Live unknown!”고 지인들에게 충고할 만큼 적적함이었다.
에피쿠로소는 자신이 소망한 것들에 대한 답으로 신의 구원의 불요不要, 죽음에 대한 공포의 허상虛像에 관해 아래처럼 논증한다. 먼저,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닥쳐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과 함께 모든 인식도 사라진다. 고통도 쾌락도 없다.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라 느낄게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 후에 우리의 인식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생겨난다.’ 에피쿠로소는 비록 영혼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의 영혼은 데모크리투스의 일원론적 원자론에서 기인한 물질적 영혼—즉 특별한 원자로 이루어진 기능—이었고 죽음과 함께 흩어져버리는 멸절의 영혼이었다. 다음으로, 인간구원에 관해 에피쿠로소는 ‘신은 전능하며omnipotent 선량한데benevolent 왜 여전히 악evil도 존재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깊이 사색한 후, 주장한 바는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량하지 않다. 신은 악을 없앨 능력도 있고 없애려고도 하는가? 그렇다면 악은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 신은 악을 없앨 능력도 없고 없애려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구세주)이라 부르나?’라고 신의 무용無用을 설파하였다. 에피쿠로소가 생각하는 신은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무차별적이어서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는 일은 결코 없다. 되려, 인간은 ‘Ataraxia’를 추구함으로써 신이 되어 갈 터이다.
마지막 막간극으로는 Pyrrohonism이라 부르는 그리스 회의주의skepticism를 무대에 올렸다. 피론(Pyrrhon, 기원전 360-270)은 서른에 알렉산더의 동정東征에 참여하여 인도를 견학하게 되고, 고대 나체naked수도승을 통해 금욕법과 현인들의 관상법觀想法(Yoga meditation)을 터득하고 돌아왔다. 신처럼 혼의 안정을 갖춘 이로 숭앙되던 그의 철학적 입장은 제법무상이며 우리의 인식은 그저 상대적일 뿐으로 참과 거짓에 대한 ‘판단중지’를 요청하는 회의론과 유아론을 진제眞諦로서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