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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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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3년 07월 377호

나의 사진인생에 있어 소위 ‘파파라치’ 사진을 찍은 적이 딱 세 번 있었는데, 12년 전 뉴욕에서 프리랜서 생활할 때, 10년 전 로스앤젤레스 (LA) 타임스라는 일간지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할 때, 그리고 약 8년 전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을 때이다.
파파라치 사진이라고 하면 “연예인을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파파라치 사진은 유명인을 소재로 한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어로 ‘파파라치’는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라 돌체 비타>라는 영화에서 최초로 사용된 단어로, 파파라치의 단수인 ‘파파라초’라고 불리는 사진가가 영화에 등장하면서 그의 이름이 나중에 대명사처럼 굳어진 것이다. 원래 파파라초의 뜻은 <이오니아 해변에서>라는 문학작품의 한 캐릭터 이름이지만, 감독이 이 이름을 따서 사진가의 이름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 이후 ‘파파라치’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가 등 유명인들을 길거리에서 포착, 매체에 판매하고 출판하는 프리랜서들을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나의 첫 파파라치 경험은 뉴욕거리 한복판에서 였다. 그 당시 뉴욕한국일보를 그만두고 <AP>라고 하는 통신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는 디지털 카메라도 없었거니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놓은 니콘 N90이라고 하는 가벼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였고, 촌스럽게도 사진기자들이 입는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입은 채였다.
맨해튼 23가를 걷고 있을 때였을 까, 갑자기 내 눈 앞에서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벤저민 브랫이 검은 리무진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 둘은 손을 잡고 유유히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주위에 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들고 그 둘이 걷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순간 벤저민 브랫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뭐라고 욕을 하면서 내 카메라를 손으로 밀치는 것 이었다! 그 와중에도 줄리아 로버츠는 벤저민 브랫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기도 했고, 어안이 벙벙해 (사실 유명인을 봤다는 사실에 더 두근거려서) 길거리에 가만히 서있었고, 그 둘은 그 길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AP 사무실에 가서 필름을 현상하면서 자리에서 기다리던 중 AP 에디터에게 “오늘 줄리아 로버츠랑 벤저민 브랫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정말? 너 혹시 에이전시 있니?”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에이전시가 뭐예요?”라고 물어보았고, 그녀는 “에이전시가 없으면 할 수 없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벤저민 브랫이 나를 가격(?)하는 사진은 세상의 빛을 전혀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 필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녀가 말한 ‘에이전시’는 사진가와 매체를 연결하는 ‘사진공급사’였으며, 만약 그때 에이전시에 대해 알았다면 사진을 팔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파파라치 경험은 LA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였다. 유명인을 길거리에서 찍는 것도 파파라치 사진이지만, 소위 ‘레드카펫’이라고 하는, 사전에 기획된 연예 행사를 찍는 것도 파파라치라고 한다. 나는 그 때 케이트 허드슨과 나오미 왓츠 주연의 <르 디보스> 영화 프리미어에 참석해 배우들을 찍는 임무를 맡았다.
그날 밤 LA 시내에서 산타 모니카까지 얼마나 차가 막혔던지, 나는 예정된 레드 카펫 행사보다 30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가니 벌써 파파라치들이 2중 3중으로 모여 포토라인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도착하니 홍보담당이 뛰어오면서 나에게 물었다. “지금 너무 늦어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래서 나는 “LA 타임스에서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젠장, 이거 큰일 났군”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할리우드에서 LA 타임스가 꽤 영향력이 있었나보다. 나는 미리 진을 치고 서있었던 파파라치들 사이를 그 홍보담당과 뚫고 들어가는 저력을 발휘했으며, 미리 와 있던 연예담당 기자 옆에 서 있게 됐다. 이윽고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어쨌든 LA 타임스라는 이름값 덕분에 주연 배우들의 입장을 찍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뒤 청룡 영화제 레드 카펫을 찍은 경우였다. 이번에는 아무런 매체의 의뢰도 받지 않고 그냥 나 혼자 갔었다. 국립극장 입구에 다다르니 LA 때처럼 수십 명의 사진기자들과 팬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여러 한류 스타들을 찍기는 했지만 그 사진이 다른 매체에 실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이 더 좋아서였을 것이다.
이제 파파라치 사진을 안 찍은 지도 거의 10년이 됐다. 앞으로 언제 또 찍게 될지 모르겠지만, 유명인들은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유명해져서 부와 영화를 누리게 되지만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사생활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세상은 요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