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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처장 각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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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3년 07월 377호

두서없이 또 하루가 흘러간다. 사람들은 제각각 그 하루 속에서 북적이고 일찍 찾아든 더위 덕에 쉬이 푸념과 짜증이 남발되는 서울의 오후. 걸음을 옮기다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이 그저 두서없지만은 않은 듯하다. 저 안에도 엄연히 흐름이 존재하고 꽤나 소박해서 달큼한 시시덕거림도 있다. 각우 스님과 마주앉아 여쭙는다. 행복하십니까?
\"목마를 때 물 한 모금만큼 행복한 게 있나요.\"
그것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 하는 사람도 있을 터. 스님은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것이야말로 행복이 아니겠나 하신다. 그러자니 좀 전의 그 풍경 안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얼마나 많은 행복이 있을 것인가 싶어 굳어 있던 마음이 순하게 펼쳐진다.
스님은 지난 겨울 한국불교종단협외회 사무처장 자리에 앉았다. 조계종을 비롯한 27개 종단의 협의체이니 해야 할 역할이 많다. 각 종단 간의 이해관계도 필요하고 무수한 연간 행사도 꾸려가야 하고 외국과의 불교 교류 활동도 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범불교적인 일들의 실무적인 진행을 하는 것이니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힘드실 법도 한데 스님은 말씀하신다.
\"안 힘든 게 있나요. 어떤 것이든 다 힘들어요. 사람은 자기 생각 위주로 살기 때문에 나만 힘들다고 여기지요. 모두가 힘들어요. 선방에 앉아 있어도 힘들고 소임을 살아도 힘들어요.\"
그러니 힘들다 투정할 일이 아니란 말씀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용을 쓰고 살아간다. 나만 대단하고 남의 일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면 어째 내 인생만 팍팍한 것 같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니 자기를 인정해 주길 바라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된다고.

각우스님은 법주사에서 강원을 마치고 선방에 다니다가 인연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며 살았다. 총무원 호법부 호법과장을 지냈고 법주사 포교국장을 살고서는 완주 옥련암의 주지로 살았다. 그러고는 또 다시 선방을 다니다가 총무원 호법부 상임감찰로 살고 괴산 채운암의 주지로 살고 법주사 기획국장으로 지내다가 현재 서울로 올라와 종회의원으로도 지내고 있다.
\"옛날 스님들은 정진하시다가도 인연 닿으면 소임 살며 살았잖아요. 이판과 사판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솥의 세 발이 갖춰줘야 균형이 맞는다. 수행도 소임도 포교나 교육도 모두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선 긋듯이 나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버리는 오류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란다. 솥의 세 발처럼 어우러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혜민 스님 같은 분을 보면 모든 국민들 마음에 평안을 주잖아요. 꼭 선방에 앉아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출가자로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지 고민 할 때 성과가 나오고 사람들이 감화하는 것이지요.\"
각우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니 할 줄 아는 걸 하고 살라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하고 살라고.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은 대부분 선생님, 의사, 판사, 대통령이었어요. 그 희망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 희망을 무턱대고 이루고도 그것이 자기 옷이 아닐 땐 자기의 것을 다시 찾아야 할 일이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이란 말씀이다. 스님들의 역할도 그러해야 할 것이란다.
\"선방에서 정진만 하고 싶고 어떤 소임을 살고 싶다고 해서, 그걸 꼭 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을 잘하고 사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연이 되어 맡아진 이 자리에서 난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

