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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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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3년 07월 377호

2013년 두 번째로 안나푸르나를 찾게 된 것은 아마도 4년 전에 첫 번째로 이곳에서 트레킹을 했을 때의 약속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 때 한국 친구들 5명과 베이스캠프까지의 산행을 마치고 난 뒤 산을 바라보며 내 언젠가 다시금 너를 찾으리라, 라는 다짐을 조용히 맘 한켠에 새겨두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엔 두 번째 만남이 언제가 될 줄은 몰랐지만 이번 세계 만행의 경로에 다시금 네팔이 들어서게 되면서, 안나푸르나는 제가 만행하던 동남아의 열대로까지 뻗어와 그 서늘하지만 화창했던 기억을 되살려주었습니다. 카트만두에서 어렵사리 인도 비자를 얻게 된 다음에 도착한 안나푸르나의 전초기지이자 호반도시인 포카라는 여전한 모습으로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를 오르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팀스와 퍼밋을 준비하는 며칠간 여독을 풀며 한국식당을 들러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으며 차분히 트레킹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트레킹이 주말의 취미생활과 웰비잉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정착된 지금의 한국에서 이미 수많은 한국인들이 포카라로 들어와 그들만의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카트만두에서 만난 종원이라는 친구와 그가 알고 있는 동식씨와 함께 트레킹을 하기로 결의하고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트레킹의 시작점인 비렌딴띠로 함께 향했습니다. 안나푸르나에서 트레킹의 적기는 우기가 끝난 10월 말부터 이듬해의 겨울까지입니다. 지난번에 트레킹은 10월 중순에 한 터라 낮 시간에도 장마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라도 하는 듯 언뜻언뜻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4월의 트레킹에는 비가 없기는 하지만 히말라야 전역에 희미하게 드리워진 안개 때문에 10월의 그 새파란 하늘이 다소 그립기도 했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형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7~9일 정도가 소요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의 기본코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거나 트레킹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푼힐 전망대까지의 4일 코스가 있고,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두 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코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트레킹의 가장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운딩이 있는데 이는 안나푸르나 주변의 산맥을 최고 해발 5500미터의 고지까지 돌며 두발로 올라야 하는 가장 힘겨운 코스입니다. 라운딩의 경로에 따라서 그리고 지프를 타는 수준에 따라서 열흘 혹은 보름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이번에 저는 라운딩에 한껏 의지가 실리기도 했지만 지난번 카일라스 산을 순례하며 오른 5600미터 고지에서의 겪은 고산병과의 사투가 선연히 기억되는 터라 이번 기회는 접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저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만 다녀오는 비교적 단순한 일정을 소화했지만 이번에는 푼힐 전망대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 섭렵하는 열흘간의 트레킹을 마음먹었습니다.
봄의 안나푸르나는 오전엔 맑고 오후에는 흐리다가 어쩌다 비를 흩뿌리고 저녁에는 비 때문에 싸늘한 기후를 한결같이 보여줬습니다. 가을의 화창하고 푸른 하늘이 없어 아쉽더라도 봄이 트레킹이 좋은 것은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인 야생화들 때문이었습니다. 새벽에 힘겹게 푼힐 전망대까지 올라 근사한 일출을 구경하고 난 뒤에 데올랄리로 향하는 도중에 조우한 동산은 이번 트레킹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아침의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온 산천지를 숨막히게 뒤덮은 붉은 꽃나무가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동산에까지 내리쬐는 햇볕은 따사로웠고 이 모든 전경을 묵묵하게 바라보는 듯한 설산의 근엄함은 마치 이곳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에덴의 모습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품어주기도 했습니다.
따다빠니에서 혜민씨와 작별을 하고 남자 넷이 남았는데 저를 제외한 남자 세 명은 제각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약간 더디게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촘롱에서는 트레킹하며 좀처럼 맛보기 힘든 김치찌개로 체력을 보충하고 줄기차게 베이스 캠프를 향해 올랐습니다. 동식씨의 경우는 무릎의 상태가 악화되어서 거의 다리를 끌다시피 산행을 해 중도에 하차를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해발을 높여 갈수록 색다르게 다가오는 안나푸르나의 풍광에 매료되어 동식씨는 어떻게든 산행을 끝마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차푸체르 베이스캠프부터는 온 산천지가 눈으로 덮힌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피치를 더해 쉬지 않고 도착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저는 자축의 의미로 야크치즈와 토마토로 만든 큼지막한 피자를 먹고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일행이 도착한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는 베이스캠프까지의 길에 눈보라가 일어서 저는 그들을 마중 나갔습니다. 몸이 불편했음에도 사력을 다해 눈보라를 뚫고 캠프 정상까지 오르는 그들의 모습에 조용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4,130미터 고지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밤새 잠을 자는 동안 약간의 고산증을 느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위가 적막한 캠프 주변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밝은 달 때문이었는지, 예전에 천정에 촘촘히 붙은 별처럼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감동은 덜했습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안나푸르나 제일봉을 보며 사람들은 얘기를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생을 마친 곳이 바로 저 정상으로 향하는 한 모퉁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무심하게 앗아가는 저 극한 추위의 정상을 보며 저는 당돌하게도 저곳에서 죽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얼토당토한 상상을 했습니다. 어쩌면 저 정상은 인정에 끄달림 없는 그리고 분별에서 벗어난 본원의 마음과도 같아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에서 벗어나 다만 그 고고한 무심함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