각우 스님은 대학을 다니던 스무 살에 출가했다. 그 당시만 해도 민중불교활동이 활발하던 때다. 청년여래와 통일불교협의회가 함께하던 민족불교학당이란 강좌가 있었다. 그 포스터를 보고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청년여래 여름 수련회를 실상사로 갔다. 절에 가볼 기회가 없던 스님에게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해 겨울에 스님은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나 눈 덮인 치악산 산사에서 이틀을 묵었다. 그러고는 그 이듬해 봄에 돈 만원을 들고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타고 남원으로 가서 실상사에서 출가했다. 그 당시 실상사 주지로 계셨던 지금의 은사 스님이신 혜광 스님을 비롯해 도법 스님, 수경 스님, 효림 스님, 학담 스님 등 좋은 스님들이 살고 계시던 때였다. 행자 교육이란 것도 없던 시절인데 도법 스님께서 행자 둘을 앉혀놓고 아침마다 공부를 시켜주셨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출가했으니 흔들림도 고민도 많았다.
\"젊은 놈이 안 흔들렸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의 삶에 대해서 후회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후회가 없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겠죠. 그런 사람이 발전이 있겠어요? 시행착오가 있기에 발전이 있는 것이지요.\"
승가대학에 들어가던 94년엔 종단개혁이 일어나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그 당시 어린 나이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출가는 했으나 불교라는 게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때였으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고 있던 스님은 아무 말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났다. 한 달간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가 경허 스님이 계셨던 서산 천장암에서 백일기도를 했다.
\"중으로서 어떻게 사는 게 바른 모습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다짐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스님은 처음 출가할 때처럼 늘 길을 떠났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왔다. 밖에서 답을 찾기보다 안에서 답을 찾았다. 그래서 각우 스님은 ‘심경여수 비지불명 心鏡如水 非止否明’이란 말을 늘 마음에 품고 산다. 마음의 거울은 물과 같아서 고요해야만 밑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흐르는 물에 나를 비추면 굴절되어 일그러져 보이고 흙탕물에선 아예 내 모습이 비춰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떤 문제의 답이 보이지 않을 땐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한다.
“고요해진 물에 나를 비추면 그 밑바닥의 실상이 보이지요. 마음 거울이 고요해지면 내면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한번은 어느 스님께서 요즘 어찌 사는가 물으시대요. 즐겁게 지낸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중이 뭐가 즐겁냐며 혼을 내셨어요. 불자들 시주로 먹고 사는 출가자로서 늘 고민하며 살아야지요.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으니까요.\"
각우 스님은 처한 상황에 맞게 그 역할을 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괴산의 작은 암자인 채운암에서 3년간 지낼 때는 늘 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대부분의 절은 창호지 문을 닫아놓고 산다. 밖에서도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도 밖이 보이지 않는다. 스님은 방한을 위한 불투명 유리를 전부 투명 유리로 바꾸고 창호지 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사람들이 절에 가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몰라 참 어려워해요. 그럴 땐 내가 먼저 말 걸고 손 내밀면 그 다음부터는 문턱이 낮아져서 편하게 들어오지요.\"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작은 암자이다 보니 법회나 포교를 크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느 해 봄엔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시작하는데 신도가 단 두 명뿐이었다. 스님에게 있어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열흘간 쉬지 않고 기도를 하다 보니 회향할 때엔 그것이 열다섯 명이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와도 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안 온다고 해서 기도나 법회를 취소한다면 그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각우 스님은 불교가 더 많이 열려야 할 것이란다.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제한적인 개방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우선 접근하기 힘든 절집 구조에 대해서부터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어른 스님들께 혼날 얘기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절엔 전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전각을 잘 활용하지 못하니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요. 사람 사는 집은 별로 없고 열쇠 채워놓은 채 먼지랑 벌레가 사는 집만 있지요.\"
자꾸만 법당을 짓기보다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절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큰 절의 가이드도 문화재를 둘러보는 것에 그칠 뿐 신행이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오래도록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식이 많이 바뀌어야 가능해지겠지요. 미얀마 사원에 가니 스님들이 법당에서 기도도 하고 낮잠도 자고 밥도 먹고 사람들과 편하게 얘기도 나누더라고요. 우리에겐 그런 열린 마인드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각우스님은 차 마시는 방을 활짝 열어두고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안으로 들였다. 그러면서 차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부처님의 법을 나눴다.
\"차 한잔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작은 것 하나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한동안은 그 힘으로 또 살아가거든요.\"
스님은 오늘도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문득 찾아든 객을 맞으신다. 마음이 출렁이는 객은 스님 앞에 앉아 고요히 고요히 마음의 거울에서 내 본연을 찾는다. 그러니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